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4)
시간이 좀 흐른 어느 날, 우리는 하준이의 유전학 담당 의사였던 Dr. Spiro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하나 받았다. 그날은 여느 날과는 달리 조금 흐리고 찌뿌둥하고 썩 기분 좋은 날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전에 교회에서의 일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하준이를 데리고 어디론가 나가던 길에 우체통에서 그 편지를 발견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 편지를 차에 그냥 싣고 출발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한인마트였다. 마트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하준이는 뒷자리 카시트에서 귀엽게 잠들어있었다. 쌔근거리며 잠든 아이를 차마 깨울 수 없어서, 나는 차에 남고 마트에는 아내만 들어갔다. 혼자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해서 책도 읽고 핸드폰도 조금 만지작 거리는 와중에, 도어 포켓에 비스듬히 꽂혀 있던 그 편지봉투에 눈이 갔다. 아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새삼스레 저 편지는 왜 저리 두꺼운 건지.
그렇게 내 눈이 편지봉투의 물리적인 두꺼움을 인식할 무렵, 내 마음은 무언가 불길한 촉으로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Dr. Spiro의 말. 하준이가 지난가을 퇴원할 무렵 그녀가 나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전했던 그 말.
‘앞으로 약 1년이나 1년 반 사이에, 우리가 하준이의 모든 염색체 검사 결과를 상세히 알려줄 거야. 지금까지는 병명을 알기 위한 검사였고, 이제 나랑 내 연구진들이 더 깊이 염색체와 유전자 정보를 찾아낼 거야’
문득 그 말이 내 머릿속을 휘감고 돌아나가는 데, 이미 내 손은 그 봉투를 열어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편지의 첫 페이지에는 Dr. Spiro의 간단한 인사말과 하준이의 염색체와 유전자 분석이 완료되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난, 순간 긴장되어 수축되는 몸을 차분히 누르며 다음 면으로 넘어갔다. 내 긴장이 무의미하게, 거기에는 온갖 과학 용어들과 표, 그래프 등이 난무했다. 맥이 조금 빠졌다. 전문지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해석하기가 너무 어려운 페이지들이 계속 이어졌다. 넘기고 넘기다 드디어 결론과 요약이 담긴 페이지에 당도했다.
결론은 이러했다. ‘하준이의 어린선증후군과 KID Syndrome이 GJB2라는 염색체의 돌연변이로 발현되었고, 이로 인해 어떤 어떤 증상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의 요약이었다. 그리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은 우리가 예상하지도 않았던, 그리고 미처 듣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하준이의 GJB2는 염색체의 돌연변이는 지배적 유전방식을 따르는 염색체로, 이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부모는 50%의 확률로 이 질환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난 편지를 구기듯 다시 접어서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폭력을 행사하며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지랄, 별개 다 지배적이다.' 멘델은 사기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흉폭한 감정에서 분노가 사그라들자, 슬픔이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나로 인해 시작된 이 증후군이 나와 아이의 대에서 멈추지 않고 그 이후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인가. 50%씩 세대를 거듭해 나가다 보면, (물론 배우자와의 조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단순 계산으로 4대를 지나가야 이 질환을 가질 확률을 10% 미만으로 낮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담의 원죄를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후대가 나에게 표출할 그 원망보다, 이 질환이 아랫세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고통의 전가다.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니 룸미러에 하준이가 자는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는 이 사실을 하준이에게도 말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리고 두려움이 심중에 엄습했다.
복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덜컥 트렁크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장을 보고 나온 것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차에서 급하게 내려 장본 비닐봉지들을 함께 실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타 출발했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바로 옆 블록에 있던 은행이었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 말없이 운전하고 있는데, 아내가 내 표정을 보더니 물었다.
“여보 왜 그래?”
“어? 뭐가?
“표정이 왜 그러냐고.”
“아무것도 아닌 데?”
그런데, 이미 마지막 문장을 뱉을 때 이미 내 목소리는 뜨거운 울음을 참는 쇳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덩어리가 된 울음을 삼켜내는 것이 힘들었다. 흐려지는 시야에 은행 주차장에 차를 라인도 못 지키며 세우고, 난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수문을 열고 방류하는 댐과 같은 슬픔이었다. 결혼 이후에 내가 우는 걸 거의 못 봤을 아내였다. 이런 사람이 핸들을 부여잡고 문자 그대로 꺼이꺼이 울어대고 있었다. 뭐 적당히 울어야 왜 그러냐고 재촉할 텐데 도무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 까, 난 탈진하듯 다 쏟아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 그리고 나지막이 어리둥절 어찌할 줄 모르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 응..”
“우리 하준이가 자녀를 나으면, 또 50% 학률로 저 증후군이 발현될 수 있대..”
“뭐라고? 누가 그래?”
“하준이한테 너무 미안해..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걸까? 나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어? 이래도 되는 거야?”
나는 가슴을 쿵쿵 치기 시작했다. 서른 남짓 살아오며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서 깨달을 만큼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합당한 삶이 아니라고 분노하고 있었다. 슬퍼하고 있었다. 토해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아내도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곤 나를 안고 위로했다.
“하준이가 나중에 커서 아이를 낳을 나이가 되면 조금 더 의학적으로 미리 알 수 있을 거야.. 양수검사 같은 것도 더 정확할 거고.. ”
“…”
“너무 걱정하지 마 여보…”
나는 아무 대답할 수 없었다. 아내를 바라봤다. 물기 어린 곁눈으로 하준이가 보였다. 어느새 잠에서 깨어 투명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하준이의 눈. 물론 이 대화와 아빠의 통곡을 이해할 순 없었겠지만, 그 순수한 눈빛에 내 마음은 다시 한번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웠는데, 내 마음의 탑이 이리도 쉽게 무너지는 건 내 공이 부족해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