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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Aug 15. 2024

더 잘 들을 수 있다면

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3)


“하준이에게 보청기가 필요할 것 같아…”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Dr. Todd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는데, 하나는 당시에 하준이가 아직 너무 어렸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가려는 아주 작은 아이. 겨우 만 1살의 아이. '보통 이 나이에도 보청기를 시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우리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준이는 날씨가 더워지면 모자도 오래 쓰지 못하고 잡아 채 내었다. 하준이가 유별났다는 말이 아니다. 으레 여느 아이들이 귀찮아할 수 있는 걸 귀찮아하는 나이였다. 그런데, 보청기를 착용한다니. 그걸 어떻게 관리할지 벌써부터 난감했다.


우리가 충격을 받았던 또 다른 이유는 하준이가 보청기를 껴야 할 정도로 청력이 나빴던 가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KID Syndrome의 여파로 청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과연 하준이에게 보청기가 필요한 가. (우리에게 이 질문에 답할 의료지식과 경험이 없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함께 살면서 하준이가 잘 못 듣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렌털회사로부터 대여해서 쓰던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었는데, 빨래가 다 되면 항구에서나 들을법한 뱃고동 같은 소리로 그 알림을 해주곤 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아내는 그 큰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쌔근쌔근 잠을 자는 하준이의 모습에 늘 속상해했다. 그러나 하준이는 완전히 못 듣는 게 아니었다.


분명 청력이 있었다. 우리의 말을 따라 할 때 드러나는 조금씩 무딘 발음 등에서 간혹 온전하지 않은 청력이 드러날 때가 있긴 했지만, 하준이는 말을 배워가고 있었다. 들어야 배우는 거 아닌가. 청력이 있다는 증거였다. 조금 더디긴 했지만  하준이는 한 단어 한 단어 착실히 습득하고 있었고, 갈수록 우리와 다양한 의사소통을 해내고 있었다. 걸음이 느린 아이였지만 꾸준했다. 그러기에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시간이 해결책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더 많은 언어노출과 독서, 대화 등을 통해 충분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독자들이 나더러 안일했다고 말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부모로서 아이가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발달하기를 정말 간절히 원했다고 여겨주기를 바란다. 


나의 이런 마음 또는 생각들에 대해 Dr. Todd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금 완벽하게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왜 보청기 착용을 미뤄야 하는가라며 받아쳤다. 하루라도 빨리 보청기를 시작해야 아이의 언어발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더 잘 들어야 더 잘 말할 수 있다는 매우 당연한 말이었다. 그래, 알고 있었다.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준이가 보청기를 끼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아 지는 것이 당연했다. 


탐탁잖은 마음으로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Dr. Todd가 우리에게 하준이가 (앞으로 한다면) 할 보청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생김새는 내가 자주 접했던 모양이 아니었다. 골전도방식의 보청기였는데 양쪽 귀 바로 위쪽 두개골에 진동을 전달하여 소리를 듣게 해주는 방식이었다. 어린아이임을 고려하여 금속 띠로 양쪽을 연결해 놓은, 헤드셋과 같이 만들어진 형태였다. 또한 아이가 움직여서 보청기가 떨어질까 봐 금속 띠의 장력이 제법 강했다. 당연히 하준이의 머리가 조여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착용하기에는 너무 과하다 싶었다. 이를 지켜보니 앞으로가 더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Dr. Todd는 그럼에도 보청기의 필요성에 대해 줄기차게 강조했다. 만약 보청기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면 인공와우수술(cochlear implant surgery)이 그 대안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래도 수술보다는 보청기가 훨씬 더 나을 것이라 말했다. 무엇보다도 의료진의 판단에는 하준이의 청력이 와우수술이 필요할 만큼 심하지 않다고 했다. 인공와우수술은 청력이 거의 없는 분들이 많이 선택한다고. 하준이의 경우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청력이 있었고, 부족한 부분만큼만 채워줄 보청기로 충분했었다. 이를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이성과, 여전히 보청기가 내키지 않는다는 내 마음이 싸우고 있었다. 


결국 남은 건 우리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오래되지 않아 결론이 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게도 하준이에게 보청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아이를 위해서 그것이 최선이라는 의료진의 판단을 존중해야 했다.  


우리의 결정 이후에는 이비인후과와 그 산하에 연결된 audiologists(청능사)들이 함께 하준이의 보청기에 대해서 상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근처 Dr. Jennifer Reddaway라는 audiologist를 만나서 하준이의 세밀한 청각능력을 검사했다. 꽤 애를 먹었다. 그 검사는 외부에서의 소음이 완전히 차폐된 밀실에서 진행되었는데, 하준이의 귀 안에 조그마한 유선 이어폰을 넣고 소리의 크기와 주파수 등을 달리하여 여러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그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하준이가 자기 앞에 놓인 테이블에서 장난감을 들거나 어디에 담거나 하면서 ‘들린다’고 신호를 주는 시스템이었다. 영어 한국어 손짓 발짓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준이에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 다음 실제 검사를 시작했다. 1살 남짓한 아이와 검사를 진행하는 데, 당연히 쉬울 리 없었다. 종종 하준이는 장난감에 심취해서 소리가 안 들려도 장난감을 번쩍 들거나 통에 담곤 했다.


이런 검사를 여러 차례 했다. Dr. Jennifer Reddaway는 하준이가 여러 번 검사를 실패해도 단 한 번의 짜증도 내지 않고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 하준이의 audiologist이다.) 반복되는 검사결과로 신뢰도 높은 표본을 만들고 하준이의 현재 청력에 대한 데이터를 확정했다. 미흡하거나 부정확한 부분은 하준이가 성장함에 따라 계속 수정보완할 참이었다. 이제 남은 일은 보청기회사와 모델을 선정하고 검사결과를 보내서 하준이에게 맞는 보청기를 맞추는 일이었다. 중간중간 의료보험회사의 승인도 받아야 했다. 보청기를 맞춘 후 약 한 달쯤 지났을 때 (미국에서 이 정도의 속도는 이해할만한 수준이다), 우리는 하준이의 첫 보청기를 찾으러 갈 수 있었다. 


Dr. Reddaway와 함께 이런저런 세팅을 하고 하준이에게 씌워보았다. 

하준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것에 신기했는지 연신 주변을 두루 살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준이는 곧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며 손을 보청기에 가지고 갔다. 익숙해져야 한다며 그 손을 우리가 막아내는 데, 하준이의 표정이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점점 조여 오는 금속 머리띠의 압박에 결국 하준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우린 더 이상 아이에게 계속 쓰고 있으라고 재촉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말없이 울고 있는 하준이를 안아주고 달래고 나지막이 우리의 미안함을 속삭였다. 


그렇게 하준이의 보청기라이프가 시작됐다. 씌워주는 우리도, 보청기를 하는 하준이도 어색한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보청기에 귓가가 눌려 벌겋게 변한 하준이의 피부가 우리 눈가도 벌겋게 데워놓았다. 특별히 의료기술이 한순간에 발전해서 하준이의 청력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도 생기지 않는 한, 앞으로 우리 아이는 늘 보청기와 함께 해야 할 터였다. 


불편을 이겨내야 했다. 대신 내 마음에 미안함을 쌓아나갔다.


하준이의 언어발달을 위해서였다. 


참아내야 했다. 찌푸리고 잡아서 빼내어도, 다시 씌워 줘야 했다. 1살이 갓 된 하준이가 넘어야 할 산이 생긴 것이다. 첫걸음에 완등할 순 없겠으나, 난 이 아이를 믿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가더라도, 결국 해낼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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