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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한강 뷰는 아니라도

천변에 사는 즐거움

삼송 우리집 옆에는 북한산 줄기를 따라 한강으로 이어지는 크지 않은 실개천이 있었다. 처음 삼송에 집을 보러 왔던 날, 여름 녹음이 한창이던 천변 풍경도 이 동네에 살아보고 싶었던 이유였다. 북한산 자락에 가까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삼송'리'였던 시골마을에 오래 전부터 자연히 흐르고 있었던 작은 하천은 경기도청이나 고양시청은 고사하고 덕양구청 치수과 공무원들에게도 큰 관심사는 아닌 듯했다.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수풀 사이로 사람 한 두명이나 다닐 만한 길, 중간중간 몇 개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을 뿐 양방향으로 사람들이 다니기 좋은 넓직한 산책로라든지 야간 조명, 체육 시설, 편의 시설 같은 것은 부족했다. 밤이 오면 벌써 인적이 끊기는 작은 동네에, 더욱이 어두운 물가에는 아파트 근처에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몇 외에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분명 서울 시내에 있는 이름난 천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2018년 여름, 급격히 불어난 체중 감량에 힘쓰고 있을 무렵 나는 주말에도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헬스장에 나갔다. 첫째, 셋째 주의 일요일, 한 달에 두 번은 헬스장이 문을 닫는 날이라 어쩔 수 없이 집 앞 천변으로 새벽 조깅을 나섰다. 서늘한 공기 속에 조용히,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창릉천의 아침은 일찍이 내가 바랐던 넓직한 산책로나 울타리가 있는 나무 데크 길, 물가를 감싸고 있는 그 흔한 아스팔트나 축대가 없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조금 밋밋하더라도 수수하게 아름다운,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매력을 가진 누군가의 맨얼굴 같았다. 치수과의 하천 전문가들은 어쩌면 나보다 고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해가 지나 봄이 왔다. 지난 가을에 있었던 유치원의 어항 만들기 수업에서 강제로 선물받은 금붕어 두 마리를 울며 겨자먹기로, 어느날 아침 어항 위로 떠오른 모습만은 마주하고 싶지 않아 애지중지, 말 그대로 애지중지 돌보았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적당량의 사료를 뿌려 주고 산소 발생기도 없는 작은 어항의 물이 탁해지지 않도록 일주일에 한 번은 미리 받아놓은 새 수돗물로 고기들을 이사시키는 것이 붕어 집사의 할 일이었다.


무파사와 심바

남편이 실리콘 국자로, 매운탕을 덜듯 붕어들을 국물채 떠 세면대에 풀어놓은 사이 나는 물때 낀 어항을 깨끗이 닦고 떠다니는 똥을 치웠다. '심바'와 '무파사', 붕어 한 쌍은 우리 가족이 난생 처음으로 키운 반려동물이었다. 처음 그 둘을 데리고 올 때부터 당장에 방생할 생각부터 하고 있던 나는 차마 춥고 긴 겨울을 앞둔 가을에 그 둘을 내쫓지는 못했다.

봄. 북한산 골짜기로부터 흘러나온 맑은 개울물에 '심바'와 '무파사'를 풀어주었다. 작별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심바는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고 꼬리 힘이 좋았던 무파사는 쉴새없이, 쉴새없이 헤엄을 쳐 물살을 견디며 천천히 멀어져 갔다. 우리는 그제서야 알았다. 졸졸 소리도 없이, 그닥 흐르는 것 같지도 않았던 낮은 개울물이 얼마나 부지런히, 세차게 흐르고 있었는지를. 사계절, 창릉천의 물이 투명하고 맑을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인공적이지 않아 더 아름다웠던 창릉천. 깊은 산 자락으로부터 맑은 물이 흘러 흘러오던, 그 천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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