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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Dec 03. 2021

소소하고 따듯한 더치 크리스마스와 신터클라스

네덜란드의 어둡고 습한 추운 겨울이라도 12월만큼은 사람들 표정에 생기가 있어.  신터클라스고, 크리스마스이거든. 거리 곳곳에는 크리스마스 조명 장식이 들어서고, 캐럴이 나오고, 모든 상점이 (인터넷 상점 포함) 연말에 맞춰 근사하게 포장된 먹거리, 선물로 지갑을 유혹하지. 그래서 어둡고 비가 오는 나날, 즐거운 모임을 생각하면  위안이 된달까?

클스마스 조명 장식을 한 암스테르담은 정말 로맨틱하지 (사진출처: Unsplash)

하지만 네덜란드의 크리스마스 전통은 좀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크리스마스보다는 난 12월 5일의 신터클라스 ‘선물저녁’(Pakjesavond, 파켸스아본드)이 더 기대되고 좋더라. 생소할지 모를 신터클라스 소개를 하기 전에 네덜란드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적어볼게.


네덜란드의 크리스마스를  마디로 표현하자면,  썰렁한 크리스마스야. 뭐가 좀 없어.  독일처럼 크리스마스 전통 코스요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덴마크처럼 같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둘러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영국처럼 선물을 교환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가족들이 모여서 저녁을 먹고, 조금의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 가는 때랄까?


특히 전통 요리가 없다는 점이 속상해 (?)... 조금이라도 음식 문화와 전통을 신경 쓰면 좋을 텐데 말이지. 지난번에 이야기한 크리스마스 빵이 있긴 한데, 똑같은 빵을 이름만 달리 붙여서 부활절, 성령강림절에도 먹어.

네덜란드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는데, 아래 선물을 두지는 않아 - 선물은 신터클라스가 아이들한테 전해주거든! (사진출처: Unsplash)

"썰렁하다"라는 점 외에 네덜란드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공평하기 위해서' 25일하고 26일을 크리스마스랑  번째 크리스마스 날로 친다는 거야무슨 이야기냐면, 보통 가족이 다 모이는데, 하루만 있으면 커플의 한 쪽만 자기 가족한테 갈 수 있으니까, 아예 두 개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거래. 우리 식으로 한다면 시댁과 처가에 모두 가게 해준다는 거지. 일반적으로 유럽은 24일인 크리스마스이브가 성대하게 (?) 저녁을 먹는 날인데, 네덜란드는 그 점에서는 좀 다르지?

11월부터 넘치는 신터클라스와 크리스마스 관련 쇼윈도나 아이템들은 반짝반짝해서 보기만해도 즐거워

어쨌든,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썰렁한 이유에는 12월 5일에 신터클라스 (Sinterklaas) 라는 명절이 있어서 일지도 몰라. 공휴일은 아니지만, 아마 네덜란드의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아닐까 싶어.


사실 명절이라는 말은 좀 안 어울리기도 해. 1-2주간에 걸친 특별한 기간이거든. 12월 5일은 그 대장정(?)이 선물로 마무리 되는 날이고, 그래서 '선물저녁’이라고 부르며 아이들이 집에 방문한 신터클라스한테 선물을 받거나, 어른들은 서로 선물을 교환하고 게임을 해.


신터클라스는 산타클로스랑 비슷하게, 흰 수염의 빨간 옷을 입은 할아버지(?)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온 이야기에 따르면, 신터클라스는 11월에 선물을 가득 실은 배에 자신을 도와주는 '즈와트피트' (피트라는 이름의 심부름 소년) 같이 스페인을 떠나 네덜란드로 항해한대.

(사진출처: iAmsterdam)

신터클라스는 아이들의 행실을 적은 큰 책이 있어서, 모든 아이들의 잘잘못을 알고 있대. 그에 따라 선물을 마련해 준대. 그리고 선물과 함께   했고,      있는지  해를 돌아봐주는 시를 적어 같이 준대.


신터클라스 시즌이 오면 전국을 돌아다니는 신터클라스의 말 '아메리고'를 위해 아이들은 창가에 신발을 두고 거기 당근도 넣어 전해주고, 즈와트피트가 뿌려주는 캔디도 받아둔다고 하네.


신터클라스가 네덜란드에 배를 타고 도착하는 날은 운하와  길을 따라 퍼레이드가 있고 아이들이 구경하러 많이 나와있어서 물씬 축제와 연말 느낌이 나지.


참 귀엽지? 하지만 선물을 주고받고, 시를 쓰는 건 신터클라스를 믿는 아이들 만을 위한 건 아니야. 어른들도 한 해를 돌아보며 서로에게 시를 쓰고 (멋지고 감동적인 시라기보다는, 운율을 맞추고 해학과 풍자를 넣은 비꼬는 듯하면서도 서로 인정해 주는 시야) 선물을 교환하고, 게임을 하면서 서로 웃고 떠들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

신터클라스 시의 예! 운율 맞췄어 출처: https://dudewhatsmyfood.wordpress.com/2011/12/06/sinterklaas-didnt-forget-me

내가 처음으로 네덜란드에 단기 발령을 왔을 때 마침 팀에서 신터클라스행사를 했거든. 각자 "마니또"를 뽑아서, 그이한테 익명의 편지를 쓰고 선물을 주는데, 누가 편지를 썼는지 맞춰보는 게임까지 같이 했었어.


