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joomi Aug 19. 2019

왜 내 취향을 나누고 싶은걸까요?

결국 너는 타인인데

"취향이 명확하네."


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다고들 해줍니다. 이런 면이 매력적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요(고마워요).


검은 옷.

에세이류 도서.

라벤더 향.

캐모마일 티.

드립 커피.

마블 영화.

힙합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블랙&화이트 도트 패턴.

과일은 수박.

계절은 여름(특히 여름밤).

브랜드는 무인양품, A.P.C., 메종키츠네, 뉴발란스.


어린왕자를 좋아하고, 음주가무를 좋아하며, 머릿속에 떠도는 단상들(주로 실체가 없는 것들)을 되는대로 떠들다가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년에 한 번씩, 올해로 13번째 읽고 있는 어린왕자.

사실 이런 것들을 취향이라는 단어로 포괄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달리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취향들은 대부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혼자 소화해왔습니다. 사실 혼자 시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던 중에 찾은 취향들인지라, 혼자 좋아하고 혼자 감동하고 혼자 울고 혼자 사모으고 해오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더라구요.

갑자기 문득 사무치게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순간이 옵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한다고. 너도 이걸 좋아하냐고, 아니라면 너는 어떤 걸 좋아하냐고. 묻고 알게 되고 나누고 싶어 졌습니다.



'왜 내 취향을 공유하고 싶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도 누군가와 나누다 보면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면들이 보이게 되더라구요. 상대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듣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책에 일러스트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거나,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피자책을 수집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여행지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어린왕자 책을 모으고 싶어졌다거나.

어떤 책인지는 아직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취향을 공유받다 보면 그중 80% 이상은 내가 몰랐던 것들입니다.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었으나 내 세상에는 없었던 것들이죠. 그 새로움을 받아들이며 받는 자극이 생경하면서도 흥분을 줍니다. 그중 어떤 것은 나의 취향이 되고 어떤 것은 지나가 버리지만, 어찌 되었든 그 과정에서 나의 세상은 넓어지고 혹은 깊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과 나누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카드를 건네었을 때 상대가 이에 공감하면 정서적인 교감이 시작됩니다. 그 교감을 기반으로 대화는 많아지고 관계는 깊어집니다. 알게 된 지 오래지 않아도 빠르게 가까워지죠.  


그렇다고 해서 취향이 100% 일치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좋아하는 영화가 몇 개 겹친다거나, 즐겨 듣는 음악의 장르가 비슷하거나, 같은 취미를 가진 1차원적인 교집합도 아닙니다.

그저, 가진 세상이 넓어 나눌 것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누더라도 결국엔 그는 그만의 나는 나만의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을 알지만, 서로 영향을 주며 각자의 세상을 넓혀가고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혼자 소화하며 살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완벽한 타인이니까요.

모르겠고.

그냥 좋아요. 그 과정이.

작가의 이전글 나의 여행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