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당고스 델 파라모 - 아스토르가
오늘의 목적지는 28.5km 거리의 Astorga(아스토르가).
선착순 알베르게를 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 이른 시간에 길을 나섰다.
또다시 홀로 헤드랜턴을 끼고 어두컴컴한 길을 뚫고 나아갔다.
해가 뜨기 전 후 30분간은 시시각각 하늘의 색깔이 변했다.
부지런히 걸어 2시간 반 만에 12km 거리에 있는 큰 마을 Hospital de Órbigo(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에 비싸 보이던 바 밖에 없어서 다른 곳을 찾아 헤맸는데, 아무 데도 연 곳이 없어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예상대로 비싼 곳이었다. 나폴리타나가 2유로나 했다.
레온까지는 내내 지루한 길이 이어졌었는데 이 날을 기점으로 길도 조금 다채로워졌다.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이라 발목에 엄청 무리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길 위의 도나티보였다.
까미노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인 대형 도나티보 바 El Jardin del Alma가 이 루트 위에 있었다.
대단하다고 소문은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잔치상처럼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빵과 과일과 과자와, 오렌지를 직접 착즙해 오렌지주스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도구까지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아기고양이 천국이었다.
크레덴셜 도장을 찍는 중에 내려다봤더니, 발보다 작은 고양이들이 발을 밟고 지나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천국 같은 곳이었다.
기부금을 내고 자리에 앉아서 오래오래 쉬며 펼쳐진 음식을 먹었다.
빵에 잼과 치즈를 올려 열심히 먹는데 한국인 아저씨가 말을 거셨다.
이름을 말씀드리니 '한결같이 잘 걷는 한결'이라고 하셨고 그렇게 기억하겠다고 하셨다.
실제로 그 이후 길에서 만날 때마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만날 때마다 주변인들에게 나를 그렇게 소개해주셨다.
도나티보에서 쉬다가 나와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Dani와 Jørund. Dani는 스페인, 독일 혼혈이었고 Jørund는 노르웨이 사람이었다.
이 둘은 해먹을 지고 다니며 해먹과 알베르게를 번갈아 쓰는 순례자들이었다.
여기서 만난 Jørund는 아직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소중한 까미노 인연 중 한 명이다.
오늘 아침 이르게 길을 떠나 막판엔 컨디션이 처질만한 상태였는데 젊은 유럽인 둘과 걸으니 속도가 처질 틈이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아스토르가에 도착했다.
원했던 선착순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고 씻고 빨래까지 마친 후, 밥을 먹기 위해 간 주방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두 번째 대도시, 로그로뇨 이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대학생 EJ님과 YH님이 여기 주방에 있었다.
무려 17일 만의 만남이었다.
연락도 못하고 어디쯤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을 갑자기 숙소 주방에서 만나니 반가움이 배가됐다.
나는 레온에서 남아서 들고 다니던 쌀로 미역죽을 해 먹고, 먹는 것에 늘 진심인 그들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식사 이후에 셋이 근처 슈퍼에 가서 디저트로 먹을 것들을 한가득 사 왔다.
초콜릿과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퍼먹는 아이스크림을 사 셋이 함께 먹으며 오후를 보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재회 이후, 이 둘은 나의 까미노 하반기 메이트가 되었다.
아스토르가는 가우디가 건축한 성이 있는 동네여서, 저녁을 먹고 시내 탐방을 나섰다.
머릿속에 있던 가우디의 건축물에 비해 침착한(?) 비주얼이었다.
일찍 시작한 하루에 일찍 일정을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 동안 그동안 밀려있던 일기를 썼다.
까미노 전체 일정에서 기억에 남을, 소중할 사람들과 처음 만나고 또 재회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