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패션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적부터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패션이 좋았다. 과거의 언니들이 패션잡지를 보면서 컸다면 나는 타이라 뱅크스가 나오는 America's Next Top Model이나 엠넷의 아이 엠 어 모델, 트렌드리포트필 등을 보면서 컸다. (화석 시절 이야기..)
엠넷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윤주 언니를 보면서 얼마나 덕질을 했는지 모르겠다. 평소 학교나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하고 나를 드러내고 당당한 에너지와 태도 같은 것들이 좋았다. 나도 덕분에 옷을 종종 사곤 했는데, 내가 옷을 어떻게 입어도 지지해주는 부모님 덕분에 개성을 맘껏 드러내고 살았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1년에 1-2번 있는 현장학습 날이면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갈 생각에 설렜다. 난 평범한 학생 부류였는데, 운동장에 모이는 현장학습 날 아침이 되면 나의 비교적 튀는 옷 때문에 일진 친구들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대학에도 패션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여러 지망 학교 중 의류학과는 떨어졌고, 1학년 때는 무전공이고 2학년 때부터 학과를 선택하는 학교에 합격했다.
1학년 때는 전공탐색을 하기 위해 심리학, 언론정보, 디자인 등 다양한 개론 수업을 들었다. 뼛속까지 이과생이던 나는 디자인 교수님의 칭찬과 함께 내 예상에 없던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게 됐고, 그래도 패션 끄트머리 뭐라도 해보고 싶어 패션디자인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느낀 것은 내가 옷을 좋아하긴 하지만 패션디자인 자체에는 흥미가 그다지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인물 드로잉부터 패턴 디자인 기초 같은 것들을 배웠는데 패션디자인을 위한 기초에서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패션계에서 내 전공이 그래픽을 접목해서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게 어떤 것인지 무엇인지 실체도 몰랐지만 동경으로 가득 찬 채 말이다.
대학 4학년, 친구들과 매일같이 취업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학생인지라 필드의 상황은 잘 알지 못했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금 이름이 알려진 회사들에 입사지원서를 넣어보는 것이었다. 공대 친구들과는 달리 시각디자인 전공으로는 대기업에 입사하기는 힘들었다. 신입을 채용하는 자리도 없었고 그나마도 UX 디자인 위주였다.
그러다 어느 날 졸업반 동기가 말을 걸어왔다.
유진, A선배가 있는 곳인데 너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여기 관심 있으면 한번 넣어봐!
동기를 통해 우연히 과 선배가 재직하는 에이전시를 소개받았다. 마케팅, 웹 등의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자체 패션 브랜드도 준비 중인 곳이었는데, 회사의 대표님은 에잇세컨즈 런칭에 참여한 분이라고 했다. 클라이언트도 패션계 브랜드들이 많았기 때문에 흥미로워서 입사하게 됐다.
대표님은 CJ 출신의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패션, 인테리어, 식사, 라이프스타일 등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삼각별이 그려진 자동차부터 유명 셰프가 있는 레스토랑의 생일 케이크, 1주일 최소 1번 이상은 도착하는 해외직구 럭셔리 브랜드 패션 등 항상 하이엔드급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했다. 내 월급만 빼고...
나는 연봉 1800만 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동기 중 한 명과 대표님의 면담을 통해서 모든 동기들의 초봉이 그렇게 정해졌다.
나는 내가 접하지 못했던 세계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일을 해나간다는 생각에 좋았다. 대표님의 라이프 스타일 덕분인지 디자인 디렉션은 신입인 내 눈에는 항상 배울 것이 많았다. 프로젝트도 대표님의 취향이 담긴 인테리어, 패션, 백화점 브랜드 등의 클라이언트가 주를 이뤘는데, 그런 브랜드를 위한 프로젝트를 해나가며 대표님의 취향을 흡수하고 실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자체적인 하이엔드 브랜드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브랜드의 그래픽을 담당하게 됐다. 모든 팀의 구조는 대표님께 큰 컨펌을 받는 구조였는데, 대표님을 마주하기가 참 어려웠다. 대표님의 출근 시각은 약 6-7PM(AM 아님...)쯤이었다. 프로젝트와 컨펌 내용에 따라 곧잘 방향성이 달라지기도 해서 아침부터 이른 저녁까지 일을 해도 컨펌을 받은 후에는 다시 새롭게 일을 시작해서 새벽 2-3시까지 반복하는 패턴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일전에 패션계에서 일하던 선배들과 같이 일도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서 듣고 경험하는 세계는 뭔가 이상했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동기 친구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튕기면서 심심풀이로 놀림을 일삼는다거나, 대학생 인턴의 시안을 자기가 한 것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패션계에 만연하다는 막내 문화로 제일 어린 친구에게 모든 일을 일임한다거나, 회사 끝 소파에서 한~두 시간 정도 누워있다가 5시쯤에 랜덤한 직원에게
"00아~ 떡볶이 좀 사와라" 심부름을 시켜서 간식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생활이었다.
나는 학부시절에도 인턴이나 알바로 몇몇 회사를 경험해보긴 했었는데, 내가 사회를 잘 모르는 건지 패션계를 모르는 건지 버거웠다. 업무 패턴과 사람들로 하루하루 회사 생활이 지속될수록 힘들어졌고,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방법도 잘 알지 못했다. 내 기준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만 쌓여가고 풀지도 어쩌지도 못하던 나날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회사에서 C사의 대형 웹 프로젝트 건을 진행하게 됐다. 잘 알려진 브랜드 웹사이트 리뉴얼 건이었는데, 이 때는 팀별 역할 따질 것 없이 모든 인력이 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디자인과 수정 디자인을 밤낮없이 생산해냈고 개발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거쳤다.
디자이너 : 메인화면 페이지 전달드립니다~
개발자 : 아 이거 안돼요~!
이 대화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됐다. 도대체 왜일까... 개발자는 왜 항상 안된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서브로 도와주는 입장이었는데, 나도 옆에서 듣다 보면 안 된다는 게 진짜인지 그냥 기분 탓인지도 도무지 모르겠었다. 개발도 그들 사이를 개선할 방법도 아는 것이 없어서 그저 옆에서 메인으로 진행하는 디자이너 분들이 항상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진짜 안되는 걸까?
궁금함과 약간의 오기로 주말마다 친하게 지내던 개발자인 학교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유사한 디자인을 보여주며 이런 상황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것인지 웹에서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이걸 알아야 내가 알아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리고 디자인을 하든 뭐를 하든 이걸 알아두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하나 독학으로 연습해보기 시작했고 이 분야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기로 발 담가 본 개발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사람과 여러 변수들에 지쳐있어서 그런지 내가 입력하면 정직하게 결과를 출력해주는 까만 화면은 가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디자인을 떠나 개발을 배워야겠다.
아직 20대 중반이고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기엔 충분히 젊으니 후회하기 전에 ‘한번 도전해보자’
개발 직무로 바꾸면 피곤하고 힘든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란 마음으로 퇴사했다.
퇴사로 알게 레슨을 끄적였다.
<Me 노트>
- 나는 밤샘 프로젝트가 힘들다.
- 나는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다.
- 나는 사람과 변수에 영향을 덜 받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