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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08. 2016

도시락

토요일 - 고등학교 담임샘을 만나러 가며

오십이 다 된 나이로

삼십 년 전  담임샘을 만나러 간다.

 

아무리 단장한들 서른 해 전 모습으로 돌아갈 일 만무하나

마음은 벌써

열여덟 여고생으로 춤을 춘다.

 

여름 햇살 아래 선생님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교정으로 데려다 놓으신다.

 

좀 있으면 올림픽도 열린다는데

우리집은 잔치를 치를 수 없었다.

교복이 자율화 되었다는데

나는 자유롭지 못 했다.

 

그저 나이키 운동화 아닌  발만이 부끄러운 열여덟이었다.

 

도시락을 열면 가난의 냄새가

김치와 함께,

엄마의 낡은 긴 치마의 무늬가

밥알 사이마다 박혀,

오빠의 흔들리는 눈빛들이

멸치마다 뿌려져,

아프고 아픈 열여덟이었다.

 

결핍된 것들에 대한 아픔과 간절함이,

꾸며댈 수 없는 현재의

적나라함이

늘 도시락을 열면 함께 했고

오롯이 마주해야 했었다.

 

엄마의 따뜻한 솜씨와

맛난 사랑은 언제나 한 발 늦게 와

나를 더 우중충하게 했다.

 

 

이제 난

더 이상 도시락 앞에서 기죽지 않는

나이가 되어 선생님 앞에 서 있다.

 

아~~

알아버렸다

도시락 속에는

부끄러움과 결핍들 사이사이

그리운 이들의 얼굴과 추억이 담겨져 있었음을…….

 

되돌리고 싶지 않은 가난의 열여덟이 아니라.

 

내 사랑들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시절이었음을

햇살아래 눈부심으로 알았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선생님을 보고 울었다.

 

선생님 얼굴은 도시락이 되었다.

도시락은 아픔과 사랑이 되었다.

아픔과 사랑들은 모두 가버렸다.

 

난 도시락 앞에서 다시 얌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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