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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Jul 11. 2024

흘끗과 흘끗흘끗은 다르지

어린선증후군(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8)

한국에서의 시간은 예상과는 조금 방향으로 흘러갔다. 새로이 신청한 비자발급이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길어야 2-3개월이라고 예상했었던 체류기간이 반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미국 비자를 한 번이라도 신청해 본 경험이 있었던 독자분들은 종종 비자신청서가 반려될 때 얼마나 피 말리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출한 서류도 한 번 반려를 당했고, 추가서류를 준비해서 신청하느라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좋든 싫든 그 길어진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쉼과 동시에 최대한의 시간활용법을 추구해야 했다. 


먼저, 하준이의 소아과를 찾아 등록했다. 한국에서 주어진 시간이 제법 길다면, 그동안 하준이를 진료해 줄 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린선증후군과 KID Syndrome에 대해서 미리 언질을 드리고 소아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하준이를 편견 없이 잘 봐주셨다. 미국 소아과에서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던 나는 이 또한 어찌나 고맙던지. 또한, 선생님은 하준이의 증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셨다고 했다. 그 친절에 마음 편히 그 소아과를 다닐 수 있었다. 우리는 다시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 때에 맞춰 필요한 예방주사들과 검진도 꼼꼼히 받았다. 여러 수치상 하준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늦어지는 일정도, 예측불가한 우리의 시간들도, 이 아이의 건강과 웃음으로 다 보상되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님 댁에서 처가로 거처를 옮겼다. 아무래도 하준이의 육아에 좀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또한 가끔 편하게 아이를 맡기고 편하게 사람을 만나거나 쉼을 누릴 수 있었다. 처가에서 하준이는 이쁨을 받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 사이에 있으니 아이의 정서에도 더 도움이 되는 듯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처남의 조건 없는 미소와 웃음에 하준이도 까르르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우리의 웃는 얼굴에 덩달아 웃는 하준이었다. 특히 처남의 익살스러운 장난에 늘 뒤집어지듯 웃는 하준이었다. 괜스레 하준이 앞에서 간혹 울적한 모습으로 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달까.


한국에 온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어느 정도 내 몸과 마음도 회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한국에서의 삶도 익숙해졌겠다,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생각이 뻗치기 시작했다. 무료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마음이 들었을 때 바로 실행에 옮겨야 하는 법. 정말 오랜만에 알바몬 같은 구인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닌 것 같다. 주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나에겐 가장 잘 맞는 일일 듯 싶었다.


처갓댁 근처 수학과 영어학원 등을 알아보다가 한 영어학원에 취직하여 고등학생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영국에서의 2년 동안 헛물만 켜고 온 건 아니었던 건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풋풋한 10대들을 가르치는 건 나에게도 큰 에너지를 가져다주었다. 수업준비를 하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매일마다 새로운 이야깃거리들로 채우다 보니 시간도 상대적으로 더 빨리 가고 있었다.


점점 젖어들고 있었다. 한국에.


아마 조금만 더 한국에 머물렀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즐겼더라면 난 다시 미국으로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시간은 재충전으로서의 그 기능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한국에서의 (모국이기에 당연한) 빠른 적응과 별개로 우린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하준이의 부모이기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하준이가 더 크기 전에 이 아이를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후 우리는 부쩍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했다. 자가용 자동차가 없으면 밖에 나가거나 이동하기도 힘들었던 애틀랜타에 비해 한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눈부신 효율과 편리를 제공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분들이 꼭 이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으면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편리한 버스와 지하철 등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여러 불편한 상황에 노출되어야 했다. 바로 아기띠에 싸여 우리 품에 안겨있는 하준이를 흘끗거리며 보는 시선들이었다.