그런데, 시가  길고 구구절절해야 한다는 걸 몰라서, 농축하고 농축해 "하이쿠"같은 아주 짧은 시를 써주었었는데, 그걸 읽으니 아마  너무 짧아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진  마니또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ㅎㅎ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지!

신터클라스를 상징하는 것들 - 편지, 당근, 신발, 페퍼노튼, S 모양의 초컬릿 (사진출처: Rotterdam Style)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끼는 사람들에게 뭘 써주거나 말해주기를 좋아해. 생일 때 카드를 적어주거나, 결혼 때 신랑이나 신부 혹은 커플의 살아온 인생에 대해 길고 재밌게 썰을 풀어 연설을 하거나, 이렇게 신터클라스 때 A4 1-2장을 채운 시까지 써주지. 내 생각에는 이게 참 네덜란드식의 '정'이 아닌가 싶어.


개인주의 사회이고, 각자의 길을 가는 독립적인 사람들에, 계산이 확실한 사람들이지만, 상대방을 존중해 주고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준달까. 그리고 그렇게 카드나, 시, 연설의 기회를 통해 중요한 날 관심을 표현해 주는 거야. 사실 '개인주의'사회에서 그 개인에 온전히 관심을 쏟아주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인생을 반추해 주는 것보다 타인이 더 존경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 수도 있어.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시를 준비하면 또 한 5유로 미만의 선물들을 사서 서로 교환하거나 게임을 통해 뽑기를 해. 여러 가지 보드게임도 많이 하지. 재밌고 흥미롭게 추운 겨울을 보낼 방법이 총동원 된달까?


그리고 같이 나눠 먹기 좋은 퐁듀도 많이 먹는다네. 오일을 테이블 위에서 끓여서 고기나 야채를 꼬치에 찍어 튀겨 먹는 거야. 남편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햄버거바’를 해주셨다네. 아이들이 직접 빵에 야채, 고기, 소스를 넣고 버거를 만들어 먹게 요리해 준비해주셨대. 여기에 후렌치후라이(프릿츠)까지 곁들이니 정말 신났을 것 같아.


신터클라스 때면 상점에 차고 넘치는 계피 맛 과자인 페퍼노튼이 생각나. 바삭바삭한 질감의 맛은 로터스 쿠키 같은데, 동글동글하게 생겼다고 보면 돼. (사실 크라우드노튼이 맞는 이름이라는데 대부분 페퍼노튼이라고 불러). 슈퍼에서 5킬로그램 짜리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페퍼노튼 봉지를 보면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감이 와. 직장에서는 곳곳에 그 5킬로짜리 페퍼노튼이 놓여있고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한 주먹씩 가져갔다니... (코로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 정말 한 번 손대면 멈출 수 없는 게 페퍼노튼이라고 나도 애증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 끝도 없이 먹게 돼!

 

신터클라스 물씬 느껴지는 수퍼마켓. 알파벳을 적은 초코우유랑 대용량 개사료 같은 크라우드노튼!
동전모양의 초콜릿도 당연히 (?)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소중하지 - 동글동글한게 페퍼노튼, 풍차모양의 과자가 스페큘라스야

그리고 마지팬 (아몬드 가루에 설탕을 넣어 굳혀 만들어)이 들어간 "아몬드 지팡이" 빵 (Almandelstaff, 아만델스타프)도, 내가 좋아하는 네덜란드 과자 스페큘라스 (로터스 쿠키의 원조야, Speculaas)도 신터클라스면 더 자주 눈에 띄더라. 그리고 알파벳 모양 (보통 신터클라스의 S 아니면, 이름의 첫 알파벳을 많이 사)의 초콜릿도 보이지. 전통이 없는 크리스마스에 비하면 특별한 군것질 거리가 넘치는 게 또 신터클라스의 매력이야. 우리나라는 한가위 때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면, 여기는 신터클라스 즈음이 비는 오고 사람을 살찌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ㅋㅋ

알파벳 모양의 대형 초콜릿하고 아만델스타프! (사진출처: bakkerkoning.nl, mainsales.nl)

먹거리로 몸도 훈훈, 재밌는 게임과 시로 마음도 훈훈... 바깥의 날씨가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치고 추워도, 안에서만큼은 눈물 나게 웃기고, 따뜻해지는 날이  눈에 비친 신터클라스야. 나랑 남편은 우리만의 신터클라스 전통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어오고 있어. 휴가도 말라가고 우울한 겨울에 손꼽아 기다릴 만한 즐거운 날을 위해, 계획하고 서로를 위해 시를 쓰고 선물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지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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