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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Jul 25. 2024

적당해야 된다는 데,

어린선증후군(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0)

적당한 게 가장 어렵다.


작열하는 태양과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습도 속에서 한국생활을 하다 보니 우리가 발견하게 된 것이 있었다. 바로 하준이의 피부가 높은 습도에 너무나 쉽게 짓물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습하고 더운 기후에 땀이 차면 피부가 벌겋게 되면서 살짝 부풀듯이 번져나가는 증상이었다. 특히 하준이의 오른쪽 귓가에 크게 자리하고 있던 울퉁불퉁한 피부조직은 쉽사리 물러갈 줄 모르던 장마전선 덕에 더욱 짓물러지고 관리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외출 시에 더욱 눈에 띄게 되고 사람들의 ‘흘끗’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 더해 하준이가 아직 만 1세가 되지 않은 어린 아기이다 보니 쪽쪽이를 하면서 침도 자주 흘렸다. 그 흐르는 침에 얼굴이 침범벅이 되고 소위 말하는 침독이 올라 피부가 쉬이 성나는 경우들이 많았다. 간혹 모자를 쓰면 두피에 땀이 흥건해서 손수건으로 부지런히 닦아 주었다. 이동할 때마다 아기 띠 안에 매달려서 하준이가 전해받는 나와 아내의 체온 덕에 그러한 피부문제는 좀 더 심각해지곤 했다. 기어이 원래 가지고 있던 증상들에 더해 짓물러짐도 모자라서 땀띠도 났다. 그렇게 해서 덧나게 된 피부는 땀띠인지 어린선증후군인지 짓무른 건지 구분이 불가능해질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미국에 있었을 때는 하준이가 가을에 출생하기도 했거니와 늦겨울에 접어들 무렵에 휴학을 하고 한국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런 피부 증상에 대해서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는 늘 추웠고 건조했고, 온풍기를 틀면 답답할 정도로 습도를 앗아갔다. 그런 환경에서 하준이의 피부는 더욱 거칠어지고 단단해져서 우리는 연신 딱딱한 피부를 연화해 주는 연고를 바르곤 했다.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연화제의 도움으로 많은 딱지들이 떨어져 나갔으나, 당시 ‘건조함’이 우리의 주된 경계대상이란 건 자명했다. 


굳이 가을과 겨울의 아파트 컨디션이 아니더라도 애틀랜타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건조했다. 석사과정 입학 초기에 잠시 겪은 애틀랜타의 여름은 한국보다 더웠으면 더웠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비도 자주 오지 않아서 늘 맑고 더운 여름이 지속되었다. 캠퍼스를 걷다 보면 이게 미국 남부의 더위구나 싶었다. 다만 습함이 없어서, 그늘 안에만 들어서면 한숨 돌릴 수 있는 더위였다. 어찌 보면 한국의 여름보다는 하준이에게 호의적인 조건이었으나, 그렇다고 높은 온도와 강렬한 햇살이 하준이 피부에 결코 좋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습도로 고생하는 하준이라니.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미국에 있는 의사들에게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미국 의사들은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던 이메일 연락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 뭐 연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며칠이 못되어 그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비용을 청구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가지고 있던 피부연고와 습함을 좀 잡아줄 파우더 등을 아이에 몸에 바르는 것이었다. 다행히, 처갓댁 모든 식구들이 한 마음으로 도와주셨다. 늘 선풍기를 틀고, 처남은  손에 모터 달린 듯 하준이 몸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얹혀살고 있는 입장에서 장인어른 장모님께는 죄송했지만 이따금 에어컨도 틀어야 했다. 그런 온갖 정성으로 피부가 보송보송해지면 하준이는 더욱 방긋 웃어 보였다.


불현듯, 하준이가 태어났을 때 피부과 의사인 Dr. Gregory Cox 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준이의 피부관리를 위한 최적의 기후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고 너무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곳이라고. 그 순간에는 온갖 밀려들어오는 정보와 생전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직면해 있어서 그 말이 잘 들리지 않았었는데, 돌아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건조하면 건조한 대로, 습하면 습한 대로 탈이 나는 아들 녀석의 피부를 보고 있자니 말이다. 이래도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것이 있고, 저래도 걸리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번 의사가 말한 조건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고 너무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곳.

기후적으로 모든 것이 적당한 곳.



한국의 봄과 가을이라면 그런 적당한 기후라 할 수 있었다. 하준이를 위해 괜찮을 터였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사계절 내내 그러한 곳은 지구상에 몇 안 될 것이다. 재력이 돼서 봄과 가을엔 한국에서 지내고, 여름엔 좀 서늘한 유럽으로 가고, 겨울엔 조금 따뜻한 플로리다 같은 데서 지낼 수 있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지금 당장 미국으로 다시 가면 어디다가 집을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그런 호화로운 고민은 뭔가 앞뒤가 안 맞았다. 그런 고민은 잠시 미루는 걸로. 차라리 전세계의 기후변화가 하준이에게 이로운 쪽으로 작용하기를 바래야 할까.


어려웠다.


'적당하다'라는 단어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한 번 익숙해진 삶의 터전은 나와 아내에게 적당함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이든 애틀랜타든 하준이에겐 그곳의 기후가 맞지 않는 기후 일수도 있었다. 만약 모든 것을 하준이에게 맞춰서 완전히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다면 그건 또 나와 아내에게 적당함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환상의 장소를 찾았다고 해도 또 어렵사리 정착을 결정하다고 해도, 어쩌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고 삶의 반경을 넓혀나가기 위한 또 다른 처절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결국, 나의 적당함이 다른 이에게도 적당함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이고, 나의 적당함의 추구가 누군가에겐 외려 한계치를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타당한 적당함은 늘 양보를 요구했다.


결국 우리는 정해진대로 곧 애틀랜타에서 다시 삶을 시작할 것이고, 그 시작부터 하준이에게 '최고의 적당함'을 제공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안에서 또 노력해야겠지. '나름의 적당함'을 주기 위해서. 그 안에서 하준이에게 최대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줘야지. 그러다 보면 '최고의 적당함'으로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젠 타협을 하다 하다, 날씨나 환경과도 타협을 해야 하나. 주머니 사정으로 소고기 먹을 것을 냉삼 먹는 정도의 타협도 아니고, 아이의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도 타협을 해야 하다니. 아닌가. 오히려 불가항력적인 것에 가까워서 더 타협을 해야 하는 건가. 어려웠다. 그 적당함이 불러일으킨 질문들에 답하는 것들이. 그 적당함을 맞춰나가는 노력들이. 짓무른 하준이의 피부가 더욱 선명히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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