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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Oct 07. 2022

'잡채'라는 이름에 대하여

 

 토요일 아침, 산책이라도 나서면 온 동네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주로 퇴근 후 저녁이나 밤 산책을 즐기는 우리에게 강아지 친구들의 또렷한 인상과 귀여운 모습은 새롭기만 하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마주했던 강아지들과 견주에게 어색한 인사도 건네고, 삼삼오오 모여 잠깐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코코, 망고, 통키, 블랙, 커피, 심바, 탄, 송송, 연두, 나래, 백호 등등' 우리 동네 강아지 친구들의 이름들이다. 강아지들의 특징을 담은 이름들은 강아지만큼이나 사랑스럽고 귀여움 가득이다.

 

 할아버지와 늘 산책하는 웰시코기 '나래'는 깨발랄 그 자체이다. 얼마나 애정이 많고 사랑스러운지 그 왕성한 기운에 할아버지는 그저 웃고만 있다. 아기 시절을 지나 지금은 우리 강아지 '잡채' 만큼의 몸집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아기 같은 개구쟁이 모습이다.

나래와는 저 멀리서부터 반갑다.

 같은 동에 사는 '송송'이는 까칠 그 자체다. 포메라니안의 미모를 본인도 잘 알고 있는 듯 곁눈 한번 주지 않고 늘 도도하다. 정말 예뻐서 눈이라도 한번 마주치고자 하나 언제나 쉽지 않다. 맘이기도 한 '송송'이 엄마 덕분에 반려견에게 필요한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추운 날, 더운 날 거르지 않고 길냥이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망고'와 '통키'는 우리 강아지 '잡채'와 케미가 가장 잘 맞는 푸들 강아지들이다. 산책을 하다 보면 강아지 '잡채'의 덩치에 미리 겁을 먹고 짖어대는 '작은' 강아지들이 있는데, '망고'와 '통키'는 언제나 유쾌하게 다가와 잘 만나고 잘 헤어진다. 엉덩이 냄새를 한참 맡아도, 발을 들어 등에 올라타려고 해도 뭐든지 허락하고 수용하는 관계다. 심지어 '망고'와 '통키'가 짖어대도 강아지 '잡채'는 아무 상관없이 기다려주고 함께 한다. (다른 강아지가 짖을 때 '잡채'도 지지 않고 격렬하게 반응할 때가 있기에 강아지 '잡채'의 심사를 도통 모르겠다.)

리트리버  '백호'도 잡채를 미리 반긴다.


 '블랙, 커피, 자몽, 두부, 초코...' 등 유독 먹거리 이름이 많은데 우리 '잡채'만큼 독보적인 이름은 없다. 강아지의 이름을 '잡채'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은 늘 비슷하다. 동물병원에서든, 공원에서든 한결같은 반응으로, 심지어 네에~~ 라며 놀라는 이들도 많다. 그리고는 묻는다. 어찌하다 강아지 이름을 '잡채'로 지었는지. 강아지 '잡채'의 이름을 작명하던 4년 전 그때로 돌아가 보니,

♡ 강아지는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어느 강아지를 데려올까 궁리 중이었다.)
♡ 우리 가족은 밤늦게 '윤 식당'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 '윤 식당' 메뉴 중 우리나라 '잡채' 요리가 스페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 그 장면을 보던 우리는 갑자기 '잡채'가 먹고 싶었다. 그래서 '잡채'를 만들어 먹었다.
♡ 한밤에 '잡채'를 먹으며 야식을 즐기던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 먹거리 이름으로 지으면 강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말을 귀담으며
♡ 이것저것 조화롭게 어우러져 기막힌 맛을 내는 '잡채'처럼 순둥 하기를(믹스견을 입양할 줄 몰랐었는데...) 바라는 마음으로
♡ 그래, 우리 강아지 이름은 '잡채'가 어때?
♡ 좋아, 아주 좋아~~'잡채', '권 잡채'


 그리하여... 우리 강아지 이름은 '잡채'가 된 것이다.

 시고르자브종에 걸맞게, 진돗개답게 잘생긴, 웰시코기처럼 다리가 짧은 '잡채'가 탄생한 것이다.


 얼마 전, 유명 배우가 시고르자브종 강아지를 입양한 내용을 인터넷 소식으로 보게 되었는데 (같은 믹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 내려가다 오타를 발견하고 더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오타가 우리 강아지 '잡채'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마음에 막내를 불러 기사를 보여주니, 나에게 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오타가 아니라며...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며...

 '무엇 무엇 그 자체!'라는 표현을 ' '무엇 무엇 그 잡채'라고 한다니!  

 

 세상에나! 요즘 맥락 없이 유행하는 신조어도 꽤 있지만(어쩔 TV처럼 ㅎ ㅎ)...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ㅎ ㅎ (예: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를 '열광의 도가니, 그 잡채였다'로 한다니...)

 아무튼 찰떡처럼 지어 절대 잊을 수 없는, 독보적인 우리 강아지 이름 '잡채', 동물 병원 의사 샘들조차도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강아지 '잡채'!

잡채야~~ 지금처럼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우리 잡채, 우리 가족이 많이 많이 사랑한단다.
잡채 놀리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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