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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Sep 05. 2024

Babies Can't Wait

어린선증후군(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6)

하준이가 제법 잘 걷기 시작했다. 몇 주 동안 저 혼자 한참을 끙끙 거리며 주변 사물을 잡고 일어서는 연습을 하더니 어느 순간 한 두 걸음씩 떼기 시작했다. 물론 그 한 걸음 한 걸음의 성공 이후 바닥에 넘어지는 실패도 무수히 겪었다. 생존에 필요한 이 필수적인 행동을 습득하기 위해 머리 위에 헤드셋과 같은 보청기를 끼고 일어섰다 넘어졌다를 반복하는 하준이의 모습은, 내가 팔불출 부모라 그런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쿵쿵 넘어지는 소리가 나에게는 감동이어도 다른 이에게는 소음이었나 보다. 어느 날은 누군가 문을 가열하게 두드리기에 나가보니 아랫집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간 이웃집 사람들과 인사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인사라도 할 겸 말문을 열려는 찰나, 다짜고짜 그들이 늘어놓는 불평에 적절한 인사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요새 너무 뭔가 쿵쿵하는 충격소리가 들린다는 불만사항이었다. 이 놈의 층간소음이란.  난 하준이를 안아 들며 이 아이가 요새 막 일어서고 걷는 연습을 하는 바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부부는 아이가 그랬다는 말에 조금은 민망해졌는지 조금만 조심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내려가버렸다. 내가 다시 인사할 타이밍과 함께 사라진 그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의 아파트나 주거 단지에서는 이웃 간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도 가급적이면 직접 이렇게 찾아와서 따지지는 않는다. 이웃 간에 얼굴 붉히는 일이 생각보다 적은 이유다. 대신, 보통은 그 단지를 관리하는 사무실에 연락해서 조용히 민원을 접수하는 게 일반적이다. 관리사무실도 가급적이면 편지와 같은 정중한 방법으로 그 민원사항을 해당 거주자에게 통보한다. 그러기에 이런 이례적인 방문의 배경엔, 어지간히 그 쿵쿵 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웠던지, 아니면 우리가 그런 말을 해도 별 탈이 없을 사람들 같아 보였던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무시의 대상이었다고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꼼꼼하게 지어지지 못한 오래된 미국 목조 아파트도 거기에 한몫 거든 것일 테고 말이다.


이 일을 계기로 나와 아내는 아이용 매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떤 제품이 좋다더라, 뭐가 쿠션이 단단하다더라, 온갖 정보 속에서 적당한 매트를 찾아 구입했다. 소음은 한결 줄어들기 시작했다. 육아는 장비빨이라고 줄곧 이야기하던 아내의 말에 내심 동의하게 되던 순간이었다. 알록달록한 매트 위에서 하준이의 걷기 실력도 한층 더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준이의 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하준이의 의료기록을 Babies Can’t Wait와 The Georgia Pines라는 두 기관에 공유해도 되겠냐는 내용의 전화였다. 당연히 그 두 기관에 대한 정보가 내 머릿속에 없었기에 난 그 기관들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를 물어봤다. 


병원 직원과의 제법 긴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이 두 기관이 시력이나 청력이 조금 떨어진 어린아이들을 도와준다는 사실이었다. 2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 가정방문을 통해서 도구를 이용한 놀이라던가, 스피치 훈련 같은 걸 조금씩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향후에 이 기관들의 추천을 통해 공립학교에 1년 먼저 입학을 해서 kindergarten이라고 불리는 유치원 생활을 더 길게 할 수도 있었다. 보통의 학생들이 1년 하고 넘어가는 Pre-K라는 과정을 2년으로 늘여 학교에 조금 더 빨리 적응할 수 있게 배려하는 제도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아내와 공유했을 때, 우리는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안 그래도 하준이의 언어발달에 관해서 도움이 좀 있었으면 하던 차였다. 병원에 다시 전화를 걸어 간단한 절차를 통해 하준이의 의료기록을 그 기관들이 열람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그러고 나서 한두 주가 지났을 까,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응당 스팸이거니 하면서 무시했는데, 발신자가 음성메시지와 이메일까지 남겨놓았다. Babies Can’t Wait의 담당자였다. 우리와 시간을 맞추어 2주에 한 번씩 방문하는 스케줄을 잡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만나보고 언어발달 정도를 체크한 후 어떤 프로그램으로 향후 진행할지 의논할 것이라고 했다. 난 이메일로 회신을 보내 우리가 가능한 날짜를 알려줬고, 그중 한 날로 그들과의 첫 만남이 정해졌다.


이제 막 하준이가 몇 걸음을 연달아 뗄 무렵 어느 날, Babies Can’t Wait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다. 2인 1조로 팀을 만들어 움직인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인이었다. 아마도 통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보청기를 낀 아이들이 익숙하다는 듯, 하준이를 향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소개를 했다. 조금은 형식적인 대화들이 공기를 채운 후, 우리들은 하준이의 언어발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발음이 어눌하고 조금은 발달이 더딘 하준이의 모습에 우린 조금 걱정 어린 말투로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그들은 그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그런 모습에서 그들이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우리도 곧 마음을 열고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준이는 Babies Can't Wait와 함께 여러 가지 놀이와 프로그램을 하며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2주에 한 번 와서 40분에서 1시간 같이 그렇게 놀아주는 것이 뭐 대단한 것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아내에게 그 시간이란 조금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이었다. 우리끼리 아등바등하며 어쩌지 하던 답 없던 질문에 꽤나 많은 부분 답이 되었던 그들이다. 그들은 성실했으며, 친절했고, 우리를 이해해 주었다. 이내 하준이도 그들과의 시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난 그들과의 협업 덕에 새삼스레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 같은 이방인 그리고 난치(또는 불치) 병으로 쉽게 소외될 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용기 내서 연락하기 전에, 병원에서 관련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보조해 줄 기관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기관들이 따로 수익을 추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관들이 유지될 수 있게 정부에서든 외부 기업에서든 지속적인 펀드가 제공된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까지. 아주 단편적인 경험이지만,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의 일부를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정책과 행정은 모름지기 작지만 사소하지 않은 관심과 면밀하지만 유별스럽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 이름 그대로다. Babies Can't Wait.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겐 지금이 최적기이다. 


사실 난 물욕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돈이 있어도 그냥 공부하거나 책 사는데 쓰고 싶고, 우리 가족 건사할 적당한 수입과 능력만 있으면 자족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Babies Can't Wait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또 하준이가 그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며 물질적 풍요에 대해서 조금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쓸 부를 축적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나 할까. 좁은 맥락에서는 한 개인의 부 그리고 넓은 맥락에서는 국가의 부와 그 사용처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닿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실히 깨달았다.  내가 만약 부자가 된다면 이러한 부의 재분배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목사라는 소명과 현재의 삶의 환경이 주는 제한 때문에 그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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