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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19. 2020

아빠의 꿈

용화리 ‘리버 팰리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아빠는 금산 용화리, 마달피산 인근에 백 평 남짓한 택지를 분양받았다. 이후 십오 년 간 아빠는 아무것도 없는 빈 땅을 매해 잡초를 뽑아가며 돌보았다.

‘리버 팰리스'에 대한 아빠의 구상은 원대했다. 금강 상류의 맑은 물이 흐르는 전원에서 가족들과 낚시도 하고 보트도 타며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 땅에 지어질 아빠의 시골 별장도, 아빠의 상상 속에서 십오 년간 무수히 설계를 바꾸어 왔다.


반면 '리버 팰리스'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은 시큰둥을 넘어 냉담했다. 땅값이 오를 호재라고는 없는 시골 구석에 쓸데없는 돈을 낭비했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집을 지어 올리려는 아빠의 바람과 달리, 그 땅을 사겠다는 사람만 나타나 준다면 언제든 팔아 해치울 심산이었다.

허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금산 지역 신문에도 구인을 했으나 땅을 한 번 보러 오겠다는 전화조차 끝끝내 단 한 통도 걸려오지 않았고 설상가상 '택지'로 분양받은 토지마저 금강 상류의 보전 관리지역으로 묶이며 '농지'로의 용도 변경이 이루어졌다. 애물단지 '리버 팰리스'는 더 이상 제 값을 받고는 팔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고, 가망 없이 묻어 버린 땅값과 함께 아빠의 꿈도 희미하게나마 이어져 갔다.




2020년 여름, 방학을 맞은 아이와 함께 찾은 무주의 곤충 박물관에서 청정 습지, 무주에만 산다는 반딧불이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해 질 무렵을 기다려 반딧불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무주에 남아 반딧불이를 보고 가자는 부탁에 아빠는 뜬금 없이, 반딧불이는 금산에 많다고. 오늘 밤 용화마을에 가서 보여 주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시골이라고 다 반딧불이가 있는 줄 아시나.' 그리고는 또 생각했다. '아빠 때문에 오늘 반딧불이 구경은 틀렸다. 반딧불이는 무주 반딧불 축제에나 있는 거라구요!'


적상산 아래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이미 해는 넘어가 어두워진 시간. 종일 운전을 하고, 무척 많이 걸었고, 비도 맞았고, 모두가, 특히 아빠가 피곤할 시간이었는데도 반딧불이가 보고 싶다는 다 큰 딸을 위하여 용화 마을로 향하는 아빠. 아빠의 빨간 자동차.

마달피 가든을 지나 마달피 청소년 수련원까지. 왕복 일차로로 이어지는 도로는 전날 내린 비에 쓸려내려온 토사로 더욱 좁아져 있었고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바로 이럴 때 안심"이라며 아빠가 자랑하는 '사륜 구동'의 골동품 SUV가 느릿느릿 헤쳐간다.


"으악! 깜짝이야!" 강가에 내려왔던 고라니 한 마리가 헤드라이트 앞에 번쩍 나타났다가, 겅중겅중 뛰어 순식간에 산 속으로 사라진다. 다행히 서로가 서로를, 무사히 지나쳐 갔음이다.

가까스로 수련원 앞 막다른 길에 차를 세운 우리는 '뚜벅뚜벅 탐험대'가 되어 휴대폰 불빛에 간신히 걸음을 의지한 채 강물을 따라, 습지를 향해 걸었다. 걷고 걸어도 온통 어둠 뿐. 익숙하지 않은 어둠에 심장은 콩당콩당 두근거린다. 가까스로 도달한 습지에는..


그럼 그렇지, 반딧불이는 개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검은 어둠 속, 올려다 본 검은 하늘에 별빛만이 반짝였다.

용화마을에 가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아빠는 며칠 사이 쏟아진 호우에 반딧불이 집이 모두 떠내려간 모양이라며 머쓱해했지만 나는 사실은 별로 실망할 것도 없었다. 용화에, 이 시골 구석에, 처음부터 크게 기대한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서울에 올라와 사진과 피드를 정리하던 중 난생 처음으로 인터넷 창에 '금산군 용화리'를 검색해 본 나는 화들짝 놀라 얼굴이 후끈해졌다. '초여름 밤, 비단 강을 수놓은 황홀한 반딧불', '초여름 밤, 강가 풀숲 반딧불이 대 항연'. 모두 용화리에 대한 기사였다. 초록의 꼬마 전구를 켠 듯한 반딧불이 불빛, 해 질 녘 석양에 물든 금강변. 덧붙여진 사진들도 황홀할 만큼 아름다웠다.

용화리 반딧불, 2020. 6. 12 쿠키뉴스


반딧불이는 먹이가 풍부한, 물살이 빠르지 않은 맑은 강의 습지에 산다고. 반딧불이 축제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빠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 날 반딧불이를 만날 수 없었던 건 단지 용화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들이 6월 초중순에 짝짓기를 마치고 사라지는 '운문산 반딧불이' 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말씀은 언제나처럼 허공에 있지 않았고 아직도 철들지 못한 딸은 이번에도 뒤늦게 아빠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십 년 전. 금산에서 혼자 기러기 아빠로 생활하며 차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을, 고작 사십 중후반이었던 젊은 날의 아빠. 운명처럼 어느 날, 이 시골 외진 곳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십오 년 전.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땅을 살 적에는,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상상하며 행복하셨을 테다.

그러니까 그 땅을 사고도 집은 짓지 못하고 잡초만 뽑으며 보내온 긴 세월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던 고물 랜드로버만큼이나, 평생 안중에도 없던 '리버 팰리스'가 눈물겨워지는 순간이었다.


사람들 저마다에게는 행복을 위하여 미리부터 정해진 장소들이, 활짝 피어날 수 있고 단순한 삶의 즐거움을 넘어 황홀에 가까운 어떤 기쁨을 맛볼 수 있는 풍경들이 존재한다. <지중해의 영감>, 장 그르니에.


장 그르니에에게 그것이 지중해였다면, 우리 아빠에게는 금산이 그러할 것이다. 아빠의 마음은 어떤 멋진 나라를 애써 여행하고 돌아온 뒤에도 한결같았다. 오빠가 모시고 간, 발리의 별 일곱 개짜리 리조트에 다녀오시고도 금산의 주공 리조트가 낫다는 김 빠지는 말씀만 하셨다. 늘, 같은 대답이었다. 답정너였다. "역시, 금산이 최고야. 금산만 못햐."


아빠의 금산 리조트, 상리 주공아파트

산세로 보자면 주공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그깟 진악산 자락이 장가계 산의 웅장함에 비하겠으며, 금강 지류에 불과한 용화의 강가가 짤쯔부르크 마을의 호수 경치만 하겠느냐마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빠는 금산이 좋은 것을. ‘당신이 편안한 곳'이라는 용화마을 입구의 팻말처럼, 아빠의 마음이 편안한 곳, 아빠가 행복한 땅이면 족하다.


아빠의 오랜 꿈은 이제 나의 꿈이 되었다. 아빠가 건강하신 동안에 이곳 용화리에, 멋진 '리버 팰리스'를 짓는 것.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초여름, 반딧불이를 만나러 함께 길을 나서는 것. 아빠가 사랑했던 풍경이, 아빠가 사랑하는 자연이 이제야 나에게도 아름다워지려 한다.


용화리 금강변 / 2020. 6.17,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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