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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나무 Dec 10. 2020

어제는 곱창을 먹었다.

어제는 곱창을 먹었다. 


요새 몸이 많이 안 좋은 아내가 먹고 싶어 했다.


내 직장 때문에 머나먼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아내는 요새 부쩍 고향 생각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400km 떨어진 곳에서 우연히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아내였다. 


가끔 알 수 없는 짜증을 부리기도 하고, 피곤한데 멀리 나가자고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과분하게도 좋은 아내다.


아내가 원하는데 그것도 못 해주랴. 곱창 까짓 거 열근이라도 먹여줘야지.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바람은, 나를 집 앞 곱창집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곱창집 앞에 도착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도착한 곱창집에는 청춘남녀부터 아저씨 아주머니까지 많은 사람이 우글거렸다. 


한쪽에서는 척 보기에도 여자를 꼬셔보려는 남자가 침을 튀기며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구석에는 부장님의 침 튀기는 일장연설을 듣고 있는 영혼 빠져나간 부하직원들의 동태눈이 보였다. 


반대편에는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동생을 위로하는 형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한순간 억하심정이 올라온다.  


'아니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와도 되나?'


어... 나는? 나도 나온 것 아냐?


순식간에 자신을 변호한다. 


'나는 아내가 몸도 안 좋고, 그동안 맨날 집에서 밥해먹고, 병원에서 일하니까 밖에 돌아다니지도 않다가 한번 나온 건데. 이 사람들은 맨날 이런 건가?'


아... 그래. 이 사람들도 사연이 있겠지. 




누구나 사연은 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사연이 없을까. 


따져보면 다 이유가 있고, 다 해명이 있겠지. 


이 정도도 못 하냐고 억울해 할 수 있고, 이것도 이해 못 해주냐고 사회를 비난할 수도 있겠지. 


그래. 스스로 사연이 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곱창을 먹으러 나온 것 아닌가. 


아내의 말을 들었을 때, 내심 한구석 찔리는 것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강한 사연이 있으니까 나온 것 아닌가.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참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는데. 실수는 누구나 하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곱창을 구웠다.


곱창은 기름지고, 짜고, 달고, 맛있었다. 


아내의 기쁜 얼굴과 만족스럽게 두드리는 배를 보며 기뻤다.


나는 실수한 것이라고, 나는 괜찮다고 자위했다.




어제는 곱창을 먹었다. 


쓴 맛이 없는데, 입이 쓰다. 



Photo by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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