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알바!

책-불편한 편의점(정호연) 아니고요.

by 도시락 한방현숙

30여 년이 지났으니 가물가물 할 만도 하다. 잿빛 같던 나의 20대를 어느덧 잊었나 싶다. 다행히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원하는 직업으로 적성을 발휘하며 사는 동안 얼마간의 자존감을 회복한 듯한데,

◇ 치열했던 그때의 좌절과 상처!
◇ 연안부두의 상한 생선 냄새만큼이나 구질구질했던 하루!
◇ 옹색함과 초라함으로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그때!

자식들이 20대 청년이 되니 그때의 감정이 때때로 소환된다. 비정규직으로, 사회 초년생으로, 알바생으로, 취준생으로... 고단한 딸들의 청춘을 바라보니 금세 잿빛 마음이 된다.


◇ 기간제 교사로 부장교사를 잘못 만나 이유 없이 정서적 학대를 당할 때,
◇ 비정규직 사원으로 권위적인 팀장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느라 진땀을 뺄 때,


딸들 옆에서 함께 분노하고 속상해하고 한마음으로 따져 물었었다.


막내가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한 없이 약한 모습의 '을'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며 맥이 풀렸다.

매일 드나들던 편의점의 화려한 불빛만 보았지 그곳에서 카운터와 매장을 담당하는 알바생들의 사정과 노동 현장은 스치듯 남의 일이었다. 막내가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게 되면서 많은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주휴수당, 임금체불, 고용노동청, 폐기, 선입선출, 물류박스... 등등! 고단함과 어려움이 묻어나는 알바생들의 생활을 알게 되었는데,

최저 시급 9160원!

최저시급을 온전히 당연하게 받기 위해서 갈 길이 이리 멀지는 몰랐다. 수습기간이라고 떼고, 주휴수당 몰라라 하고...

5년 전 2017년 자료 <이미지 출처 -다음 이미지>
◇ 주휴수당은 주 15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휴일을 줘야 하기에 노동자가 유급 주휴일에 받는 돈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제55조)
◇ 주휴수당 지급 기준이 있다.(* 1일주일에 15시간 이상 근무해야 한다. * 근로계약서에 표기된 근로일에 모두 출근해야 한다. * 다음 주 근로가 계속 예정되어 있는 경우에만 지급된다.)
◇ 수습기간은 채용 후 근로자를 검증하고 업무를 교육하는 기간으로 3개월의 수습기간 동안 임금의 90%를 받는다.

정해진 호봉과 수당에 따라 30여 년 동안 월급을 받은 교육공무원으로서, 노동법이나 노동현실에 민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에 막내를 통해 들은 이야기들은 놀랍고 걱정스러운 내용이었다.

◇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근로시간을 쪼개기 식으로 계약한다는 것!
◇ 편의점은 수습이 필요한 업장이 아님에도 알바생에게 수습기간을 적용한다는 것!
◇ 심지어 막내 편의점 사장님은 주 15시간 이상씩 일하도록 계약하고도 주휴수당을 줄 수 없다고 버틴다는 것!
◇ 따져 묻는 알바생들에게 괘씸죄를 적용하여 위협을 하는 것!
◇ 다른 알바생에게는 폐기 제품을 먹었다고 덤터기 씌워 소송을 한다는 것!

알바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스트레스를 말하는 막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갈수록 불안해졌다. 그냥 어서 정리하고 다른 곳에 알바를 구하는 게 어떠냐며 부모로서 안전을 꾀하는 회피형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다.

막내는 의외의 진지한 모습을 보이며 (성인이니)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지켜봐 달라고 이야기해 조금 놀라기도 했다.

막내는 고용주와 여러 번의 문자와 전화로 자신의 뜻을 밝히고 당당히 수당 지급을 수차례 요구하는 것 같더니 급기야 임금체불까지 이어지자 마음을 굳게 먹은 것 같았다. 고용노동청, 신고, 임금체불, 주휴수당... 등과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며칠 동안 애면글면하였다.

처음에는 고용주의 부당함과 무례함에 함께 분노하고 뜻을 같이 하였으나 갈수록 일이 커지고 어려워지자 덜컥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어수선한 세상의 수많은 갈등 상황에서 별의별 불운한 일들을 신문지상에서 보아왔기에 뒷걸음치는 마음으로 아이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은 단호했다. 공정성과 도덕성에 민감한 MZ 세대의 모습을 여실히 담고 있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노동의 대가를,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수당을 이런 노고를 치러야만 받을 수 있다니!

몇 주의 시간이 흐르고, 떨리는 기다림 속에 마음 졸이던 막내는 드디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밀린 임금을 받던 날, 갑자기 무너지듯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사장님 앞에서 얼마나 졸았는지, 고용노동청 입구에서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근로감독관 앞에서 얼마나 얼어붙었는지를 이야기하며 이제야 눈물을 찔끔 보였다. 그동안 씩씩하고 당당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만 보이더니,

등을 토닥이며 애썼다,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두 각자의 어려움이 있고, 사정이 있겠으나 최소한 부끄러운 어른, 창피한 사회는 되지 말자. 치솟는 건물 임대료, 원자재 인상 등등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애꿎은 청년의 시급으로 모면하려 하지 말자. (더 달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법이 정하는 대로, 일한 만큼 지불하라는 말이다.) 물론 어려움 속에서도 규정을 지키고, 인정을 베푸는 상식적인 사장님이 더 많다는 것을 안다.

라떼는 말이야. 1987년 스무 살 때 인천 신포동 유명 평양냉면집에서 냉면 한 그릇 값으로 6시간을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냉면 한 그릇 가격이 2,500원이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막내와 나의 스무 살 알바를 겹쳐본다. 사회,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후진 사회 모습을 벗고 선진사회로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노력, 희망, 꿈이라는 좋은 단어들로 청춘을 감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 세대별 처한 어려움이 크겠으나 최소한 청년들의 알바비는 법대로 지급하자. 어른으로서 꼼수 부리지 말고 나잇값은 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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