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 고등학교 담임샘을 만나러 가며
오십이 다 된 나이로
삼십 년 전 담임샘을 만나러 간다.
아무리 단장한들 서른 해 전 모습으로 돌아갈 일 만무하나
마음은 벌써
열여덟 여고생으로 춤을 춘다.
여름 햇살 아래 선생님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교정으로 데려다 놓으신다.
좀 있으면 올림픽도 열린다는데
우리집은 잔치를 치를 수 없었다.
교복이 자율화 되었다는데
나는 자유롭지 못 했다.
그저 나이키 운동화 아닌 발만이 부끄러운 열여덟이었다.
도시락을 열면 가난의 냄새가
김치와 함께,
엄마의 낡은 긴 치마의 무늬가
밥알 사이마다 박혀,
오빠의 흔들리는 눈빛들이
멸치마다 뿌려져,
아프고 아픈 열여덟이었다.
결핍된 것들에 대한 아픔과 간절함이,
꾸며댈 수 없는 현재의
적나라함이
늘 도시락을 열면 함께 했고
오롯이 마주해야 했었다.
엄마의 따뜻한 솜씨와
맛난 사랑은 언제나 한 발 늦게 와
나를 더 우중충하게 했다.
이제 난
더 이상 도시락 앞에서 기죽지 않는
나이가 되어 선생님 앞에 서 있다.
아~~
알아버렸다
도시락 속에는
부끄러움과 결핍들 사이사이
그리운 이들의 얼굴과 추억이 담겨져 있었음을…….
되돌리고 싶지 않은 가난만의 열여덟이 아니라.
내 사랑들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절이었음을
햇살아래 눈부심으로 알았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선생님을 보고 울었다.
선생님 얼굴은 도시락이 되었다.
도시락은 아픔과 사랑이 되었다.
아픔과 사랑들은 모두 가버렸다.
난 도시락 앞에서 다시 얌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