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잡채'이야기 시작

by 도시락 한방현숙
'잡채'가 왔다.

‘잡채’가 왔다. 2018.05.18. 에 태어났다는 ‘잡채’가 2018.07.22 일요일 밤에 우리 집에 왔다. 주차장에 ‘잡채’를 데리러 간 막내 품에 꼭 안겨서 거실에 들어선 강아지 ‘잡채’는 예상보다 두 배정도 컸다.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에 폭 붙어서 눈만 두리번거리는 것이 입양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일단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 가득하게 했다. 차를 오래 타고 왔다니 멀미라도 한 모양이었다. 걷지도 않고 바닥에 짝 달라붙어 꼼짝 안 하는 ‘잡채’에게 우리 모두는 털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했다. 무서움에 두 눈동자만 굴리던 ‘잡채’는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반려견 입양
잡채도 아이들도 첫날 새벽까지 이러고 있었다.

반려견을 입양하기로 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아이들은 언제나 ‘강아지 키우고 싶어’를 연신 입에 달고 살았지만 난 허락하지 않아 왔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았지만 ‘털, 냄새, 대소변, 책임, 비용 등’ 강아지를 키울 수 없는 이유는 끝이 없었기에 절대 ‘지금’은 아니고 어쩌면 키우더라도 언제나 ‘나중’이 답이었다.

막내와 반려견 입양

그런데 멀쩡하게 잘 자라고 있다 생각했던 막내가 고교에 진학하자마자 친구 문제로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더니 고등학교 생활 적응의 어려움을 자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다른 아이들처럼 잘 이겨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5월이 되자 전학, 자퇴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더 심각해졌다. 온 가족이 모여 막내를 위한 회의, 조언, 충고 등이 이어졌지만 막내는 쉽게 마음을 잡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하루 종일 대안학교를 찾아 순례를 하기도 하고, 언니들은 막내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며 상담을 권하기도 했다. 가족과의 관계에 아무 문제없다 생각한 아이가 왜 그럴까? 5월은 나에게도 힘든 계절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중 비염으로 동물이라면 손사래를 치던 남편이 반려견 입양을 제안하고 허락해 준 것이다. 조금이라도 막내딸의 마음을 보듬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막내를 포함해 딸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만큼 이 결정은 평상시 아빠(반려견에 대한 생각)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획기적인 배려인가를 우리 가족 모두 알기에 나는 남편의 제안이 눈물겨울 따름이었다.

진돗개 얼굴과 짧은 다리 '잡채'
입양 프로젝트

그리하여 두 달여에 걸친 반려견 입양 프로젝트? 가 시행된 것이다. 일단 이름부터 지었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여러 이름을 거론하다가, 먹는 음식으로 하면 강아지가 잘 먹고 잘 산다 하여 결국 ‘잡채’가 되었다. 지인들은 두 번째 반려견은 ‘갈비’냐고 물으며 웃었지만, 두 번째 반려견 이름은 ‘만두’이다. 반려견 입양에 전적으로 책임을 진 막내의 입양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 일반 샵 분양의 문제점을 알게 된 막내는 가정 분양을 선택했다.
♡ 원래는 귀엽고 작은 포메라니안을 입양하려 했다.
♡ 원하는 강아지가 창원 또는 제주에 있어 한두 번 놓쳤다.
♡ 귀엽고 예쁜 강아지는 순식간에 바로 입양되어 놓쳤다.
♡ 견주의 마음이 갑자기 바뀌어 당일에 입양이 취소되기도 했다.
'잡채'와의 인연

그러다 우리 ‘잡채’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엄마가 진도코기인 3남매 중에 다리 짧은 둘째 누렁이가 우리 ‘잡채’가 되어 가족이 된 것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저리 적응을 잘하며 누나들에게 재롱을 부리는데, 주눅 든 첫날의 ‘잡채’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고 아플 뿐이다. 우리의 염원대로 잡채가 잘 자라 건강한 반려견으로서 오랜 시간 함께 하길 바란다. 겁이 많고 호기심이 많다는 원래 주인 말처럼 ‘잡채’는 정말 궁금한 것이 많아 그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

잡채를 알게 된 분양 사진-2남 1녀 중 둘째 잡채
반려견 1,000만 시대

반려견 1,000만 시대라 한다. 반려견 수가 늘어날수록 유기견은 물론이고 동물학대, 소음, 공포, 무개념 견주 등 사회문제도 같이 증가하고 있다.

♡ 저녁 아파트 산책길에 갑작스레 달려드는 강아지 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목줄을 매지 않고 활보하는 개들 때문에 짜증 날 때도 여러 번이었다.
♡ 강아지 똥을 치우기는 하나 분리수거장에 대충 버리고 들어가는 견주들을 혐오했었다.
♡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 개는 안 물어요.” 하는 견주의 몰상식에 눈을 치켜뜨기도 했다.
♡ 아파트 단지 내 개똥을 보고 혀를 끌끌 찼으며, 짖어대는 개를 진정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다.

이제는 내가 견주가 되었다. ‘잡채’의 재롱과 귀여움뿐만 아니라 ‘잡채’의 나중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늙어 병들거나,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아버지 ‘잡채’가 되어도 지금처럼 사랑하고 절대 ‘유기’ 하지 않아야 할 견주가 된 것이다. '잡채'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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