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12)
미국에서의 재출발은 조금은 산만하게 그리고 정신없이 지나갔다. 우리는 새롭게 아파트를 얻어 신세를 지던 지인의 집에서 나왔다. 교회에서 보관 중이던 우리가 예전에 쓰던 식기, 가재도구, 약간의 가구를 가지고 나왔다. 친구네 집에서 6개월간 잠들어있던 나의 오래된 차도 가벼운 정비를 마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얻은 후에 가스와 전기를 신청하고, 인터넷 등을 신청하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면 오래된 자동차의 분투가 필수적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굳이 돌아다니면서?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영어전화가 무서워서 웬만하면 직접 각 사무실로 찾아가 서비스를 신청했었던 나였다.
우린 우리대로 새로이 정착하느라 바빴지만, 하준이의 건강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잠시 끊겼던 진료기록들을 이어나갈 때가 되었다. 다시 부지런히 여러 병원들과 약속을 잡고 각 선생님들을 한 번씩 볼 수 있었다. 하준이를 기억하는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웃으며 하준이를 반겨주셨다. 감사하게도 하준이는 너무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들만 만났다. 내가 어디 가서나 Children’s Healthcare라는 어린이전문병원과 그 산하의 부속 병원을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년만에 본 의사 선생님들은 하준이의 성장에 놀라면서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부분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어린 하준이는 그런 선생님들의 보살핌에 큰 어려움 없이 병원을 다녔다.
많은 선생님들 중에 아직 이 연재를 통해 소개하지 못한 분이 있는데, 바로 이빈인후과 의사인 Dr. Norman Todd이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에모리대학병원에서 어린이 이비인후과로 나름 정평이 나신 분이었다. 우리야 그걸 미리 알고 그분과 약속을 잡은 건 아니었고, Dr. Spiro가 준 서류뭉치에 적혀있던 분이어서 무작정 예약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난 Dr. Todd는 백발이 성성한 인자한 미소의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었다. (언뜻 보면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KFC의 CEO였던 Colonel Sanders와 비슷하다랄까.) 인자한 미소 뒤에는 나름 카리스마 또한 상당했는데, 늘 주변에 그분의 진료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인턴 의사들 한 두 명을 데리고 다니셨다. 어떤 마법을 부리셨는지 환자들은 선생님을 편하고 친근하게 대했는데 인턴들은 깍듯이 교수님을 모시며 필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비인후과 진료가 있는 날은 Dr. Todd에게 진료를 받기까지 오래 기다릴 것을 늘 각오하고 가야 했다. 그분은 많은 환자가 찾는 의사였다. 병원 로비에는 늘 꽉 찬 예약명단만큼이나 북적거리며 대기하는 어린아이들로 가득했다. 각 어린이마다 항상 꼼꼼히 봐주다 보니 예정된 진료시간이 미뤄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늘 지루했지만, 이토록 인기 있는 선생님이라는 점이 환자입장에서는 묘하게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아이의 아빠인가 보다. 이왕지사 우리 아이가 더 괜찮은 선생님에게 진료받길 원했던 걸 보면.
Dr. Todd는 지긋한 나이만큼이나 가늠하지 못할 경험치를 지닌 분이었다. 그런데, 그 경험치에 비친 우리는 참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것저것 궁금해서 질문할 때마다 웬만하면 ‘뭐 이 정도는 다 괜찮은 거야’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다. 우리야 부모가 처음인데 어떻게 모든 상황을 다 교수님처럼 여유 있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래도 참지 못하고 계속 질문을 하다가, 괜스레 우리만 조바심 많고 성급한 부모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런 화려하고도 긴 경력 속에서도 하준이처럼 K.I.D Syndrome을 가진 아이는 하준이를 포함해 단 두 명이라고 하셨다. 새삼 하준이가 얼마나 희귀한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감사했던 것은, Dr. Todd가 하준이를 딱히 특이하다거나 예외적이라고 생각하며 진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한 명의 소아환자로 봐주며 진료했다. 그 특유의 여유 넘치는 진료는 우리 마음을 항상 편하게 해 주었다. 그 여유가 실력을 뽐내려 하는 자만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환자와 그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 나오는 여유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준이의 여기저기를 애정이 넘치는 손으로 꼼꼼히 살펴주시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긋하고 젠틀한 할아버지가 손주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때론, 약간의 잔소리를 덧붙이시긴 했지만.
