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3막을 시작하며!

브라보~마이 라이프, 인생아!

by 도시락 한방현숙
아이들이 돌아왔다.

저녁시간에 6인용 식탁이 다시 와글와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온 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신명난다. 엄마가 손수 만든 집밥 음식이든, 손가락 까닥거리며 주문한 배달 음식이든 상관없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평안한 얼굴이 그저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하루는 느리고, 일 년은 빠르다고 했던가! 10여 년이 훅 지나간 듯하다.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은 성인의 모습으로 같은 식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밝은 얼굴로 대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그저 대견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고, 집안의 주요 물건들이 교체되며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던 때, 그 시절 아이의 유치원 모습, 엄마의 떡볶이와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외치던 초등학교 시절,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느라 재잘거리던 여린 입술, 밥보다 잠이라며 결국은 아침 빈속에 책가방을 둘러메고 인사하던 중학교 시절, 그리고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한숨을 자주 쉬던 고등학교 시절!

이 식탁 자리마다 그 시절 아이들의 모습이 서려있다. 그러다 언제부터일까? 조용해진 식탁과 뜸해진 우리의 눈빛들,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만큼 우리들의 시간도 멀어진 듯하다. 한동안 식탁은 텅 빈 채로 비어 있었고, 꽤 오랫동안 우리를 조용히 기다려 준 듯하다.

인생을 살다 보니 몇 가지 전환점이 매 시기마다 나타나곤 했는데, 지금 또 한 고비를 넘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 뭐 별거겠는가! 태어나서 부모님 밑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한 후 꿈을 키우다 직업을 갖고 사랑과 연애를 통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부모님이 가신 길을 다시 밟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평범한 삶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인생 1막: 출생-교육 <성장>-직업 <꿈>-사랑
인생 2막: 결혼-육아(교육)-뒷바라지
인생 3막: 성인이 된 자식 -세대교체-자녀 결혼 전까지
인생 4막: 황혼기 - 이별 준비기-인생
인생 3막을 시작하며

아이들이 돌아왔다. 이 시기를 나는 인생 3막이라 부른다. 인생 3막에는 몇 개의 장이 펼쳐질지 기대와 설렘과 흥분을 함께 느껴 본다. 나의 손을 타던, 나의 이끌림에 따라오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점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취업과 결혼 등 아직도 뒷바라지할 일이 엄청 많이 남아 있지만, 막내까지 대학 입학을 하니 숨 돌릴 시간이 자주 찾아온다.

3년 내내 거북이 등딱지 마냥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도서관 생활을 하던 첫째는 아무 경력 없이 마냥 임용고시 준비만 할 수는 없어서 올해 중학교 교사로 출근하고 있다. 물론 정식 발령이 아닌 기간제 교사 신분이지만, 햇빛 없는 도서관이 아닌 것만으로도 아이는 밝아졌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피곤함, 반드시 꼭 붙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시험의 부담감, 교사 채용 인원과 비정규직에 대한 불안감과 불편함 등 여러 가지 문제는 변함이 없지만, 아침에 화장하고, 꾸미며 출근한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방에 있던 둘째도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왔다. 4년 간 떨어져 지냈던 시간들이 자잘한 이삿짐 살림살이에 모두 배어 있었다. 집밥의 따뜻함과 저녁시간의 평안함에 목말랐다며 나를 덥석 안으며 말하던 둘째도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해 사회복지사로서 병원에 출근하고 있다. 자살 사례 대상자를 관리하는 진중한 업무를 담당하느라 때론 지치지만 보람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초년생으로 적응 중이다.

나의 해방감의 최대치는 막내에게서 왔다. 지난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3 학생으로서 고민, 좌절, 코로나19, 실기시험 등의 부담감으로 힘들었는데,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니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원하는 과에 진학한 것만으로도 과분하다 여기며 잘했다 칭찬하고 있다. 공부에 취미가 없어 힘든 학교생활을 보낸 막내 입에서 '수업이 재미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가족은 웅~~ 감탄사를 연발하며 울컥했다.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직업도, 감탄할 만한 고액 연봉이 보장된 직장도, 알아줄 만한 명문대도 아니지만 나는 만족한다. 지난해 아이들이 방황하며 힘들었던 만큼 나도 힘들었나 보다. 올해 느끼는 어깨의 무게와 힘듦이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고 산뜻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브라보~마이 라이프, 인생아

매 저녁시간이면 학원에서,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허기를 때우며 각자 고생한 우리 딸들이 모두 식탁에 모여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잠깐의 휴식일뿐이라 할지라도 이 달콤함을 일단 즐기고 싶다. 내 품을 떠나 이제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청춘, 내 딸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인생이라는 연극을 다시 또 펼치기 위해 새로운 막을 올리려 분주한 나와 아이들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며 무사히 공연을 이어가길 응원한다.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아이들과 3막을 준비하는 나(2막을 끝내고)는 서로의 동지이고, 서로의 선배가 되는 어울림 속에 있다. 돌고 도는 관계 속에 세대가 교체되고 시간이 흐르며 오늘의 역사가 이어지나 보다.

매 순간이 처음인 인생길 위에서 서툴고 당황스러운 마음을 위로해 주고 위안받고 싶다. 20대가 처음인 것처럼 50대도 처음이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고, 엄마는 원래 처음부터 그랬었다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줄곧 잊어버리고 산다는 사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기에~

모처럼 다시 찾아온 주방의 전성기를 한껏 누리고 싶다. 식탁이 웅성거리고, 소란스러운 시간을 소중히 즐기고 싶다. 퇴근 후 썰렁한 주방에서 혼자 밥을 먹은 일이, 강아지 '잡채'와 대화하며 적적함을 이겨 본 일이 바로 어제 일이기에 감사함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작년에 한창 회자된 일이 있다. 유명 오디션에서 대상자가 부른 이 노래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가수 김광석이 부를 때는 우리 부모님 이야기였는데, 임영웅이 부를 때는 나의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곧 '노부부'에 속하는 나는 '노부부'가 아직 낯선데, 사람들은 의심 없이 우리를 '노부부'라 칭할 것이다. 늙어가는 나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하고 때론 두렵기까지 하지만 용기내 힘차게 3막을 시작하려한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래도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박수 소리 크게 울리는 갈채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브라보~브라보~마이 라이프, 인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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