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름캠프의 런치박스
캐나다 한 달 살기를 계획하며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 LUNCH BOX. 도시락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매일 급식을 먹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 싼 김밥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도시락을 싸본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소풍 도시락을 준비한 것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입니다. 그런데, 캐나다는 도시락을 가져가야 합니다. 3주 캠프를 다니니, 매주 5개씩 총 15번의 도시락을 싸야 하고, 아이가 2명이니 총 30개의 도시락을 만들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아찔합니다.
우선 검색을 해봅니다. #미국학교도시락 #Summercamp #lunchbox 등등 온갖 키워드를 넣으며 검색합니다. 캠프를 처음 참석한 한국 아이들의 웃픈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한국식으로 보온도시락에 볶음밥을 넣은 도시락이 아이의 표현에 의하면, "내 도시락만 보잘것없이 초라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가 됩니다.
걱정되는 엄마가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해보니, 캐나다 아이들의 런치박스는 도시락을 담는 가방부터 일단 화려합니다. 미니언즈, 스파이더맨, 닌자, 포켓몬 등 온갖 캐릭터들이 가득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안 도시락 케이스는 파란색 핑크색이 알록달록합니다. 그리고 네모나게 큽니다. 음식은 와플, 스낵, 과일이 가득해 무척이나 화려합니다. 처음 싸는 도시락에 엄마의 걱정이 가득합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났습니다. 캐나다 월마트에서 비슷한 모양으로 구입한 도시락은 총 4칸이 있습니다. 그 칸을 매일 어떤 메뉴로 채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는 것으로, 최대한 검색해서 보았던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봅니다. 엄마의 아침잠이 고민이 오롯이 담긴 도시락이 매일 탄생합니다.
"엄마 도시락이 차가워졌어!" 처음 도시락 가져가 먹어보는 아이도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나 봅니다. 급식은 항상 따뜻한 밥과 고기가 나왔을 테니, 차갑게 식은 빵과 샌드위치가 담긴 도시락이 어색했나 봅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도시락에 음식을 확인하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와플이 들어가 있는 도시락을 보고는 환호성을, 야채가 가득한 샌드위치가 들어간 도시락에는 입술을 삐죽삐죽합니다. 버섯이나 오이를 넣은 날에는 투정도 합니다. '이놈들! 엄마가 아침에 얼마나 힘들게 만든 건데.' 마음속으로 외쳐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 마음 이해도 됩니다. 야채 가득 샌드위치 옆에는 슬쩍 좋아하는 과자를 함께 넣어줍니다.
캠프에서 돌아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락 뚜껑을 열어봅니다. 깨끗한 도시락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었을까요? 싹싹 먹어 아무것도 없는 도시락을 보는 기분은 어쩜 이렇게 좋을까요? 시험 정답을 확인하는 것만 같은 긴장감과 정답을 맞힌 것만 같은 만족감이 매일 반복됩니다. 반면 그대로 남겨온 도시락 앞에서는 망연자실합니다. 문제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봅니다. 빵의 두께, 야채의 익힘 정도가 완벽하지 못했나 봅니다. 두 아이들에게 매일 평가받는 도시락입니다. 엄마의 마음은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에게 심사받는 요리사와 같은 마음입니다.
캐나다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며 친정 엄마가 생각납니다. 내 도시락은 항상 반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모든 음식을 엄마는 손수 만들었고, 일주일 동안 겹치는 메뉴가 없었습니다. 전부터, 조림, 볶음 예쁜 계란말이까지 자랑스러운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에게 고맙다고, 맛있었다는 한마디를 못했습니다. 친정 엄마의 정성 가득한 마음을 그땐 왜 몰랐을까요?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알았다는 생각에 울컥합니다. 예쁜 말 한마디를 못한 후회가 머나먼 캐나다에 와서 듭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도시락을 보면, 엄마를 생각할까요? 도시락에 담긴 따스함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엄마의 고민과 노력이 아이들 마음에 스며들어 작은 씨앗으로 심어지길 바라는 건 엄마의 욕심일까요? 우리 아이들도 그 씨앗이 꽃을 피우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