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에 따르는 상대적 행복 (2020 이효석 독후감 대회 장려상 수상)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이효석 작가의 작품은 ‘메밀꽃 필 무렵’이 전부였다. ‘분녀’를 읽고 이효석 작가의 단편집을 읽으면서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와 시야가 한순간에 넓어진 듯하다. 분녀의 이야기는 무려 80여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현재에 읽어도 흥미진진하기 그지없으며, 분녀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에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되는 정도가 신기할 정도이다. 쓰여진 지가 80년이 넘다 보니, 생소한 단어나 표현이 있음에도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이미 동기화가 되어버려, 의미가 와 닿지 않는 부분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효석 작가의 작품은 그다지 길지 않은 단편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는 점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짧은 영상이나 이야기에 길들여진 오늘날에 안성맞춤인 작가가 아니셨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에 이렇게 강렬한 주제로 시대에 도전하신 작가 정신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 솔직히 말하면 2020년 현재에 읽어도 꽤나 도발적이고 강렬한 이야기인데 말이다.)
‘분녀’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였다면, 꽤나 매력적인 요즘 말로 ‘인싸(In-sider)’가 아니였을까 싶다. 모두에게 매력을 발산하는 인기있는 인물이었으리라. 현재에는 그다지 큰 흠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는 여러 상대와의 경험이 당시에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는 상황에서 분녀의 이야기는 본능을 따르는 것도 결국 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허용하는 성적 자유도, 주변 사람들의 상대적 성생활 수준, 본인이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지극히 상대적인 상실감, 박탈감, 심지어 공포의 상황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만족과 행복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분녀’의 첫 상대는 명준이었다. 그야말로 겁탈이었다. ‘땅 그 어느 한구석이 무너졌을 것 같다. 하늘의 별 한 개가 없어졌을 것 같다. ……코며 입이며 볼이며 상하지 않고 제대로 있는 것이 도리어 신기하게 여겨졌다.’ 분녀가 처녀성을 잃고나서 세상이 무너지고 , 하늘에 별이 떨어지고 , 자신의 몸이 부서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한 구절이다. 억장이 무너지고 세상이 망해버린 것 같은 불행이 닥쳤다. 하지만 의외로 세상은 그 정도 일에 무너져 내리지를 않았다.
오히려 만갑과 관계를 갖는 두번째 경험에서는, 겁이 나고 눈앞이 막막하고 눈물이 쏟아졌지만, 소매 갈피에 쥐어 준 지전 한 장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가게의 반을 내어준다는 달콤한 말에 귀가 솔깃해 지기도 한다. 도덕적 수치심에 겁도 부끄럼도 들기는 했지만, 다음에 만갑을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분녀의 심리가 변화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즐겨서 들어온 것은 아니나 굳이 거역할 것이 없는 것은 몸이 떨리기는 하나 거듭하는 동안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이다’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던 첫 경험에 비하면 꽤나 달라진 모습이다.
심지어 만갑을 가장한 천수와의 관계는 완벽한 사기요, 범죄이자 강제였음에도 분녀의 마음은 분노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괘씸한 마음은 차차 스러져 갔다. …. 명준에게 준 몸을 만갑에게 못 줄 것 없고 만갑에게 허락한 것을 천수에게 거절할 것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본능의 부름을 따르는 분녀는 이후에 왕가와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다시 마주치려 적극적으로 근처를 배외하기도 하고, 관사에서 방 안의 행사를 훔쳐보고는 심지어 ‘지금까지 겪은 세상은 너무도 단순하고 아무것도 아닌 방안의 세상이 아니요 문 밖 세상 같은 생각이 든다. 가지가지의 경험을 죄진 것같이 여기던 무거운 생각도 어느 곁엔지 개어지고 도리어 자연스럽고 그 무엇이 부족하였다는 느낌조차 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 이후에 상구와의 관계에서는 도덕적 올가미와 수치심을 내려 놓고 꽃같이 고운 상구의 입술에 행복해한다.
그러고 보면 도덕적 관념도, 본능에 따른 만족 또는 죄책감도 모두 다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분녀가 당한 일은 겁탈이고 범죄며 용서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근래에도 이런 안타까운 일을 당하고 괴로워하다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다만 오로지 분녀의 심리적 변화만을 관찰하자면, 본능에 따라 절망과 괴로움에서 조금씩 상대적 행복을 느껴가는 상태로 변해감이 느껴진다. 이효석 작가가 작품을 쓰실 당시에는 이런 변화가 타락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시기일 것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분녀가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위치가 절대적 약자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상황과 처지와 과정이 어떻든지 간에 분녀는 조금씩 본능에 눈을 떠 적응하고 마지막에는 병준과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인간의 행복은 항상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효석 작가는 분녀의 타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당시대의 도덕율에 도전하고 싶으셨을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나는 분녀 개인이 본능에 눈뜨고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더 눈여겨 보여진다. 그 시대의 분녀는 타락해 가는 여인이었을지 모르나, 현대의 분녀라면 모든 남성들의 호감을 차지하는 매력녀일 것이다. 남자를 알기 전의 분녀는 관계가 두렵고 겁이 났지만, 본능에 충실해진 분녀는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관계에서 오히려 부족함을 느낀다. 인간이 본능에만 굴복하여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율을 어기고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진다면 불행해지겠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이 본능을 따라서 얻는 행복이 더 크다면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능만을 따른다면 이효석 작가의 또다른 작품 ‘돼지’에 나오는 씨돈처럼 짐승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효석 작가 작품에서 여러 번 비유되듯이, 씨돈처럼 수탉처럼 우리도 결국은 본능을 따라 행복을 느끼는 생명체 이지 않을까. 분녀도 우리도 결국엔 본능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자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