함께쓰는 한 단어 『일상』, 공교롭게도님의 글
수능을 마치고 입학을 기다리던 시절이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어쩌다보니 여전히 학교를 들락거리는 처지여서 그 시절과 비슷한 일상에 다시 몸을 맡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과도기에 해당하는 이 당분간을 '일상'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일상이란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상태보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지속을 연상시킨다는 생각이다.
일상을 말하기에 앞서 '일상을 말하는 것' 자체에서부터 시작해보자면, 일상 안에서 일상을 논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일상 안에서 일상이란 마치 공기와도 같이 이미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그것이 실제로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에 대해서 숙고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위치나 시선이 이미 일상의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의 루틴을 자각하고 점검한다는 것은 이미 일상에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혹은 자신이 문제의 발생을 의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즉, 일상이라는 상정과 그에 관한 언급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일상에 균열이 생겼고, 그로 인해 생긴 경계로 이제 모습을 드러낸 일상에 돌아가야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정리하자면, 일탈의 존재는 일상이라는 명명에 시간적으로 반드시 앞선다.
일탈에 의해 흔들리는 곳이 일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으레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표현을 쓴다. 바꿔 말해, 일상이란 나아갈 곳이 아니라 돌아올 곳이며 지켜낼 곳이다. 여기서 내가 '곳'이라는 표현을 썼듯이, 개인적으로 일상이란 어떠한 장소나 자리와 등치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일상에는 소속과 역할이 매우 강하게 묻어나기 마련이다. 일상을 가진 사람이란 어떠한 소속이 있고, 일정한 역할을 안정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굳이 명명하자면,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하는 사람이랄까. 여기서 굳이 따옴표를 사용한 이유는 이 '노동'이 단순히 생계유지의 수단이 아니라는 의미에서이다. 매일매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는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만이 일상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일상이란 주체적인 인간활동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반대의 의미,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길 때도 있다는 생각이다. 일상은 자신이 맡은 바를 수행해야 하는 역할들로 구성된다.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통제와 규율이 작동하는 장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작업을 요구하는 일상 안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을 운운하기는 쉽지 않다. 정해진 일상에 사람이 맞춰서 들어간다고나 할까. 때로는 이 일상의 원활한 작동을 이유로 일정한 권력이 개인의 행위를 통제하는 경우도 있다.
일상이 어떻든 간에 이 일상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노동의 의무를 저버린 사람 내지 노동의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 정도 되지 않으려나. 바꿔 말해, 이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통제받지 않으며, 매 순간의 선택과 판단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일상을 가진 사람과 달리 이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나름의 궁핍과 불편을 감수하기도 한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가꿔가는 사람, 담백한 말로는 백수라고 한다. 나는 시간과 공간을 통제받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을 내 마음대로 채우고 있다. 일상에서 배제된, 백수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일상은 단일하지도, 일시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은 행위 같다. 일상이라 한다면 구별되는 여러 행위가, 일련의 작업으로 구성되어, 반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정 목적 하에 결합된 복합과정이 일정 기간마다 되풀이되는 것이다. 루틴(routine)으로 대변되는 일상의 순환성에 대해서는 굳이 첨언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다만,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루틴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경과와 누적의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세계는 기실 시간이 정지된 세계, 심지어 시간이라는 축 자체가 없는 세계이다.
일상이 단지 반복에 그친다면 그 일상은 변화가 없이 사실상 고정된 단조로운 세계일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일탈이 없는 일상은 반복에 불과하며 그 추이와 전망을 논할 수 없게 된다. 경과하는 시간 위에서 일상은 리셋되지 않고 일탈과 피드백을 이루면서 비로소 누적된다. 일종의 변증법적 전개가 이뤄지는 것이다. 일상은 일정한 루틴에 기대어 안정적으로 영위되지만, 그와 동시에 끊임없이 크고작은 변화를 담고 있다. 어떠한 개별행위가 어떠한 조합으로 구성되고 있는지를 과거-현재-미래 위에서 돌이켜보는 한편 내다봄으로써 만족과 분발이 교차된다.
요컨대, 일상을 점검한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 질주하는 와중에 고개를 들어 숨을 돌리는 동시에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 달 간의 백수 생활이 끝자락에 들어서고 있다. 이처럼 일상이 없었던 한 달은 근년에는 이례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와중에 이 글은 이 시간을 '허비'했던 행적에 대해 숙고할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아울러 일탈에 대해서 조금만 덧붙이자면. 일상이라는 것이 아직 있었을 때, 일상의 격변 직전의 공백을 대단히 생산적으로 탈바꿈시킬 멋진 나날을 꿈꿨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탈은 일어나지 않았다. 흔히 일탈의 조건을 일상과의 완전한 단절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일상과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가진 해외, 테마파크 같은 곳에서 일탈을 찾곤 하는데, 내가 원하는 '일탈'은 그것과는 약간 결이 다른 것 같다. 일상과의 물리적 단절이 아니라 의식상의 단절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세상만사들, 업로드되는 새로운 컨텐츠들, 쏟아지는 SNS상의 대화들, 이런 것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채 내 안의 공상과 관심에 온전히 집중하는 상태가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기실 세상에 대한 뜨거운 흥미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번다한 잡념을 끊어내고 아무 생각을 안하거나 좀전에 놓쳤던 생각의 끈을 찾아서 다시 깊게 생각하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샤워를 하면서 물을 맞을 때나, 자려고 불을 끄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있는 때라면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번뜩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때 메모를 안해두면 대부분 까먹어버린다. 메모를 해둬야 그 순간 얻은 영감을 일상으로 가져갈 수 있다. 생각건대, 내가 원했지만,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일탈'이란 이런 것 같다. 그리고 돌이켜보건대, 스마트폰을 멀리 하고 있을 때야말로 바로 이 '일탈'에 딱 들어맞는 상태인 것 같다. 정리하자면, 백수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는, 넓게 보아 마땅히 일탈 중이라고 해야 하나, 실상 여전히 어떠한 일상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뿐, 생산적인 '일탈'을 누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쓰다보니 이 황홀한 사치를 누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