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쓰는 한 단어 『일상』, Maj님의 글
코로나, 기나긴 장마, 그리고 태풍까지. 힘 빠지는 무료한 여름이다. 자기 전 휴대폰 앨범을 뒤적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반짝였던 순간을 담은 사진을 골라 SNS에 사진을 올린다. 뻔해 보이는 음식 사진을 조금이나마 산뜻해 보이게 사진 감도를 조절하고 ‘#일상’이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문득 이 행위가 낯설게 느껴진다.
일상이라고 올리지만 SNS에 올리는 것은 그 중 선택되고 편집된 ‘특별한’ 일상이지 않은가. 그런데 ‘특별함’이 부여된 것을 일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행위가 모순으로 느껴진다. 일상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의미일까?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 질문들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두 편이 있어서 소개한다.
■ 패터슨(Paterson, 2016) - 장르: 드라마, 감독: 짐 자무쉬
짐 자무쉬 감독을 좋아하는 아빠의 성화로 주말 아침에 압구정 cgv에서 가족끼리 본 영화다. 무려 꿀맛 같은 일요일 아침잠을 포기하고 본 영화라 조금만 별로면 혹평을 주려 했는데 웬걸, 굉장히 좋았다.
이 영화는 내내 아내와 단둘이 사는 버스 기사인 주인공 패터슨의 출근 전부터 퇴근 후까지의 하루 일과를 보여준다. 관람객인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다. 영화 주인공이라고 해서 특별한 소재도, 특별한 직업도, 가슴 절절한 세기의 로맨스도, 특출한 외모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물론 스타워즈에도 출연하는 배우이니 평균 이상의 외모지만).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 않을까 호기심과 긴장을 갖고 보지만 그런 우려 섞인 기대는 빗나간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비슷한 일과를 묵묵히 살아가는 패터슨을 보다보면 일종의 거룩한 의식을 수행하는 종교인이나 장인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숭고함과 경외심마저 들게 된다.
패터슨의 하루 일과 못지않게 아내인 로라의 하루 일과가 인상적이다. 로라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집안 벽지를 직접 페인트칠을 하며 바꾸는 것으로 무료한 일상을 주로 달랜다. 특히 각양각색의 동그라미 패턴을 반복적으로 그리는데 그게 그거인 걸로 보이지만 늘 패터슨에게 집 분위기가 정말 달라지지 않았냐고 묻는다. 매일 하는 반복적인 일상에서도 새로움과 즐거움을 찾는 로라에게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긍정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똑같은 하루하루가 지겨운 우리, 특히 매일 출퇴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2018) - 장르: 드라마, 감독: 오모리 타츠시
앞서 얘기한 영화 <패터슨>이 평범한 내 일상도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준다면 <일일시호일>은 당연시 여기는 내 일상 순간순간을 아끼고 돌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힘겨웠던 시기에 본 영화인데 방치했던 내 일상을 하나씩 다시 돌보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했던 참 고마운 영화다. 이 영화는 주인공 노리코의 이십 대 시절부터 삼십 대 시절까지의 한 평범함 젊은 여성의 일상을 보여주며 그 일상 속에 깃든 다도 수업을 보여준다. 다도와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서 다도 절차 하나하나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에서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란 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즐겁고 기쁜 날이라는 뜻이다. 뻔해 보이지만 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현재 이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계속 전한다. 그리고 힘든 일도 시간이 해결해 주니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면 된다. 영화를 봤던 비슷한 시기에 『우사기의 아침시간』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다. 책에서 저자는 매일 아침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한 가지씩 하면 하루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실제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당시에 이를 직접 실천해보니 효과가 있었다). 매일 내 일상을 살피고 아껴주고 충실히 지내면 날마다 좋은 날, 즉 일일시호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대사는 주인공 노리코와 동갑인 사촌 미치코와의 대화 장면이었다. 주인공이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말하는데 미치코는 “그게 그래서?”, “그 다음은?”, “그게 다야?”라고 물어서 주인공과 보는 관객마저 뻘쭘하게 만드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꼭 무슨 대단한 성과나 결과물이 있어야만 되는 것인가 영화는 반문하는 듯하다.
어떤 사건을 겪고 나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너무 당연히 여겼던 일상에서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어그러져야 그 일상을 돌아보고 어루만져 주려 한다. 이 영화는 요가나 명상을 할 때 느끼는 평온함을 보는 내내 느끼게 한다. 영화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라는 메시지도,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을 차분한 마음으로 곱게 다림질 하듯 매만지라고 전하는 것 같다.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영화 <비긴어게인(Begin Again)>에서 주인공 남녀가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뉴욕의 지하철, 거리 등을 하염없이 누빌 때 주인공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대사다. 무료한 내 일상, 우리의 일상도 음악이나 맛있는 음식, 친구, 재미있는 책과 같은 약간의 소품만 있으면 가치 있고 즐거운 일상, 매일 매일이 일일시호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