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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품은 꽃, 수련

by 모즈

19세기 중반 무렵, 유럽 미술계를 흔드는 세가지 대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것은 너무나 강력해서 기존 미술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는 계기가 돼요.

첫째는 주석과 알루미늄으로 된 물감 튜브의 발명입니다. 화가들은 더 이상 자신의 아뜰리에에 갖혀있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게 돼요. 이는 플레인에어(En plein air)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킵니다. 화가들은 좁은 작업실에서 벗어나 지금까지는 결코 그릴 수 없었던 것들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노을이 지는 하늘, 들판에 핀 꽃, 일하는 농부들. 화가의 시선이 닿는 모든 것이 그림의 대상이 됩니다. 물감 튜브의 발명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돼요.

두번째는 카메라의 발명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화가의 능력이었다면 이제는 이것이 무용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능력 좋은 화가라 할지라도 카메라 만큼 똑 같이 그려내지는 못할테니까요. 이 시기 화가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상상이 됩니다. 어쩌면 수 많은 화가들이 붓을 꺾고 더 이상 그리기를 포기했을테지요. 하지만 다른 화가들은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바로,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는 것을 그리는 것이예요.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처럼 추상적인 것들이지요. 카메라의 발명은 표현주의, 상징주의는 물론 다양한 추상 표현에 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화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이 발명품이 일깨워준 것이지요.

마지막 세번째는 일본입니다. 우키요에로 대표되는 일본의 목판화와 그림들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화가들은 새로운 세계, 지금까지는 없었던 완전히 다른 세상에 매료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화풍을 넘어 동양에 대한 철학과 종교, 사상등도 받아들이게 되는데요, 이렇게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은 미술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이 퍼펙트 스톰과 같은 거대한 변곡점을 모두 겪었을 뿐만 아니라, 변화를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이룩한 위대한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입니다.


빛의 화가 모네


아마도 모네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거예요. 설령 모른다 해도 그의 그림을 보면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하는 말이 절로 나올거예요. 그만큼 모네는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입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그림도 당시 미술계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살롱전에서 탈락한 그림들만 모아 '낙선전'을 열었고, 그때 평론가들에게 알려진 그림의 제목이 '인상, 해돋이' 였습니다. '인상주의'라는 말에는 모네에 대한 조롱이 담겨있어요. 시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 이겠지요.

그럴만도 했습니다. 무릇 그림의 대상은 형태가 또렷한 사물이나 사람이겠지만 모네가 그린 대상은 바로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빛' 그리고 그 빛이 바꾸는 공기의 색이었거든요.

이 그림을 안 보고 넘어갈 수는 없겠죠?

Monet_-_Impression,_Sunrise.jpg 인상, 해돋이 1872 출처 wikiart


이후 더욱 빛에 매료된 모네는 서정적인 분위기의 풍경을 주로 화폭에 담습니다.

1870년 결혼 한 모네는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는데요, 당시 이런 안정적인 상태가 그의 그림에도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런만큼 그의 그림에는 가족, 특히 그의 아내 '카미유'가 자주 등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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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양산을 쓴 여인 1875, 우 예술가의 가족, 정원에서 1875 출처 wikiart


하지만 그의 이런 행복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1879년, 그의 아내 카미유가 32살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예요.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요. 모네는 카미유의 죽음의 순간마저 화폭에 담습니다. 아마도 그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간직하고 싶어서였겠지요?

camille-monet-on-her-deathbed.jpg!Large.jpg 카미유의 죽음 1879


이후 깊은 상실에 빠진 모네는 어려운 시기를 거쳐 1883년 지브리니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는 이 곳에서 다시금 힘을 얻게 돼요. 그림은 예전처럼 다시 생기를 찾습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너른 시야의 풍경 보다는 좁은 장면에 집착했다는 거예요. 그만큼 빛이 변하는 찰나의 순간을 더욱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었겠죠?

모네는 그림을 그림과 동시에 정원을 꾸미는 것에도 진심을 다합니다. 그의 취향을 담은 일본풍의 정원은 무려 10여년에 걸쳐 완성이 되는데요. 1893년 인공 연못이 완성 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the-japanese-bridge-the-water-lily-pond.jpg!Large.jpg 일본풍 다리가 있는 정원 1899, 출처 wikiart

그리고 이 연못은 너무나 유명한 '수련' 연작의 배경이 됩니다.


햇살을 품은 수련

모네가 수련에 매료된 것 역시 일본의 영향으로 볼 수 있어요. 수련(Water lily 학명 Nymphaeaceae)은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은 아니예요. 모네는 수련을 기르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정원과 연못을 조성했습니다. 또한 수련이 잘 생착할 수 있도록 무척이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어요. 이 연못은 수련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모네가 수련에 매료된 것 역시 일본의 영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련은 그 꽃잎에서 부처님이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불교와 연관이 깊습니다. 당시 불교는 일본 문화의 일부로 받아지며 유럽에도 폭넓게 알려졌었습니다. 게다가 수련은 여느 꽃과 달리 흙이 아닌 물 위에서 꽃을 피워요. 이렇듯 동양적이며 신비한 분위기의 꽃은 분명 모네에게 이상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스크린샷 2025-06-28 오전 12.32.08.png


그리고 무엇보다 이 꽃만이 주는 색감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플로리스트로서 이 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꽃잎은 억센듯 미려한 색 비침이 있습니다. 겹겹이 쌓인 꽃잎들 틈으로 빛이 비추이면 마치 전등갓 처럼 은은한 빛이 꽃잎과 꽃잎 사이를 투과합니다. 햇살이 강할 수록 앞 꽃잎에 뒤 꽃잎의 색이 비치어 좀 더 진하게 보이기도 해요. 이러한 모습을 모네는 포착을 했겠지요?

연못을 비추는 햇살 그리고 빛을 반사하는 물의 표면과 반대로 빛을 머금은 수련은 모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 되어주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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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연작 1906, 1908


빛의 화가, 빛을 잃다


안타깝게도, 모네에게 절망적인 일이 생기고 맙니다. 1912년 부터 시력이 나빠진 모네는 이후 부터 급격하게 시력 저하를 겪게 됩니다. 바로 백내장에 걸리고 만 것이지요. 빛의 화가가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니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당시 그의 그림을 보면 모네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 한켠이 먹먹해 집니다.

the-japanese-bridge-at-giverny-1926.jpg!Large.jpg 지베르니 연못의 일본풍 다리 1926


파랑과 보라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모네는 붉은색을 많이 쓰게 됩니다. 싱그러운 초록으로 넘쳐났던 지베르니의 정원 모습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어요. 영롱한 수련의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빛을 거의 상실한 상태로 온 힘을 짜내어 그림을 그렸음이 느껴집니다. 그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했는지, 절로 숙연해져요. 이 그림을 그린 그해 12월. 모네는 영면에 듭니다.

비록 그의 마지막 그림에서 정원은 붉고 검은색으로 표현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지베르니는 모네로 대표되며 그의 정원 역시 당시의 모습 그대로, 그리고 수련들 또한 그때 뿌리 내린 꽃들이 몇 대째 이어지며 꽃을 피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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