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맥주의 제주 위트 에일
주말 사이에 다 온 줄 알았던 봄이 뒤로 성큼 물러났다. 내 침대는 미세먼지 없고, 꽃샘추위도 없는 가장 안전한 요새다. 작고 푹신한 침대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남의 일상을 엿보거나,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가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만든다.
문득 제주도가 가고 싶어졌다.
어둡고 낮게 깔린 하늘과 물기를 머금은 바람 때문일까? 코 끝에 몇 년 전 갔던 제주도의 냄새가 밀려든다.
고백하자면 제주도엔 딱 두 번 가봤다. 한 번은 초등학교 아람단 수련회 때문이었다. 벌써 이십 년도 더 된 그때의 섬은 아마도 지금의 제주와는 사뭇 달랐겠지. 사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눈부시게 하얀 백사장과 예쁜 초록빛의 바다가 있었다는 거 말고는. 다른 한 번은 2016년 디에디트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그때까진 막내 에디터도 없이 두 사람이 운영 중이었는데, 미래가 깜깜한 두 여자가 훌쩍 제주로 떠났다. 그때 왜 제주도를 갔었는지는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제주도에 머물던 내내 비바람과 싸운 기억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 제주도에 가고 싶으니까 제주 맥주를 마시자. 그리고 그걸 리뷰한다. 제주맥주의 제주 위트 에일. 제주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한 녀석이지만, 운 좋게도 지인으로부터 딱 한 캔 얻었다.
강서, 달서, 서빙고, 그리고 강남. 요즘 맥주는 지역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게 유행인가 보다. 사실 그런 이름은 단순히 지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이년간 출시된 맥주들의 이름과 맛에는 얼마나 큰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제주 맥주는 좀 다르다.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기술력을 더하고도 무려 5년의 준비 끝에 선보인 맥주다.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제주도의 물을 쓰고, 섬에서 나고 자란 감귤 껍질을 넣었다.
호박색의 빛깔과 몽글몽글 아이스크림을 얹은 것처럼 보이는 풍성한 거품. 잔에 따르는 순간부터 상큼하고 고소한 향이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오렌지 껍질을 더한 오리지널 밀맥주 레시피와 달리 제주 위트 에일에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유기농 감귤의 껍질을 더했다. 오렌지 껍질에서 나는 향이 공간을 지배하는 오드 뚜왈렛이라면, 감귤은 가만히 코를 박아야 희미하게 느껴지는 살내음에 가깝다. 투박하지만 자연스러운 향기가 밀맥주와 퍽 잘 어울린다.
솔직히 말해, 은은한 감귤향 말고는 엄청나게 특별한 맛은 아니다. 맛이 없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금물. 베이스로 깔리는 고소한 맛과 약간의 쌉싸름함. 풍성한 거품 그리고 은은하게 올라오는 감귤의 향은 기꺼이 즐길 수 있는 맛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특별하진 않다는 소리다. 그래도 이 맥주는 충분히 즐겁다.
상큼한 민트색 캔. 한라산에서 퐁 하고 터지는 맥주 분수를 표현한 로고. 무엇보다 제주라는 이름만으로도 술맛이 돈다. 아마도 제주에 가면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이 제주 맥주를 마시겠지. 흑돼지에 한라산을 찾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제주도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많이 안타깝고, 이 맥주를 다시 한 번 더 맛보기 위해서라도 제주도행 티켓을 끊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한 박스 정도 쌓아두고 제주도가 가고 싶어질 때마다 한 캔씩 따서 마시면 참 좋을 텐데.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 조만간 제주도로 가시는 분 있나요? 그렇다면 저에게 연락 주세요. 운임비 후하게 쳐서 드려요.
제주맥주 제주 위트 에일
Point – 내 마음은 이미 제주도에
With – 흑돼지구이, 고등어회, 방어회 등 맛있는 건 다
Nation – 한국 제주도
Style – 밀맥주
ABV –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