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5)
어느 날 하준이를 데리고서 근처 코스트코에 갔다. 얼마 전에 받았던 Dr. Spiro의 편지가 일으킨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아직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때다. 그 이후 한동안 난 하준이를 볼 때마다 슬픔에 잠기곤 했다. 유전의 연좌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비의 모습으로서 그 외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보내는 나날이었어도 먹고는 살아가야 했는지 집에 쟁여놓은 식료품은 실수 없이 착실히 줄어나갔다. 줄면 주는 대로 빈 곳간은 채워야 하니까,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간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내는 함께하지 않고, 나와 하준이만 매장 안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카트군집에서 하나를 빼와서 하준이를 그 위에 앉히고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회원카드를 보여주며 들어갔다. 들어가면서부터 보이는 가전제품 및 핸드폰 코너부터, 가구와 집안 살림용품, 옷과 생활용품, 그리고 과일코너 등의 옆을 무심하게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리스트에 없는 건 거들떠 보지 않는 게 나의 쇼핑 방식이다. 앞으로 가는 동안 하준이는 주변을 연신 돌아보며 1살짜리 아이의 호기심을 채워 나갔다. 뭐가 그리 신기한지 투명한 눈동자로 여기저기를 스캔했다.
필요한 것들을 카트에 담아 가며 조금씩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유제품을 사는 곳에 도착했다. 한국 코스트코야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여기 코스트코는 유제품을 냉장보관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그 안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저온으로 유지한다. 굉장히 추운 공간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그 안에서는 덜덜 떨기 일쑤다.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려면 일종의 에어커튼 같은 것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 바람이 매우 차고 강했다. 이번에도 달걀과 우유를 사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에어커튼의 풍속에 못 이겨 하준이가 쓰고 있던 모자가 휙하니 날아갔다.
그러곤 모든 것이 슬로 모션이었다. 모자는 천천히 회전하며 솟구쳤다가 서서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없고 두피가 거칠어 보이는 하준이의 머리가 드러났다. 난 순간 주변을 둘러보며 하준이를 향한 시선들이 있는지를 체크했다. 그리곤 재빨리 떨어지는 모자 쪽으로 손을 뻗어 공중에서 낚아챘다. 거기까지였다. 컷. 느리게 감기던 필름은 다시 정상속도로 재생을 시작했다.
난 하준이의 모자를 움켜쥔 채로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이 왜 입구를 막고 있냐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인지하고 나서야 다시 떠밀리듯 카트를 밀며 유제품코너 안으로 들어갔다. 달걀 한 팩을 집어 들고 1갤런짜리 우유를 카트에 담는 동안에도 모자는 내 손안에 구깃하게 말려 있었다. 다시 핸들을 잡고 밀기까지의 그 시간사이 당연하게도 하준이의 두피는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공기에 드러나 있었다. 그런데, 그 시원함이 좋았는지 하준이는 꺄륵거리면서 연신 두 팔을 퍼덕거렸다. 뭐가 그리도 좋을까 싶어 하준이를 보고 있는데, 그 천진난만함 속에서 내게 보인 것은 바로 해방이었다. 하준이는 모자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그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난 더 이상 하준이에게 모자를 씌울 수 없었다. 난 그냥 모자를 손에 계속 꼭 쥔 채로 다른 코너로 향했다.
음료 코너를 지나고 냉동식품 코너를 지나는 와중에 몇몇 시선이 하준이의 두상에 머무르다가 이내 곧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 짧게 머무르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떠나는 시선에 고마움을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준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고, 계속 옹알거리며 주변을 탐색하는 하준이를 귀여워해주었다. 카트도 적당히 강약조절을 하며 속도에 변화를 주니 하준이는 더 신이 나서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계산대 앞에 도착했다.
회원카드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셀프 계산대로 안내를 받았다. 카트에 담겼있던 물품들을 하나하나 스캔하는데, 어느 직원이 우리 근처에 와서 물었다. 아까부터 셀프 계산대 주변에 서있던 직원이었다.
“무거운 거 있어? 내가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다 가벼운 것들이야.”
나는 다른 직원들이 으레 그리하듯 그저 휴대용 바코드 스캐너를 들고 돌아다니며 중량이 많이 나가는 물건을 스캔해 주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직원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애기가 너무 예쁘다.”
“고마워.”
“애기가 몇 살이야?”
“1살”
어느덧 바코드를 다 찍고 이제 카트에 다시 물건을 거의 다 실어가는 데, 그 직원이 약간은 주저하는 듯 쭈뼛대며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응?”
“God is his medicine (하나님이 아이의 치료제가 되실 거야)”
“… 고마워. 정말 고마워..”
아. 누군가 나에게 단 한 번이라도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던가.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우리 가족에게 했었던가. 다들 걱정은 해주었어도, 그리고 우리의 힘듦을 공감해 주었어도, 이러한 위로를 건넨 적은 없었다. 심지어 교회의 담임목사는 하준이를 예배 중에 내쫓기도 했다. 그런데, 나와 인연의 끈이 닿지 않았던 이가 건넨 진심 어린 위로에 내 안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서서히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었다. 수면이 점차 고요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순간, ‘내가 하준이의 머리를 계속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신의 ‘조금 다름’을 가리던 모자에서 해방되니 하준이가 이러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하준이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손 안에서 구겨진 모자를 카트에 던져 넣었다. 그 직원과 가벼이 눈인사를 한 후, 난 카트 핸들에 바짝 몸을 기댔다. 내 가슴팍에 하준이의 얼굴이 묻혔다. 한 번 크게 힘을 주어 안아준 후, 카트를 밀며 출구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