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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엘 Oct 02. 2024

[프롤로그] 엄마와 아빠가 놀고 있습니다.

#불안보다 지금의 소중함을 찾아봅니다.

주말 부부 8년 차입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입니다.  “그럼, 아빠가 매주 서울에 올라오시는 거예요? 힘드시겠다.” 저는 어금니를 지그시(사실은 꽉) 깨물며 답합니다. “올라와야지요. 당연한 소리를. 제가 더 힘들지 않겠어요?”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빠는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에 오고, 일요일 저녁 내려갔습니다. 첫째 아이 2살 때 지방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 아이가 10살이 되었네요. 우스개 소리로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는 주말 부부라고 하지만, 아들 둘과 함께하는 워킹맘은 힘이 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출근과 등교 그리고 등원을 하고, 저녁에는 숙제와 공부 준비물 챙기기 샤워에서 양치질, 그리고 재우기까지 오롯이 혼자 합니다. 아직 어린 두 아들과 함께하는 아침과 저녁 시간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몸도 힘들지만, 평일 저녁 운동도 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남편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힘듭니다. 회식할 때마다 동료들과의 맥주 한 잔의 시간도 친정 엄마에게 매번 미안해지는 그 마음이 더 힘들었습니다.


일요일 저녁, 아빠가 다시 지방으로 가는 그 시간. 이상하게도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어느 일요일입니다. 인사를 하며 아빠를 보낼 준비를 하는데,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의 등이 얄밉도록 신나 있습니다. 분명, 어깨가 덩실덩실하고 씰룩거리고 있습니다. 몸이 마음을 말해주는 것인지 제 마음이 투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 춤추는 어깨입니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기로 합니다. 둘째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마지막 육아휴직 기회. 일 년 전부터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밑밥을 깔아 놓았습니다. 그동안 못한 육아를 오롯이 전담하리라, 선언하며 육아휴직을 시작합니다.


엄마는 갑자기 퇴사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기면서 한다고 자부했었습니다. 하지만, 승진과 함께 번아웃이 왔고, 중요한 직책을 맡음과 동시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만 하던 내가 잠시 틈도 없던 내 시간 속에 허덕였습니다. 지난 20년 간 한 번도 쉬지 않은 나는 충전이 필요하다며 계획되지 않은 퇴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 아빠가 함께 놀고 있습니다.


엄마는 절망감과 불안에 빠져있었습니다. 나의 페르소나가  “너무 쉽게 포기한 거다. 또 다른 성공을 위해서는 하루 빨리 더 좋은 자리로 이직을 알아봐라. “ 마음 속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커리어가 불안하고, 포기한 내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릿’의 정신력으로 참아야 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포기한 내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습니다. “쉬어도 괜찮아, 휴식이 필요해”라고 외치는 마음 속의 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빠는 이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 처음 쉬어보는 1년의 육아휴직인데, 그냥 평범하게 보내기에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꾸만 계획을 세워봅니다.


캐나다로 여행을 결심합니다. 불안하고 지친 엄마의 휴식을 위해, 아빠가 원하는 진정한 휴가를 위해 여행을 갑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이라는 합리화를 합니다. 아빠는 밴쿠버에서 엄마는 토론토에서 각자 어학연수를 보낸 그 시간을 그리워하며 캐나다에 갑니다. 그 시절의 열정과 순수함이 그리웠고 에너지 가득했던 예전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나 봅니다. 아이들은 첫 해외여행이 마냥 신이 납니다.


그렇게 간 캐나다에서 지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던 날입니다.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눈을 보고 웃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이 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이들의 두 눈을 바라보고,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언제였을까? 지금이 아니면 못하는 것들. 지금이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꾸 줄어가는 퇴직금과 아무 계획 없는 내 커리어를 불안해하기보다는 그것보다 몇 배 더 가치 있는 시간이 앞으로 펼쳐질 것이라 믿어보자고 결심하였습니다.


서로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하루 늘어날수록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아이들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마음도 몸도 성장했습니다. 불안보다 지금의 소중함을 더 찾아보기로 합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야 한다는 것.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 이유를 찾아봅니다.




가족들의 소소한 여행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소중함을 찾아가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공감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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