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털이 날려서 안 된다거나 알레르기 때문에 안된다거나 하는 흔한 이유는 아니었다. 아빠의 반대 이유는 아빠가 강아지를 너무나, 그것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어린 시절 강아지를 키웠었고, 애착 관계를 맺었던 강아지와 이별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이별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기에 강아지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당신이 10대에 키웠던 강아지 ‘샤리’ 이야기를 70대가 된 지금도 한다. 남자친구와 이별해서 울고 있는 나에게는 “흘려보내는 것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으면서, 60년 동안 강아지 한 마리를 잊지 못해서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하는 사람이다, 아빠는. 강아지 샤리가 아빠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떻게 기쁨을 표현했는지, 같이 살던 고양이와의 사이는 어땠었는지, 샤리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던지. 나는 살아온 평생 동안에, 못해도 1년에 두세 번씩은 꼭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서울 사는 사촌 언니가 잠시 부산에 머물게 되며 우리 집에 강아지 두 마리를 며칠 맡겼다. 아롱이와 두리. 말티즈 모녀 강아지 가족이었다. 아롱이는 세 살이 된 엄마, 두리는 이제 태어난 지 석 달이 된 꼬물이었다. 아롱이와 두리가 우리 집에 머문 첫 날 밤, 내 방 한 이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잠을 잤다. 나는 그 작디 작고 하얀 생명체가 내 뒤척임 한 번에 혹여라도 다칠까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며 잤는지 다음날 아침 온 몸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평소 내 방을 한 번도 방문할 일이 없었던 아빠는 아롱이와 두리가 오고 나서 “아롱이랑 두리 뭐하고 있노? 아이고 이뻐라, 아이고 이뻐라”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방을 찾아오곤 했다. 대화가 없던 우리 집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약속했던 일자가 지나자 사촌 언니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했고, 아롱이와 두리 역시 언니를 따라가야 했다. 단 며칠이었지만 아롱이와 두리의 빈자리는 컸다. 8개의 다리가 마룻바닥 위를 걸어가면 나던 ‘챡챡챡챡’ 발톱과 땅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도 없었고, 기분이 좋으면 대뜸 누워 배를 보여주던 하얀색 솜뭉치 같던 존재도 없었으며, 고소한 팝콘 냄새를 풍기던 꼬신내나는 강아지 발바닥도 없어졌다.
대상은 없어졌지만, 습관은 그대로 남아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내 방에 들어오곤 했다. 아롱이와 두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아롱이와 두리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내 방문을 자꾸만 열어봤다. 아롱과 두리가 머물던 자리라도 보며, 뛰놀던 모습을 머릿속으로나마 그려보고 싶었던지 “보고싶네.”라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그 두 마리의 하얀 솜뭉치들을 그리워했다.
아롱이와 두리가 우리 집을 떠나고 며칠 후, 아빠는 말했다. “안 되겠다, 유자야. 사촌 언니한테 전화해라.”
좀처럼 뭐든 내색을 하지 않는 아빠가 꺼낸 말에 나도 놀라고, 엄마도 놀랐다. 아롱이를 우리 집에서 키워 정식가족으로 받아들이자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촌 언니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지, 너무나 조심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롱이가 떠나고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아롱이를 우리가 키우는 것은 어떨지에 대해서.
지난한 고민 끝에 언니는 아롱이를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그렇게 ‘하얗고 통통한 소세지’같은 아롱이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