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 - 포르토마린
하루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시작하는 까미노.
유명하다던 롤케이크를 먹고 가려고 늦게 출발했지만 가게가 안 열어 롤케이크는 먹지 못하고 그저 출발만 늦게 하게 됐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100km만 걸으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산티아고부터 약 115Km 거리에 있는 사리아부터 순례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평소라면 사람이 많지 않을 10시에 걷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무빙워크인가 싶을 정도로 밀도가 높았다.
지금까지의 길은 몇 시간 동안 혼자 걷게 되는 경우도 심심찮았는데 사리아부터 그런 고요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 막 시작한 순례자를 구분하기는 쉽다.
사진을 많이 찍고, 옷이 깨끗하고, 힘이 넘친다면 90퍼센트 확률로 사리아에서 시작한 사람들이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생기가 넘치긴 한다.
여기저기 작은 도나티보바도 있고, 특이한 쎄요를 찍어주는 분들도 많다.
한 할아버지는 글루건으로 쎄요를 만들어주셨다.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태극기 모양을 새겨주신 거였다.
5월이 되자 순례길 여기저기서 등나무가 보였다.
4월은 유채꽃의 달이었다면, 5월은 등나무의 달!
그리고 마침내 만난 100km 이정표!
생장에서 시작한 사람은 물론, 사리아에서 시작한 사람들까지 인증샷을 찍기 위해 북적이는 곳이다.
너무 늦은 아침에 시작한 나머지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직빵으로 맞았다.
힘들고 더워서 정신이 없었던 건지,
눈앞에 포르토마린이 보이니 마음을 놓아버린 건지,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대차게 길을 잃어버렸다.
까미노를 걷다가 길을 잃었다면 돌아가는 게 상책이지만 길치 DNA가 그걸 허용 못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리가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풀을 헤치고 걸으며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생각했다.
결국 작은 텃밭을 거쳐 돌담에서 뛰어내려 잘못 든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 걸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포르토마린!
동네 바로 옆에 꽤나 규모 있는 강이 있는 예쁜 마을이었다.
반짝반짝한 강의 윤슬을 보며 다리를 건넜다.
저녁으론 레온에서부터 가지고 다니던 남은 쌀을 털어 미역죽을 해 먹었다.
동네에 젤라또 가게가 있기에 젤라또도 사 먹었다.
강가로 가 EJ & YH님과 함께 노을을 보고 각자 알베르게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일찍 출발하는 걸 목표로 해가 채 지기도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