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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May 30. 2022

강아지와의 대화, 그 소통에 대하여

잡채야~~ 이제 말할 때가 되지 않았니?

 강아지와의 대화

 강아지 '잡채'의 4번째 생일이 지났다. 2018년 여름, 강아지 '잡채'가 온 이후 우리는 더 소란스럽고 활동적인 가족이 되었다. 강아지와 함께 한 꿈같은 시간 속에 입양과 반려에 서툴던 우리는 강아지의 시그널을 알게 되었고, 어리고 시크했던 강아지는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귀여움을 남발하며 우리를 웃게 하고, 우리는 강아지의 털끝 하나에도 감동하며 따끈한 체온을 함께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대화'가 가능한 사이가 되었다. 기특한 우리 강아지 '잡채'

 강아지 '잡채'가 반응하는 몇 가지 단어는 '잡채, 간식, 산책 등'이다. 물론 간식 앞에서는 '가져와, 돌아, 앉아, 웃어, 하이파이프, 파이팅, 뽀뽀, 점프, 엎드려, 기다려 등' 부지기수가 가능하지만 간식을 취한 후에는 나 몰라라, 먹튀 행동을 하기에 진정성 있는 대화라 할 수 없다. 매우 웃기는 녀석!
내 이름은 '잡채'

 자기가 '잡채'라는 것을 아는 것이 신기하다. '잡채'라고 부르면 방 안에서 달려오거나, 산책 시 뒤를 돌아보며 하던 행동을 멈칫하는 것이 기특하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대화가 가능하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필수 조건일 텐데, 강아지들은 이 어려운 것을 해낸다.

 '산책'은 나의 힘

 산책을 좋아하는 강아지로서 '산책'이라는 단어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어느 강아지는 '오늘 내가 산 책'이라며 책을 들었는데 목줄을 물고 온다 하고, 노견의 다리 관절을 생각해서 대화 중 '산책'이라는 단어를 신중하게 묵음 처리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우리 강아지 '잡채'도 예외 없이 산책에 열광한다. 산책을 가기 위해 버릇처럼 날리는 웃음에 빠져들어 홀리듯 피곤도 잊고 귀찮음도 버리고 밤 산책이라도 나간다. 혹시 강아지 '잡채'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산책'이라는 말을 발설이라도 하면 이미 모든 것을 안다는 눈치로 우리를 쳐다본다. 아니 째려본다. ㅎ ㅎ 마치 지금 산책 나갈 거 아니잖아요! 잠옷을 입고 산책이라니요? 저를 놀리는 건가요?

산책! 갑자기 뒤를 돌아볼 정도로 좋은 것.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대화

 오래전, 강아지 '잡채'가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쯤인 어느 겨울밤, 우리 가족 5명은 3시간 가까이 어두운 거리를 헤맨 적이 있다. 아파트 산책 중 하네스가 벗겨져 강아지를 놓친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아파트 배드민턴장까지 강아지를 끌여들이긴 했는데, 간식으로 별 유혹을 해 봐도 가까이 다가와 놀리듯 벗어나기만 할 뿐 소용이 없었다. 모임 중인 아빠가 달려오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아이들까지 몰려와 5명이 애를 써봤지만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 어린 막내는 끝내 눈물바람을 보이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추위에 얼어붙은 손을 부비며 저 멀리 강아지를 쳐다볼 뿐이었다. 게다가 강아지 '잡채'가 짖기까지 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다 나중에는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을 고생시키고, 이웃에게 폐를 끼칠까 안절부절 못 하게 하다니, 괘씸하기까지 했다.

♡ 강아지 하네스 목줄을 앞으로 당기면 안 된다. 100% 목과 발이 빠져 분리된다.
♡ '이리 와' 교육 완료 전인데, 아직 서먹한 관계에서 강아지가 내가 원하는 대로 따라줄 것이라 착각했다.
♡ 강아지 '잡채'는 놀이(나 잡아봐라~같은)라고 생각했나 보다.  
♡ 가만히 기다려 주면 스스로 다가왔을 텐데, 우리는 조급했다.
♡ 우리가 당황하고 흥분하니 강아지도 덩달아 우리 감정을 따라 느낀 것 같다.

 

 돌아보니 아직 반려견에 서툴던 초기, 대화가 안 되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이리 와' 하면, 가던 길을 되돌아 낑낑거리며 올뿐만 아니라, 동행하던 가족이 딴 길로 가면 나타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붙박이가 되어 기다린다. 시간이 흘러야 가능한 대화와 행동을 그때는 거저 얻으려 했으니 실수 투성이 초보 어설프모습이다.

웃어! 하면 정말 웃어주는 강아지.
우리의 의미 공유는 나날이 늘어가고

 요즘에는 우리 가족의 심정을 찰떡 같이 이해하며 공감하기까지 한다. 우리의 감정을 기가 막히게 읽어내 표정으로 말을 한다. 우리의 관심도 지나쳐 마치 강아지 '잡채'가 이러한 대화를 했다고 확정 짓기까지 하는 상상을 펼치기도 한다. (딸들은 '잡채'가 삐졌다는 말을 자주 쓰지만 사실' 삐졌다'는 감정은 강아지들이 느끼기 어려운 고등 감정이라고 한다.)

 아무튼 4년 여 동안 강아지 '잡채'는 든든한 가족이 되었고, 이제는 사람이 되려 한다. 밖에서 키우는 강아지와도 소통하는 마당에 한 집, 한 침대에서 어느 가족보다 가까이 눈동자를 바라보며 부비대고 있으니 우리 집 막내아들임은 확실하다. 그것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일 따끈한 털북숭이가 주는 위안은 끝이 없다. 퇴근 후 한참이나 '낑낑'거리는 소리로 나의 피로를 없애주고, 나의 모습을 눈동자 가득 담아 '사랑한다' 전해 주고, 한시도 내 곁을 벗어나지 않으며 '지켜준다' 약속하고, 내 입과 눈을 순하게 부드럽게 만드는 대단한 녀석이다.
이제 유치원 입학도 해 보려고요~~

 하나의 생명체가 나로 인해 평안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 생명체가 나에게 웃음과 위로와 기쁨을 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강아지와 평온하게 산책할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기에 오늘도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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