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기분 전환하고 와!'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했다. 소라, 문어숙회와 당면 요리

by 도시락 한방현숙
정말, 이 시기에?

달 전 토요일 아침, 큰아이가 평상시와 다른 모습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했다. 다시 바라보는 내 눈빛에 답하듯이 아이는 오늘 데이트를 하는데, 뮤지컬을 보러 간다며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밝게 말했다.

“ 정말, 이 시기에?”

“ 조심할게요, 마스크 꼭 쓰고, 거리 유지하면서 긴장할게요.”

“…….”

내 기색을 살피던 아이의 표정이 금세 가라앉았다.

“ 코로나 때문이 아니었어요?”

“…….”

내가 말한 ‘이 시기’와 아이가 해석한 ‘이 시기’가 결코 같은 뜻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아이의 표정에 스치듯 잠깐이었지만 몹시 섭섭함이 가득했다. 아이의 심정을 읽었으면서도

“ 그래, 기분 전환하고 와!”라고 쿨하게 말하지 못했다.

임용고시 준비 3수째인 큰애의 힘듦과 고충을 왜 모르겠는가! 새벽에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는 모습, 등판보다 더 큰 가방을 거북이 등딱지처럼 메고 다니는 모습, 질끈 동여맨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햇빛 가득한 날에도 도서관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모습, 생기 없이 흐르는 청춘이 아깝기만 한데,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통 크게 “ 그래, 기분 전환하고 와!라고 아이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았다.

신규로 임용된 후배 교사들이 "다른 것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했더니 붙었어요."라는 말을 내 아이 입에서도 듣고 싶었던 거였다.

♡ 힘들다지만 그래도 다른 걱정 안 하고 공부만 할 수 있잖아.
♡ 풍족하지는 않지만 용돈 받으면서 시험 준비하잖아.
♡ 다른 사람들은 기간제 교사나 생계유지를 위한 알바라도 하는데 그에 비해 너는 좋은 조건에 있잖아.
♡ 친구들 모임에 나가거나 데이트할 겨를이 어딨니? 무조건 공부에 매진해야지.

내 안의 수많은 말들이 일렁거렸다. 기대에 못 미치는 마음이 순간 아쉬움과 욕심으로 부풀어 올랐나 보다.

마음을 읽은 아이는 금세 풀 죽은 모습으로 외출하였고, 돌아와서도 인사 외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뮤지컬 내용이나 배우의 매력에 빠져 관람 후의 감상을 공유하느라 흥분 가득한 대화가 한참 이어지고, 어서 엄마와 함께 공연을 관람할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며 환한 웃음 지었을 텐데………. 그날 이후 시무룩한 아이의 표정은 도통 밝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만들었다.

그 후 새벽에 지쳐 귀가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미 풀어진 내 마음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좀 더 참지 못한, 기다려주지 못한 그날의 내가 자꾸 후회되었다. 겉으로는 응원한다며, 힘내라며, 네 잘못이 아니라 사회구조 탓이라며 아닌(멋진) 척은 다 해놓고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분의 응원과 위로 덕분에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요."
라는 어려움을 견뎌낸 이들의 단골 멘트 '그분'이 '나'는 될 수 없었던 것일까? 자식들이 취준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속상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었건만, 멋지기는 커녕 후진 내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서 준비했다. 소라, 문어숙회와 당면 요리를……. 해산물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는 아이에게 짠하고 미안한 마음을 보태 소소하게 만들어 보았다.

김수미의 '당면 계란 만두 요리'라 불린다.
♡ 냉장고에 있는 각종 채소(당근, 양파, 가지, 버섯, 깻잎, 고추 등)를 다진다.
♡ 참치와 햄도 다져 넣는다.
♡ 당면을 물에 적당히 불려 삶아 물을 뺀 후 짧게 다진다.
♡ 설탕, 참기름, 간장을 1:1:2 비율로 맞춰 간을 한다.
♡ 달걀 4개를 넣어 고루 섞은 후 반죽을 완성한다.
♡ 팬에 반죽을 타원형으로 떠 넣어 길게 부친다.
♡ 한쪽이 익으면 반만 뒤집어 만두 모양으로 만든다.
♡ 케첩과 함께 먹는다.
당면이 길게 잘라졌다. 참치는 넣지 않았다.
소라 2kg(14,000원 어치)을 샀다. 크기가 작다. 생선가게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3분 삶았다.
♡ 소라를 껍데기 째 솔로 잘 닦는다.
♡ 물을 자작하게 부어 삶는다.
♡ 포크로 살을 빼낸다. 내장과 살을 분리한다.
♡ 먹기 좋게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소라 다듬기 전, (내장과 가느다란 퍼런 선 등 모두 제거했더니 먹을 게 없다.)
♡ 문어를 빨판까지 꼼꼼히 잘 씻는다.(살아 움직이는 힘이 강해 씻기 쉽지 않다.)
♡ 끓는 물에 무를 넣고 3분 삶으라는데, 무가 없어 그냥 삶았다.
♡ 먹기 좋게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삶기 전 강력한 빨판의 힘으로 살아 움직여 기겁했다.
15,000 원짜리 문어이다. 역시 작다.

한 접시도 채 안 나오는 소소한 해물 숙회였지만 많은 의미를 담아냈다. 나의 20대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응원과 격려의 말조차도 상처로 다가와 많이 아파 봤으면서도……. 오히려 독이 되었던 가족의 걱정하는 문장들을 아직도 떠올릴 수 있으면서도…….

늘 반성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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