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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Nov 01. 2018

미워지는 날(日)!

가라앉은 날(我) 지켜봅니다.

 포근한 겨울 외투를 급하게 챙겨 입은 오늘 같은 날, 종일토록 쌀쌀한 날씨 속에 사랑으로 충만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미움으로 가득한 날을 보내느라 심신이 피곤했다. 하루 종일 몰두해서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워하기가 얼마나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일인 줄 잘 알면서도 미워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나마 미움의 대상이 친구나, 친척이나, 가족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위로라도 삼아야 할까? 그저 아는 사람일 뿐인데도 하루 종일 소란스러운 나를 돌아본다. 근간의 일들을 떠올리니 심기가 불편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내 탓이든, 남의 탓이든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태롭게  했다.


 주제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으나 나는 대단히 무능력하거나, 대단히 무례한 사람들을 유독 싫어한다. 무능력과 무례의 기준 또한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수 있으나 동종 업무에 함께 종사하다 보면 대개가 뻔히 알게 된다. 무관심이 무능력으로까지 이어질 때는 경멸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반대로 진정성을 가지고 업무에 충실한 사람이나 교양 있는 사람들을 대단히 존경하고 당연히 좋아한다.

 

 10월 중 다양한 학교 행사를 치르면서 비협조적이고 비합리적인 몇 가지 일들로 답답하고 재미없는 날이 많았다. 게다가 보람까지 없는 일이 되고 보니 맥이 풀렸다. 다행히 교사의 주 업무가 수업이니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과 웃을 수 있어서 그나마 틈틈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으나 여러 날 마음이 힘들었다.

 같은 과 교사로서는 보기 드문, 전문성과 자부심이 부족한 동료교사와 일을 해야 하는 마음, 무조건 나이나 경력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려는 일련의 일들, 나름 기대를 가지고 진행한 사업에 대한 관리자들의 무관심과  ‘수고했다’는 말조차 인색한 이들에 대한 섭섭함, 본인 때문에 틀어진 일에 대해 한 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은 이들의 무례함 등이 견디기 어려웠나 보다.

 그래도 학교를 벗어나면 그뿐이었다. 집에 가서 곱씹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직장에서의 업무란 그런 것이니, 나 또한 그들에게 스트레스 유발자일 수도 있을 테니…….


 그러나 주말을 지나 오늘까지 나의 심사를 어지럽게 한 이는 따로 있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채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나를 흔들어대고 있다. 억울했다가, 기가 막혔다가……. 가라앉았나 싶으면 다시 괘씸했다가, 어이없었다가, 분했다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감정을 유발해댔다. 이 나이 되어서도 이런 일을 경험할 줄이야! 내용은 간단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밉보여 하루 종일을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경험한 것이다.


 교묘하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그저 다른 이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 뿐인데 왠지 나만 열외되어 겉도는 듯 하는 느낌! 뭐라 내색할 수도 없으나 그녀는 분명 나에게는 다른 차별적 대꾸를 일삼으며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함께 있는 애먼 이들에게까지 섭섭함이 일 정도로 기분이 우울했다. 무례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나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아가며, 치는 대로 흔들리고 있는 격이었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내가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거나 또는 더 이상 애쓰고 싶지 않을 때가 오면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약방문 같은 글귀이다. 빠른 포기라고 안쓰러워할 수도 있고, 자기 합리화라고 비웃을 수도 있으나 그나마 피할 수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나름 정신 건강을 챙겨온 방법 중의 하나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너무 버겁게 느껴질 때 딴지라도 걸듯 시작한 주문 같은 나만의 글귀가 된 지 꽤 오래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피하는 중’이다. 파도처럼 몰아치던 분함도 잔잔해지니, 나의 말과 행동도 차분히 돌아보게 되며, 온전히 ‘즐길 수 없는 곳’을 멀찌감치 떠나 ‘피하는 중’이다. 그리고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상대방의 마음과, 결과적으로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중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라고 했던가! 그러나 스님인 이상 절을 벗어날 수 없으면서도, 절이 싫어 떠나야만 했던 스님처럼 나의 마음은 곧 다시 그곳에 갈 줄을 나는 안다. 그러나 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을 디딜 생각이다. 깊어가는 가을 우리학교 모과가 다 떨어지고, 내리는 눈꽃의 설렘도 희미해질 만큼 겨울이 아주 깊어질 즈음, 혹은 새 달력이 시작될 즈음에야 아주 천천히 움직일 생각이다.


 오늘의 고민과 마음 상함과 우울함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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