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고생한 나의 장기, 자궁이여!

기특한 완경을 위하여!

by 도시락 한방현숙


딸, 딸, 딸 엄마

딸 셋이 어느덧 자라 20대 청년이 되었다. 막내까지 내년이면 20살이 되니 그토록 그녀들이 예언했던 그 좋은 날들이 찾아올 때가 되었다. 2002년생인 막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공원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외 곳곳에서 수없이 내 앞에 나타나던 그녀들. 생면부지의 나에게 왜 아는 척을 하는지, 왜 굳이 다가와 측은해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은 수시로 나타나 말을 걸어왔다. 심지어 어느 할머니는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어느 아주머니는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단지 딸, 딸, 딸,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그러다 결국 그녀들이 공통으로 마무리하는 말은,

“괜찮아, 이다음에 좋을 거야!”

누가 뭐라나? 왜 함부로 나를 위로하고 측은해하는지 비뚤어질 테야 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힐끗거리기도 하고 지금도 좋은데요……. 라며 어설픈 웃음으로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꽤 오랫동안 그녀들의 들이댐을 막아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딸 바보’라는 말이 흔해지고, 오히려 아들만 둔 엄마들이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 것을 보니, 세상은 변해가나 남 일에 함부로 참견하는 무례는 쉽게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Secret Party

지난 토요일이 혹시 그녀들이 예언하던 그 좋은 날들의 시작이었을까? 딸들이 모여 나의 ‘Secret Party’를 구상했다고 한다. 코로나 19 대응으로 지인들과의 사회적 거리는 멀어졌으나, 집안에 하루 종일 모여 있는 우리 모녀들의 물리적 거리는 부쩍 가까워졌으니 수시로 식사 후 티타임을 가진 덕분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지구의 공기청정과 함께 잦은 가족 간의 얼굴 마주하기는 코로나 19가 가져온 역설적 덤이라고 해야 하나? 이야기 끝에 엄마의 신상 정보도 공유하게 되었는데, 딸들은 놀라며 왜 이야기하지 않았냐며 호들갑스럽게 반응했었다. 그 결과가 ‘Secret Party’로 이어졌나 보다.

나의 월경기

15살에 생리를 시작했으니 어언 40년 세월이 흘렀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 잡지와 친구들로부터 얻은 정보가 다였던 시절, 그럼 혹시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피를……. 이라며 경악하던 때가 있었으니, 2차 성징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 순진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TV를 켜면 자주 나오던 ‘후리덤’이라는 음향이 생리대 광고임을 알고 부끄러움에 눈이 동그래졌었고, 중1 가정 책 33페이지에 나오던 ‘배란과 임신’ 단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그 페이지를 읽어야 했던, 일주일 전부터 볼이 달아오르던 33번이었기 때문이다.

쓰러질 듯 극도의 생리통으로 고생했다. 생리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모든 플라스틱 용기를 정리하고, 면 개짐으로 된 생리대를 사용했다. 슈퍼 계산대에 던져질 생리대 걱정에 늘 붉어진 얼굴을 어쩌지 못하고 서성댔다. 방에 들어온 오빠에게 생리대를 보인 것 같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수면 중 불편은 물론이고 이부자리를 버려 난감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갑자기 찾아온 생리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하교했을 때도 여러 번이었다.

결혼 후 생리통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결혼 예찬을 읊을 만큼 생리통은 끔찍했다. 생리통의 고통은 같은 여자들(참을 만한 생리통을 겪는)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 한다. 이런 고통을 딸 셋이 고스란히 겪고 있으니 때마다 안타깝다. 아빠에게 스스럼없이 생리대 조달을 부탁하는 딸들을 볼 때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부끄러워만 하고 쉬쉬하던 나만의 생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때로는 당당해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우리 집 딸들은 원하지 않아 초경 축하식을 패스했지만 요즘 엄마들은 살뜰히 딸들을 챙기는 것 같다.

나의 완경기

유명 드라마(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엄마(나중에 늦둥이 임신으로 드러났지만)처럼 심하게 우울증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갱년기가 오고 서서히 폐경의 조짐이 보이니 수시로 얼굴이 붉어지고, 팔다리가 저리고, 열기가 솟아오르는 증상이 찾아왔다. 드라마에 나오는 중년 여성이 한겨울에도 선풍기 앞에 앉아 부채질까지 하는 것이 과장이 아님을 이제야 알았다.

‘늙어간다’를 ‘익어간다’로, ‘폐경’을 ‘완경’으로 바꿔가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표현에 위로받고 불면증 등으로 심하게 고생하는 다른 친구를 떠올리며 마음을 추슬러보지만 때때로 무너지기 일쑤다.

갱년기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조용히 혼자서만 품었을 우리 어머니 세대들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언니의 폐경’이라는 소설 제목이 등장할 만큼 가까워진 여자의 생리, 월경이지만 '여자 아닌 이'들이 이해하는 ‘월경’이란 것이 얼마나 우리의 생각과 동떨어진 것인가도 되새겨 보았다.

출처-다음 이미지
나의 완경식

토요일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안방에서 나오니 딸들이 행사를 마련하고 있었다. 늘어진 셔츠 차림으로 불시에 소환되어 찍힌 그날의 사진이지만 볼 때마다 감격스럽다. 딸들은 나에게 축하 머리띠를 씌어주고 아기자기 소품으로 꾸며진 식탁으로 안내했다. 벽면 가득한 풍선들과 환한 촛불들이 나와 남편을 아름답게 둘러쌌다. 딸들은 완경 축하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들려준 후 나에게 상장을 주었다. ‘좋은 엄마 상’과 ‘최고의 선생님 상’이라 쓰인 상장이었다. 쑥스러웠지만 딸들의 진심이 느껴져 행복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옆에 앉은 남편도 함께 축하해 주었다. 아마 엄마가 앉아계셨다면 요즘은 아주 별난 것도 다 한다며 고운 잔소리도 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완경식은 꽃피는 봄에 치러졌다. 아들이라도 가능했을, 고생한 엄마를 위해 마련했을 행사였겠으나 생리로 이어진 여자, 딸들이 마련한 행사라서 더 의미가 깊었다.

오랜 세월 고생한 나의 장기,
자궁이여!

완경식에 초대되었다 해서 변한 것은 없다. 그저 내 수고로움을 알아준 가족들의 마음이 고마울 뿐이지, 내 몸은 계속 삐걱거리고 있다. 앞으로 계속 내 몸에서 빠져나갈 영양소들과 함께 내 건강도 숭숭 뚫린 구멍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갱년기가 아닌 노년기의 힘듦으로 몸살도 앓을 것이다.

다만 시간의 흐름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동반하리라는 희망을 품어 위안을 삼아 본다. 아들과 딸의 구별이 없고, 여성과 남성이 대립하지 않고, 가진 자와 그렇지 못 한 자와의 차이에서 깔창 생리대와 같은 충격적인 단어가 입에 오르지 않기를 바란다.

오랜 세월 고생한 나의 장기, 자궁이여! 번창하던 꽃 대궐을 지나 차분하게 담장을 정리하는, 기특한 나의 자궁이여! 월마다 치러야 할 잔치는 끝났지만,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칭찬하며 허전함에 빠지지 않기를, 새로운 단장으로 대궐을 가꾸며 천천히 거닐어 쉬어 보길,

고마워! 수고했어! 정말 대단해!

더불어 완경의 의미를 새겨주고 알아주고 축하해 준 딸들에게도 한 마디! 앞으로 좋은 날 시작인 거지?

꽃길만 걷자고, 오늘은 욕심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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