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단어로만 알았던 낯선 ‘댕댕이’란 말이 차츰 내 안에 들어오는 보름 동안, 반려견 ‘잡채’를 키우며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변하게 되었다.
털과의 전쟁 후 타협
귀엽고 사랑스러움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기쁨이지만 대신에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다. 오자마자 배변패드에 대소변을 가리는 영특함에 안심했지만 수없이 빠지는 털 잔치에 이미 거실은 ‘잡채’판(개판)이 되었다. 머리와 목 주변의 보드라운 털에 비해 엉덩이로 내려갈수록 거칠고 긴 털이 쓰다듬기만 해도 뭉텅 빠졌다. 어찌 사나 싶었는데 놀랍게도(평소보다 2~3배의 청소기를 돌리며) 털과 함께 잘 지내고 있다.
말랑 젤리 발바닥
털복숭이 ‘잡채’에게 아기 손길처럼 따스하고 보드라운 살결이 있음을 알았으니 바로 발바닥이었다. 말랑한 그곳에서 연한 어린 것의 온기를 느끼게 되면 끝까지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특히 ‘잡채’는 다리가 짧은 웰시코기의 모습이 있어서 두 발을 모아 있기라도 하면 저절로 그 귀여움에 ‘심쿵’한다.
귀 없다 -귀요미
전에 미국에 계신 ‘불이’ 작가님으로부터 ‘dog ear’라는 단어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요즘 ‘잡채’ 귀를 보면 왜 미국인들이 그런 표현을 쓰는지 새삼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말 아기 ‘잡채’의 귀가 책 모서리 한 귀퉁이를 접어 놓은 그 모양 그대로 생겼다. 좀 자라면 귀가 서서 더 멋진 ‘잡채’가 되겠지만 지금 세모 모양으로 내려앉은 귀를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면 정말 순수함 그 자체로 예쁘다.
서로 모르는 세상일수도...
휴대전화 갤러리에는 ‘잡채’ 사진으로 도배된 지 이미 오래이다. 가족 단톡방에도 실시간 ‘잡채’ 모습을 올리고 궁금해 하느라 계속 소식을 전한다.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둘째도 ‘잡채’ 매력에 빠질 것 같다 말한다. 그러나 우리끼리의 이야기이다. 모임에서 ‘잡채’ 이야기를 한두 번 했더니 반응이 제각각이다. 몇 번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점은 가능한 한 서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서야 내가 온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이야기가 잘못 흐르면 순식간에 내가 비정상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경험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똥 싸고 개털 날리고 아유, 냄새는 또 …….”
“ 그 큰 개를 아파트에서 어찌 기르려고…….”
“쯔쯧, 돈이 얼마나 많이 든다는데…….”
라는 걱정을 넘어
“난 수만금을 준다 해도 안 키워…….”
“ 글쎄 누구는 키우던 강아지 죽었다고……, 개 팔자가 더 나아!”
라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쏟아내면
나는 금세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개와 뒹굴며, 돈 귀한 줄 모르고 사는 철딱서니 없는 사람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물론 '무 개념 견주'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대화이겠지만 당분간 이들과의 ‘잡채’관련 대화를 자제하려 한다.
'잡채' 베스트 컷
‘잡채’는 오늘도 열일하며 수없이 베스트 컷을 쏟아낸다. 생후 3개월 차에 들어가는 ‘잡채’는 지금 학습효과 최고의 시기를 맞고 있다. 가정교육 잘 받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프로에 어울리지 않는 견성을 갖춘 반려견이 되도록 잘 길러야겠다.
이미 콩깍지
우리 아파트 7층 포메라니안은 어찌나 예쁘고 세련된 미모를 자랑하는지……. 그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 칠 때마다 어디 한번 눈인사라도 나누고 싶어서 바라볼 양이면 그 도도한 자태에 아쉬움이 컸었는데……. 어느 날 보니 순둥순둥한 모습으로, 주둥이가 더 튀어나오고 새카매지지만 여전한 순박미를 지닌 ‘잡채’가 훨씬 더 예뻐 보였다. 이미 내 눈에 ‘잡채’ 콩깍지가 두껍게 씌었기 때문이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