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최고경영책임자), CFO(최고재무책임자)는 들어봤어도, CDO(최고다양성책임자, Chief Diversity Officer)를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CDO라는 직책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사장 레벨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의 업무 범위는 채용에서부터 시작하여 승진, 평가, 차별 또는 괴롭힘에 대한 감독 및 문제해결,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다양성, 포용성, 평등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CDO의 역할과 권한에 더 큰 힘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업 규모가 두 배가 된 구글은 현재 60여 개국, 170개의 도시에서 10만 명이 넘는 구성원이 일하고 있다. 이 정도 사이즈의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조직을 포용적이며 평등한 직장으로 만들어 주길 바라는 직원들의 요구는 당연했고, 이 과정에서 CDO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2020년 기준, 여성 임원 비율이 40%에 달하는 페이스북 역시 전 세계적으로 28억 5천만 명의 사용자를 둔 회사로서 D&I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무려 2013년부터 페이스북의 CDO를 맡아 온 Maxine Williams는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와 공격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러한 행동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등 재외한국인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인물이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인종 정의를 위한 투쟁’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왔다는 그녀는, ‘의도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간과될 수 있는 소수 그룹을 대변하고 적극적으로 개선의 목소리를 내며 회사 내 행동가로 일하는 것’이 CDO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이런 입지전적인 인물로 기업 문화가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회사가 일명 사고를 친 후 대중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CDO를 고용하거나 조직 내 유사한 직책을 만드는 경우도 꽤 된다. 대표적으로 구찌가 그렇다. 흑인 얼굴을 연상케 하는 스웨터가 흑인 비하 상품으로 논란을 일으켰을 때, 해당 제품을 매장에서 거둬들임과 동시에 ‘이번 일을 큰 배움의 기회로 삼고 조직 전반에 걸쳐 다양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던 구찌는 공식 사과문을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CDO를 선임했다.
‘블랙페이스(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 흉내를 내는 흑인 희화 또는 비하 행위로 인종 차별을 상징한다)’ 논란을 일으켰던 구찌 발라클라바 넥 스웨터
비록 CDO 채용 과정이 자발적이진 않았지만, 당분간 구찌의 CDO는 대외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위치가 되었는데, 어찌 되었든 최고다양성책임자가 조직의 내부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결과까지 책임지는 위치에 오른 것만은 확실하다.
글로벌 기업 내, 전에 없던 새로운 직책이 생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관계의 평등’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을 넘어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경영에 대한 요구가 뜨거운 것도 소비자들의 기업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달라졌음을 반영한다. ESG란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평가를 말하는데, 특히 S(사회)와 관련하여, 근로환경에서 평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지, 직장 내 차별은 없는지, 여성 및 소수집단을 위한 정책이 존재하는지는 소비자의 큰 관심사항이다.
세계 최대 주얼리 브랜드인 판도라는 다이아몬드 채굴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 문제와 광산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를 없애고자 천연 다이아몬드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G(지배구조)와 관련하여서는,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이 충족되는지가 검토사항이다. 영국에서는 기업에게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다양성 충족에 대한 주주와 이사회의 압박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Sharon Florentine, “다양성과 포용성은 혁신과 직결··· 베스트 프랙티스 8가지”, CIO, 2020.03.05).
그동안 기업의 존재 이유를 ‘이익 실현’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과 구성원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이 강조되고 있고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현재의 리더십 활동을 재정립하고 있다. 당장의 효용성과 수치 위주의 업적 추구를 해 오던 기업과 리더는 더 이상 생산성을 요구하는 자본의 논리에 끌려가지 않는다.
회사는 구성원을 존중하는 것이 조직 문화를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고, 그것은 구성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작업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고 더 나은 일상을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