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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Oct 29. 2021

나를 버리거나 혹은 놓치지 마세요.

저는 움직이지 않아요, 주인님이 올 때까지요.

 유기견 관련 영상에서, 종종 아주 낡은 빈집이나 또는 위험천만한 도로변을 떠나지 못하는 강아지들을 보게 되는데 이 강아지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일들이 여러 번이다. 아마 우리 모두의 추측대로 그곳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배가 고파도, 어둠이 와도 절대로 떠나지 못하고, 눈이 오고 비가 와 꼬질꼬질해진 털 사이로 눈망울만은 초롱하게 지 수 있는 것은 주인의 발소리와 냄새를 밝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아 살맛 나고, 버림받아 처참한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우주였던 주인이 사라진다면, 그런 주인이 나를 버렸다면... 여러 번의 파양과 입양으로 식음을 폐하고 우울감에 빠져 죽어가는 강아지들을 볼 때면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우리 인간의 무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꽃(김춘수)의 시구를 읊어내거나 소설 어린 왕자의 한 부분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반려동물은 내게로 와 특별한 의미가 되어서 '가족, 관계, 친구, 사랑'라는 단어와 함께 떠르는, 시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공간을 나누는 가족니 말이다.


 일요일 강아지 '잡채'와 밤 산책을 하는데, 알바를 끝내고 귀가 중인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 시각이기에 지하철역에서 내려 바로 집으로 들어가면 될 텐데, 산책하고 있는 강아지 '잡채'를 밖에서 꼭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굳이 전화했으리라. 막내의 그 마음 충분히 전해진다.

 저쪽에서 나를 발견하고 기쁜 발걸음으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강아지를 마주하는 기분은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낼 만큼 감미롭다는 것을, 저렇게 나를 좋아하는구나,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감이 털북숭이가 나를 보며 부비부비 비벼댈 때 최고조에 이른다는 것을 말이다.

 

  강아지 '잡채'와 막내의 (감동적인) 재회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나올 지경이니 우리 집 막내아들의 인기는 여전히 고공행진 임이 확실하다. 막내는 강아지 '잡채'와 며칠 만의 상봉인양 호들갑을 떨며 어둠 속 재회를 하더니만 금세 집으로 들어가겠단다. (하긴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으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허나 우리의 밤 산책은 이제 30분 지나,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 같이 발을 맞출 수가 없었다. 셋이 10분 정도 거닐다 막내가 집에 들어가려 하니 강아지 '잡채'의 산책길에 혼선이 생겼다. 강아지 '잡채'는 달콤한 산책을 접고 누나와 같이 들어갈 수도, 방향을 달리 잡은 누나를 놔두고 산책을 이어할 수도 없었나 보다.

 한 곳에 발을 붙인 채 꼼짝하지 못하고 사라진 누나가 올 때까지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기어이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마저 산책을 끝내자고 줄을 잡아당기면 나를 한번 올려보고는 강아지 '잡채'도 리드 줄을 당기며 버티었다. 가려다가 다시 그 자리에 서고 다시 또 서는 모습을 보니, 아~~ 우리가 정말 나쁜 마음으로 강아지 '잡채'를 잃어버리거나 놓친다면,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여기 붙박이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아려왔다.

 언제까지 여기서, 주인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어서 오세요. 나는 여기 있어요.

 

 그래서 그 유기견들이 더러운 개울가나 위험한 모서리 등을 떠나지 못하는구나. 그 자리, 그곳에서 주인이 사라졌기에 그 자리에 주인이 돌아올 거라 믿고 있는 것이구나. 강아지 '잡채'의 행동을 보니 마음이 애틋해졌다. 찡한 마음으로 강아지를 달래 겨우 산책을 마무리했다.

막내가 이름표 뒤에 '착하고 겁이 많아요, 연락 꼭 주세요'라고 전화번호와 함께 적었다.
퇴근 시간인데, 엄마는 오늘 늦나요? 왜 아직 안 오나요?

 강아지 '잡채'를 잘 보호하기 위해서 동물등록도 필하고, 바코드가 새겨진 외장형 펜던트 목걸이 이름표도 마련했다. 아파트 안에서만 산책하는 쫄보라 잃어버릴 위기는 좀 덜하다 싶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강아지 '잡채'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우리 가족이 없는 어둠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 강아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절대 편하게 잠을 자거나 맛있게 밥을 먹지 못할 것이다.

 강아지 '잡채'의 견생 스토리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불리고, 강아지 '잡채'의 사랑과 귀함을 짐작 못 하는 이에게 무심히 다뤄질 것을 짐작하니 강한 고통이 몰려온다.


 강아지 '잡채'와 일상을 함께 하며 오래 같이 살고 싶다. 때가 되어 그날(헤어짐)이 오고, 나이 들어 몸이 병들어 힘든 날들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무탈하게 지내고 싶다. 강아지 '잡채'는 할아버지가 되고, 나는 할머니가 되는 세월 속에서 서로 의지하는 든든한 사이가 변함없었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우리(강아지와 나)의 소중한 인연을 정리해 본다. 사막여우와 어린 왕자의 만남은 우리를 항상 감미롭게 한다. 사랑하는 이를 떠올릴 때의 소중한 마음이 우리를 감싸기 때문이다.

♡  네가 언제나 오후 4시에 와 준다면, 나는 3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 만약 네가 나를 길들여준다면, 너의 발소리를 알게 되어, 너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나는 음악이라도 듣는 듯한 기분이 되어 굴 밖으로 뛰어나올 거야.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
 널 언제나 안전하게 지켜줄게. 너를 길들였으니 끝까지 책임질게, 강아지 '잡채'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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