사실 피부가 많이 좋아지고 두드러지는 딱지들이 사라졌어도, 하준이의 피부는 여느 어린애기의 피부와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이를 가리기 위해 모자도 씌우고 우리 팔로 감싸고도 해봤지만, 점점 무더워지는 더위에 그런 조치는 금방 무용지물이 되었다. 귀 주변과 두피 그리고 목 주변에 조금 남아있던 우둘투둘한 부위들, 그리고 아무리 아기라고는 해도 티 나게 허전했던 머리숱 등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래, 눈에 띄는 외모이기에 한 번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흘끗. 그러나, 한 번 흘끗 본 후 계속 보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불쾌한 표정변화를 눈치채지도 못했다. 계속 보고, 또 보았다. 흘끗흘끗. 우리 아이는 구경거리가 아닌데. 간혹 어르신 들 중에는 흘끗이 아니라 시선을 고정해 두고 계속 보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최고봉은 역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까지 건네시는 분들이었다.


“어후, 애가 땀띠가 났나 피부가 왜 그래? 어머 가만 보니 아니네. 땀띠랑은 또 다르네.”

“아이가 아토피예요?”

“아머, 애가 눈썹이 없네”


이렇게 묻는 분들도 계시고 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다. 간혹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저 웃고 넘어가야지 그런 상황에서 장황하게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또 가만히 웃기만 하면 대답도 없다고 핀잔주는 분들도 계셨다. 이런 상황이 '정'있는 모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이 담긴 따스한 눈빛과 그저 신기하다는 듯 구경삼아 쳐다보는 눈을 구분 짓지 못할 우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관심인지, 평가인지, 오지랖인지 뭔지를 던져놓고 가면 그걸 소화해 내거나 연신 되뱉어내느라 바쁜 우리였다. 


사실 한국으로 나올 때부터 이를 예상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30년 가까이 한국사회에서 살았던 사람인데 이럴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 하지만, 알았어도 현실은 예상을 상회했다. (혹여 독자들이 오해하질 않길 바란다. 미국이라고 그 '흘끗'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빈도수에 있어서는 차이가 명확하다.) 사람들은 그저 몇 번 반복해 흘끗 보면서 신기해할 뿐이지만, 그 시선을 받는 우리는 아니었다. 작은 펀치에 피로가 누적되어 다운되는 복서들처럼, 반복되는 대중교통과 공공장소에서의 경험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준이를 더 감싸고 더 보호하게끔 만들었다. 수비전략을 짜야했다. 우리의 경계지수는 올라갔고, 둘 중 한 명이 아기띠를 매고 있을 땐 다른 한 사람이 그 사람을 마주 봐서 하준이에게 꽂히는 시선을 최대한 막아서려고 했다. 그래도 그런 흘끗거림은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늘 자욱이 가득해서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수비수였지 공격수는 될 수 없었다. 


왜 흘끗은 ‘한 번의 흘끗’으로 끝나지 않을까. 길 가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듯 그저 그렇게 하준이를 한 번 보고 스쳐 지나가줄 수는 없는 걸까. 왜 또 보는 걸까. 두 번 보고 세 번 보는 건 우리가 그 횟수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데. 하준이는 후에 피부가 다 낫는다 해도 머리카락과 털도 많이 없을 거고 귀도 잘 안 들릴지 모르는데, 커가면서 얼마나 더 많은 흘끗거림과 마주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 원치 않는 흘끗거림으로 인해 마음에 생채기가 나면 어떡하나. 지금은 흘끗거림이지만 이것이 차별이 되면 어떡하나. 이런 세상에 하준이가 소심해지지 않고 당당하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는 걸까.


그런 자욱한 흘끗거림을 온몸으로 걷어내며 집으로 돌아오면 내 마음엔 불편한 생각들이 가득 찼다. 이때 분명히 깨달았던 것 같다. 수많은 흘끗거림으로부터 하준이를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만약 호전적인 공격수였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절대 호전적일 수 없는 성격이었다. 대꾸하고 따지지 못하고 하준이를 감싸며 돌아섰을 것이다. 아마 한마디 한다 해도 나름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말하지 않았을까.



하시려거든 제발 한 번만 흘끗해주세요. 그리고 그냥 가시면 됩니다.



아, 덧붙일 말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혹시.. 행여..  하준이에게 웃어주실 수 있다면..  미소를 지어주실 수 있다면 돌아봐주세요. 하준이 눈을 보고요. 하준이도 당신에게 웃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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