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2014)

by 클레어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첫 장을 펴는 순간부터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제부터 아플 것이다. 아파야 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고, 미간이 펴지지 않았으며, 많이 울었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책장에 꺼내 책상에 올려놓은 아침, 한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우연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되는 듯 몸을 떨었다.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다.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 그 무지한 대통령은 탄핵되었고 어제 처음으로 법원에 공개 출석했다.


한국인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장 어린 새: 강동호


중학교 3학년 동호의 이야기 2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그는 상무관에서 시체들의 정보를 기록하는 일을 맡는다. 시체를 수습하는 은숙 누나와 선주 누나, 그리고 기타 업무를 보는 진수 형과 가깝게 일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함께 시위에 나섰고, 정대는 총에 맞아 끌려갔다. 죄책감이 동호를 잠식한다. 자신도,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기에, 가족과 누나, 형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청에 남는다.


키 순서로 자리가 배정되는 교실에서 너는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16쪽)


2인칭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나는 2인칭 시점이 동호의 감정과 상황에 독자를 완전히 이입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 미묘하게 작가는 동호를 관찰하고 추억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이로 인해 입체적인 서술이 가능해지고, 이야기에 복합적인 층위가 생긴다.

얼핏 평면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작가는 시점이라는 단순한 장치만으로 노련하게 이야기에 독자를 엮는다. 독자는 동호가 되어 그의 감정에 몰입하는 동시에, 동호를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추모할 수 있다. 동호를 “너”로 대하는 은숙과 선주, 진수가 될 수도 있다.


2장 검은 숨: 정대, 다음 날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51쪽)


정대의 1인칭 시점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동호(너)와 정대(나)의 관계로 확장된다. 정대의 혼은 자의 죽은 몸이 암매장되기까지의 과정을 묘사한다. 함께 죽은 다른 혼들을 느끼면서도 교류할 수는 없는 완전한 고립.

끔찍하게 썩어 들어가는 육체와 혼란스러운 혼이 대비되는 서술에서 독자는 아득한 슬픔에 잠긴다.

정대의 혼이 동호의 부재를 감지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동호가 떠났음을 실감한다.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감각의 전이를 통해 죽음을 체감하게 하며, 그 여운은 더욱 극적이고 깊게 남는다.


3장 일곱 개의 뺨: 김은숙, 5년 후


은숙은 출판사에서 일한다. 검열이 극심한 시국, 수배 중 번역자를 조사하 과정에서 그녀는 뺨을 일곱 대 맞았다. 계엄군이 들어오던 밤, 은숙은 도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살아남음'이 죄책감이 되어 그녀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85쪽)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92쪽)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로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95쪽)


그럼에 불구하고 은숙은 문학과 예술로 사회를 비판하고 변혁하려 한다. 성실하고 고집스럽게 출판 실무를 맡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애도의 언어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 장의 연극은 극중극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끝내지 못한 애도를 돕는다.


4장 쇠와 피: 익명의 수감자(김진수), 10년 후


김진수와 함께 수감되어 고문을 받았던, 이름 없 생존자의 인터뷰 형식으로 서술되는 장이다. 독자는 생존자의 심리적 부검을 하려는 인터뷰어의 입장에서 이 장을 읽게 된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김진수, 자신이 받은 고문과 재판, 수감 이후의 처절한 삶을 증언한다. 그는 여전 묻는다.


왜 그는 죽었고, 아직 나는 살아 있는지. (108쪽)


그는 자기 존재의 당위성을 계속해서 의문하며 살고 있다. 그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왜 질 것을 알면서도,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남아서 싸웠는지, 쏘지도 못할 총을 들고 버텼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 수 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고문이 삶에 남긴 상흔을 안고 사는 자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114쪽)

양심의 힘은 그의 존재 전체를 뒤흔든다.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116쪽)


가장 힘겨운 질문들을 마주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장이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 주겠다. (119쪽)


독자는 압도적인 억압자 앞에서 인간성을 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생존의 싸움을 지켜본다.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는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130쪽)


그렇게 부서진 영혼을 안고 그 질문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는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34쪽)


그리고 마지막 고백이자 절규 같은 말이 남는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5쪽)


이 직접적이고 고통스러운 질문에, 독자인 나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보편적인 경험이 맞다고, 그 많은 역사의 희생자 중 한 명이 된 것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인가? 여전히 전쟁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여전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쉽게 계엄령이 내려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대답은 과연 정당한가?


5장 밤의 눈동자: 임선주, 20년 후


선주의 시점에서 쓰인 이 장은, 앞선 인터뷰어 윤이 보낸 녹음테이프에 증언을 녹음할 것인지 고민하는 하룻밤의 이야기다. 하지만 실은, 그녀는 이미 증언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그 고민은 망설임이 아니라, 왜 말하지 않기로 했는가에 대한 내적 탐색이다.

그녀는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성희 언니의 병문안을 간다. 장면은 끝내 성희 언니와 마주했는지 여부를 보여주지 않지만, 선주의 내면은 그 만남을 준비하며 이미 도착해 있다.

이 장에서도 생존자로서의 죄책감과 그녀가 겪은 고문의 흔적들이 묘사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 ‘노동항쟁’으로, 나아가 모든 억압받은 자들의 사회운동으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광주는 더 이상 과거에 고정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선주의 고민과 현재의 삶을 통해, 그 운동은 현재로, 그리고 모든 이의 몫으로 확장된다.

역사의 한 페이지로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운동으로서 이들의 죽음과 생존은 어떤 불멸성과 상징성을 획득한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173쪽)


6장 꽃 핀 쪽으로: 동호 어머니, 30년 후


동호라는 작은 소년에게서 출발해 끊임없이 확장되어 왔던 서술은, 이 장에 이르러 다시 한 명의 개인으로, 한 명의 어머니로 돌아온다. 막내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절대적인 사랑과 그리움, 회한이 응축된 감정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진다.

이 장은 상실 그 자체에 대한 고요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서술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그리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울지 않을 수 없는 장이다.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시장통 좌판 사이로 골목골목 한시간을 뒤지고 댕겨도 없어야. 무릎 속이 쑤시고 어찔어찔 골이 흔들려 바닥에 주저앉았다이. 허지만 동네 사람이라도 만나먼 큰일인게, 아직 어지러워도 땅을 짚고 일어섰다이. (179쪽)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작가, 현재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내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압력 속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의심하고, 아파하며 깨달아간다.

6장이 감정의 절정이라면, 이 에필로그는 그 눈물을 닦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장이다. 독자가 단지 슬퍼하는 데에 머물지 않도록, 역사를 다시 마주하고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거듭 묻도록 이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보편적’일 수 없도록.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 내는 순간. (213쪽)



문학의 본질은 기억의 본질과 닮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시 말함으로써 그들을 다시 살게 하는 것. 되살아난 그들의 생이 우리의 현재와 얽히는 것이다.


표지사진: 사진: UnsplashRavi S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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