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사람
사람을 키우려면 나를 키워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부모로서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다.
요즘은 아이를 잘 키우려면 좋은 동네와 좋은 소득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적 조건과 환경적 요인은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절대적인 조건일 리 없다. 사람을 키우는 일은 마음을 키우는 일이고, 한 세계를 가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돌보는 일을 마치 정신과적 멘토를 두고 실시간으로 마음 상태를 고백하며 치료받는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심오한 마음을 들여다볼수록 더 우울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애비게일 슈라이어가 『부서지는 아이들』에서 십 대 청소년의 정신과적 심리 상태의 폐해를 알려주며 말했듯이, “너의 기분은 어떠니?”, “지금 네 기분에 집중해 볼까?” 같은 심리상담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렇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스스로 치유를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 기분이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믿지 못할 감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지금의 감정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되고, 소소한 일에도 감정의 회용돌이에 갇혀 있기 일쑤다.
예를 들어 엄마는 아이들과 마트에 간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약간의 배고픔은 과소비를 부르고 아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간식 쓸어 담기’의 완벽한 타이밍이다. 이때 아이들은 초콜릿과 장난감이 함께 든 패키지를 가져오기도 하고, 여러 개가 묶여 있는 과자봉지를 가져오기도 한다.
엄마는 한마디를 전달한다. 세 아이 모두 한 가지 과자만 선택할 것, 그리고 집에 가서 식사를 한 후에 과자를 먹을 것을 당부하고 구매한다. 왜 한 가지만 사게 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선택하는 훈련을 하게 한 것이고, 절제와 인내를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식사예절이 왜 그렇게도 중요했는지 알 것 같다. 어른이 수저를 들고 아이가 수저를 드는 훈련, 맛있는 음식이 펼쳐져 있어도 매너와 예절을 지키며 식사하는 일들이 밥상머리 교육이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사람을 만드는 일이었다. 훈련은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인격을 형성한다.
성숙함이란 나에게 있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나에게 있는 것을 타인에게 줄 수도 있고, 나 역시 내 안의 세계에서 내가 가진 눈만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큰 비전을 심어주거나 양육을 하려고 할 때, 내 시야가 좁거나 나의 습관과 인격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육자의 언어나 습관, 그리고 생활방식 모두가 전수되며 그대로 뒤따르는 것이 아이들이다. 걸음걸이마저도 닮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키우는 일은 조심스럽고도 존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기분 따라 행동하지 않을 것, 그리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것. 이런 사소한 규칙이 가장 중요한 성숙하게 하는 아이들의 양육 조건이 되었다.
지금도 역시나 나에게 주어진 숙제라며 계속 성숙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라는 존재가 사십여 년을 살아가며 천천히 성장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충분한 성장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아이는 삶을 경제적, 환경적인 어떠한 조건이나 물질적 보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자라며 부모의 거울을 보며 성숙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은 나를 키우는 일이고, 그 여정에서 우리는 함께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