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7)
하준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다. 엄마가 틀어주는 유튜브의 뽀로로 영상을 보며 신이 나서 춤도 추기도 했다. 춤은 하준이의 행복채널이었다. 흐느적거리고 뭉뚱한 춤선은 논외로 하자. 사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 그 보편적인 풍경이 나와 아내에게는 늘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내 생각보다 잘 크는 아이가 아닌, 의사의 진단을 뛰어넘어 잘 크고 있는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하루하루 기적과도 다름없는 선물로 우리 마음에 들어왔다. 그 미소를 보다 보면, 태어날 때 우리가 가졌던 그리고 때때로 의사들을 통해서 추가되었던 걱정들도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의 미국생활도 점점 안정되어 갔다. 어떻게 새로 정착하지라는 처음의 염려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의사들과의 약속 및 처리해야 할 일들이 시간이지남에 따라 하나씩 해결되어 가면서 그 압박감을 낮추어가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가는 병원도 어느덧 익숙해져서 여러 분과를 옮겨가며 다녀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만의 루틴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그 루틴이 주는 안정감에 익숙해져 갔다. 간혹, 교회에서의 일이 일찍 끝나 여유가 생기면 근처 공원에 하준이를 데리고 나가서 산책을 하기도 했다. 미국은 공원마다 어린이 놀이터도 제법 조성이 잘 되어 있었다. 하준이는 공원 내 이런저런 기구들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워낙 순진하고 유순한 성격이라 하준이는 늘 밝은 기운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짜증을 내는 일이 드물었고, 이렇게 착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준이의 마음의 바탕은 폭신폭신했다. 장난감 두어 개와 몇 조각되지 않는 레고세트 들만으로도 행복한 아이였다. 때론 내가 방 한편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하준이가 슬몃 다가와서 책상 모서리 쪽에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경찰차와 소방차 등을 서너 개 올려두곤 했다. 이것은 하준이가 아빠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아빠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장난감을 내어주고 아빠의 시간을 쓰겠다는 뜻 같았다. 그런 마음이 너무 이뻐서 장난감을 올려놓고 책상 주변을 서성이는 하준이를 번쩍 안아 들고 거실로 나가 같이 놀곤 했다.
그렇게 잘 커가던 하준이가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잠을 청하는 일이었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하준이는 잠을 잘 청하지 못했다. 한 번 잠에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었는데, 잠에 드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늘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뒤척였다. 우리가 안아주고 재우려고 해도, 40-50분은 기분으로 우리 품에서 뒤척였다. 그 과정에 우리도 지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렇다고 혼자 자라고 얇은 담요를 둘러 아기 침대에 그냥 놓아두면 분명 누가 봐도 졸린 녀석이 계속 잠을 안 자서 우리의 애를 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키워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간혹 등에 스위치를 달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아주 갓난아이 때부터 어른들의 손을 타서, 사람의 품이 아니면 잠을 못 자는 아기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두고 등에 스위치가 달렸다고들 한다. 잠든 것 같은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는 순간 스위치가 켜져서 잠을 깨고 다시 안아달라고 버둥거리는 까닭이다. 그러나 하준이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잠에 들기까지가 어려웠고, 깊은 수면의 세계로 몇 걸음 들어서고 나면 그대로 쭉 잘 수 있었다. 스위치는 없었다.
하준이가 만 10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순간)까지, 하준이는 여전히 잠을 청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아기 때 보다야 훨씬 나아졌지만, 지금도 어느 날은 누워서 1시간가량 여기저기 뒹굴며 몸부림치다가 잠이 든다. 주변 지인들은, 에너지를 많이 빼놔야 한다고 운동을 좀 시켜보라고 하는데 10살짜리 아이가 운동 좀 한다고 에너지가 완전 방전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사실 누구나 알지 않는가. 다 빼놓은 에너지가 급속으로 완충되는 데에는 불과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스위치도 아니고 에너지 문제도 아닌 것이다. 그런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몇 년 전 어느 날 잠을 들지 못하는 하준이를 채근하니 하준이가 이런 말을 했다.
“아빠, 내가 잠이 들면 아빠랑 엄마랑 태하가 다 없어질 거 같아.”
“어? 하준아, 왜 그런 생각을 했어?”
“… 나만 남으면 슬플 것 같아.”
“아니야 하준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걱정 마, 엄마 아빠가 늘 너 옆에 있을 거야.”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하준이의 눈에는 어린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눈빛이 흔들리는 건지 그 말을 하는 하준이가 떨리는 건지, 그 흔들리는 눈동자는 분명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떨렸다. 하준이는 진심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랬다. 두려움이었다. 하준이가 잠을 못 드는 이유는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마치, 세상 누구보다 ‘혼자인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다는 듯이.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이런 두려움을 갖고 매일 밤을 뒤척였던 것일까. 온전한 문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기 전부터, 아주 작은 아이였던 그 시절부터 그랬던 걸까.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한 가지 풀리는 의문이 있었다. 그토록 잠을 청하기 어려워하는 하준이가 유독 차에서는 잠을 잘 잔다는 것이었다. 엄마나 아빠가 운전하는 차에서 잠이 들면 자고 일어나도 엄마 아빠가 늘 운전석에 있을 테니까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사이 도착하더라도 엄마가 늘 다정한 목소리로 깨워줄 테니까. 그리고 하준이가 늘 차에서 잠이 들기 직전에 우리에게 자신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맡기는 이유는 (자신의 도어포켓에 둘 수 있었음에도) 잠에서 깬 이후 안경을 다시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엄마와 아빠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여전히 운전석에 있어야 할 테니까. 두려움에 대한 이해가 주는 설명이었다.
폭신폭신하다고 생각했던 하준이의 마음에, 어쩌면 종유석이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 아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홀로’라는 개념과 감정을 깨우쳐버린 게 아닐까. 하준이가 조금은 다른 외모 때문에 그리고 조금은 아픈 모습 때문에 군종 속에서도 홀로였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인생 속에서 퇴적되어 온 그 두려움을 부모인 우리에게 표출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SOS신호였지 않을까.
하준이가 책상 한 켠에 장난감을 올려놓고 나에게 시간을 내어 놀아달라고 할 때, 난 어렵지 않게 내 시간을 내어 놓을 수 있었다. 이제, 하준이가 그 책상 위에 두려움을 올려놓으려고 했다. 막 걷기 시작한 그때보다 컸지만, 여전히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 말을 해줘서 고마웠고, 난 그 구조요청을 외면해서는 안 됐다.
그날, 난 오랜만에 비좁은 하준이의 침대에서 하준이와 함께 잠을 청했다. 아기 때부터 고착화된 그 두려움이 조금의 풍화를 겪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