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신부의 예스병
모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지나친 것은 모든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어린신부는 모든지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여기저기의 요구사항을 모두 예스 병에 걸린 듯 맞장구를 쳤다. 나를 위한 생각도 다시 하지 않고 순종적인 성품과 어쩌면 바보 같아 보일 만큼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성향이 몸에 배어져 있다. 때때로 부담스러운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늦은 통화를 모두 듣고 있기도 하며 말이다. 그러면서 어려운 일들도 해결하는 지혜가 생겼지만 불가능도 가능하게 되는 기적적인 일도 체험했지만 내 마음은 늘 분주했으며 애끓었다.
어린신부는 임산부였고 앞으로 순산을 위해 기도했다. 아기가 아직 어리니 당분간 아이를 키우며 집안을 돌봐야지 않을까? 주변 어른들의 권유에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정리했다. 또 유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에 자발적으로 아기를 지키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한 선택이 세 아이의 출산으로 이어지고 7년이 넘는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될 줄은 몰랐다. 친구들과 외출이나 만남은 당연히 어렵고 담아둔 속사정을 어디서 얘기하는 건 더욱 성격에 맞지 않았다. 어디서도 내 마음을 편히 풀어둘 수 없었다. 때문에 책을 더 많이 봤다.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결국 마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부분이 커지게 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인문학적인 내용의 책이나 철학에 관한 책을 주로 보며 나를 배웠다. 정신 건강뿐 아니라 신체의 건강관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식단관리와 술은 건강에 해로우니 금기사항이다. 여러 가지로 생활에서 나는 매우 보수적이고 또 신중한 모습인데 반해 주변의 영향에는 너무나 관대하고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심리적 정신적 애정결핍을 알아차렸다. 아직도 연약한 나를 위해 나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는 편을 택했다. 제일 먼저 나를 존중하는 생각과 나의 의견을 먼저 내면에서 물었다. 이런 제안들이 나에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면 나를 불편하게 할 요소가 있는지를 천천히 생각하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외부지식을 얻는 것에 능숙했지만 정작 내 안에서 말하고 생각하고 따스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법에 서툴렀기에 천천히 아기 다루듯 나를 살펴보기로 했다. 당시 어린신부는 엄마라는 임명장을 받으면 마치 모든 것의 완성이라고 생각했고 너무도 순진했으며 서툴렀다. 자기를 모르는 삶은 마치 바람 따라 걷는 길과 같다. 목적지가 없으니 지름길도 없으며 이리저리 부대낀다. 결혼과 임신, 출산에 따른 삶의 다양한 해결책을 빼곡히 써둔 백과사전쯤을 부상으로 받았어야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기에 관한 정보는 가득한데 엄마인 어린신부는 아기와 자신까지 돌봐야 했고 바람직한 돌봄을 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늘 무거운 어깨와 내려온 눈꺼풀 한쪽 어깨로 쏠린 원피스차림으로 전신거울에 비췬 나를 보며 하품을 했다. 정신을 바로잡고 옷매무새를 고치고 로션을 바르고 양치를 한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말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다 잘할 수 있다. 이렇게 두세 번 외치고 ccm찬양을 틀고서 커피를 시원하게 마셨다. 나는 더 이상 졸려서도 안 되고 아파서도 안 되는 엄마가 된다. 이런 일련의 시간이 당연한 일이 되어 신생아와 산모는 여러 날 길게는 여러 달 동안 수양을 하듯 시간을 보내야 정상적인 생활을 다시금 되찾게 된다.
이렇게 예스 병에 걸린 어린신부는 그저 이 모든 게 훈련과 시험의 연속이었다. 이제는 어떤 상황이 되면 전체적인 통찰력이 생겨서 가능여부가 확실히 보인다.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육아 및 결혼생활에서 겪을 일들을 모두 겪어본 것 같아서 이제는 제법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렇다 어린신부는 이제 결혼 생활, 십구 년이 되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지금은 돌이켜본 내 판단과 그 당시의 오류들 모두 나에게 많은 경험이 되었다. 긍정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능력이 되고 그만한 그릇인가를 따져봐야 한다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마인드만큼이나 중요한 인생의 배움을 얻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해도 환경에는 큰 변화가 없다면 나 혼자만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 생각보다 많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조성하려면 내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감당할 그릇이 되어야 한다. 예스병에 걸려서 당시에는 나의 어리고 미숙함으로 눈물도 흘렸지만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내 마음은 단단해졌고 요지부동하지 않는 곧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주변의 말이나 지나친 컨트롤에 나를 가두지 않고 나만의 독립적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어린신부의 예스병의 처방은 '자기 그릇을 키워야 한다.'...이었다.
엄마의 일기장 _ 2007년 그 이후의 삶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