그러나, 이 경험 많은 교수님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증상이 있었다. 하준이가 조금 더 성장한 어린이가 될 때까지 우리를 괴롭히던 증상이다. 바로, 하준이가 코피를 자주 쏟아낸다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뭐 코피정도로 유난이냐고 하실 수도 있겠다. 그 말도 맞지만 문제는 한 번 터진 코피가 잘 멈추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주르륵 이 아니라 콸콸 터져 나오는 것처럼 코피가 났다. 세면대에 고개를 파묻고 흐르는 물에 코피를 씻어 내리고, 휴지로도 막고, 고개를 뒤로 젖혀도 보고 그러면서 십여분 이상을 씨름해야 겨우겨우 잦아들곤 했다. 긴장을 놓치면 바로 연이어 터지는 날도 있었다. 미국 아파트들은 바닥에 카펫처리가 되어있는데, 가끔은 그 카펫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져 물드는 경우도 있었다. 피에 벌겋게 젖어버린 하준이의 옷들은 덤이었다.
코피가 하루에도 두세 번씩 터져대니 하준이나 우리나 코피에 나름 트라우마가 있었다. 하루는 교회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나는 운전석에 그리고 아내는 그날따라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뒷자리카시트에 타고 있던 하준이가 갑자기 코피를 쏟기 시작했다. 차는 달리고 있지, 아이는 뒤에서 울기 시작했지, 순간 패닉이 되어서 급하게 공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코피와 씨름했어야 했다. 우리가 이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했을 때, Dr. Todd는 왜 하준이가 그렇게 코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속시원히 답을 주지 못했다. 나중에 피부과 의사인 Dr. Gregory Cox가 설명하길, 어린선증후군의 영향으로 하준이 코 안의 점막재생속도가 조금 느린 편인 것 같다고. 피의 응고의 문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혈관을 덮어야 하는 피부조직의 문제였던 것이다.
언젠가 Dr. Todd가 자신이 원인은 잘 알지 못하지만 하준이의 코피를 효과적으로 멈출 수 있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코를 만져보면, 이마에서 콧대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딱딱한 콧뼈가 있고 그게 끝나는 지점부터 부드러운 연골이 코끝까지 이어지는 데, 바로 그 딱딱한 뼈와 연골이 만나는 지점쯤을 두 손가락으로 압력을 줘서 꼬집으라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얄미운 사람의 코를 손가락으로 잡고 비틀 때와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당황스럽지만, 진짜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조금 아프다 싶을 정도의 압력을 주며 꼬집은 후 증상에 따라 40초에서 60초를 세어보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 하준이는 참 많이도 나한테 꼬집혔다. 아프다고 진저리를 치는데, 이래야 피가 멈춘다고 얼굴을 딱 부여잡고 코를 꼬집은 후 60초를 세곤 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아픔을 참고 영겁과 같은 60초를 버텨내면 보통 피가 멈췄다는 사실이다. 물론 피가 멈췄어도 하준이의 조그마한 콧등에 선명히 내 손가락 자국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른 이 아이의 코피를 멈추게 해 주어야지라는 마음을 담아서 꼬집었기 때문에 코 주변이 움푹 들어가곤 했다. 딸기코가 돼서 눈물이 찡 도는 눈으로 원망 가득히 아빠를 쳐다볼 때도 많았다. 그러나 Dr. Todd가 알려준 꼬집기는 마치 궁극기와 같아서 코피가 날 때마다 쓸 수밖에 없었다.
그 궁극기 덕에, 하준이는 한 번 시작하면 코피가 멈추지 않는 아이에서 점점 코피가 나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아이가 되어갔다. 트라우마와 같았던 코피가 익숙해지고 두렵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늘 나를 불러서 세면대의 거울을 마주하며 코를 꼬집고 카운트를 세었다. 나와 아내가 부지런히 미국 사회에 새로이 적응하는 동안, 하준이도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료를 다 마치고 나가려는 데 Dr. Todd가 하루는 중요한 이야기라며 우리를 불러 세웠다. 그간의 경험으로 나와 아내는 의사의 목소리의 변화를 기가 막히게 캐치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를 불러 세우는 Dr. Todd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짧은 긴장과 적막이 진료실의 공기를 휘감아 나간 후, 선생님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
“하준이가.. 보청기를 해야 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