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앨 Jul 15. 2022

200년 된 와플 포장마차

네덜란드 사는 재미

네덜란드만의 음식을 소개하다 보면 달달한 빵, 과자류를 많이 이야기하게 돼요. 프랑스나 독일에 비하면 단촐하고 특별할 게 없다지만, 심플한 만큼 누구 입맛에든 맞고,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고, 특별한 날, 특별한 순간을 떠오르게 해주는 것들이 많아요.


그중에 하나가 포퍼쳬스 (Poffertjes)입니다. 스트롭 와플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네덜란드 사람이라면 피크닉이나 페스티벌, 페어에서 사 먹는 포퍼쳬스의 행복을 알 텐데요. 부드럽고 달달한 미니 팬케이크 같아요. 

마치 오코노미야키 만드는 과정만큼 반죽을 동그란 틀에 넣어 핀으로 돌리고 돌려 잘 익힌 후 파우더 슈가를 보통 뿌려 먹어요. 요새는 슈퍼마켓에서 이미 만들어진 포퍼쳬스를 사 먹으면 되지만, 사서 먹어본 적은 없어요. 바로 만들어진 걸 따땃하게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으니... 우리나라 길거리 음식으로 비교해본다면... 핫도그 같은 걸까요? 아무리 냉동 핫도그가 나와도 바로  튀긴 핫도그에 캐첩 & 머스타드 뿌려 먹는 것에는 비교가 안 되겠죠?

출처: 알버트 하인, 위키피디아

그런데 어느 날 라른 (Laren)이라는 예쁜 동화 속 마을 같은 곳에서 뭔가 남달라 보이는 포퍼쳬스 상점을 발견했어요. 남편하고 벼르고 벼르다 어느 날, "그래 하나 테이크어웨이 해서 공원에서 나눠 먹자"라고 하고 마치 회전목마 같은 곳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죠.

그런데 반전!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그냥 작은 길거리 포장 음식점이 아니라 거대 포장마차(?)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시끌벅적한 내부, 유니폼을 입은 숙련된 포퍼쳬스 마스터(?)들의 빠르게 움직이는 손놀림, 진짜 나무를 태워서 만드는 과자들... 갑자기 시공을 뛰어넘어 200년 전 그림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더라고요.


위치: https://goo.gl/maps/dEZKg5tqe2doueTe8

커튼이 드리워지고 샹들리에까지 밝혀진 이런 곳이 유럽의 '포장마차'구나 싶었어요. 남녀노소, 가족, 커플 할 것 없이 다들 모여 앉아 잡담에 맛있는 것을 함께 먹을 생각에 신나는 곳...

저희도 자리를 잡아 메뉴를 보고 있는데, 메뉴에 함께 적힌 역사에 대한 노트를 읽으니, 역시 1837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전통이 있는 곳이었어요. 1837년의 사람들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 싶네요. 옷만 다르지 다 이렇게 포퍼쳬스를 먹으려고 들떠 왔겠죠?

 

알고 보니 와플도 함께 파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아는 와플 하고는 다르게 아주 얇고 바삭바삭한 네모난 와플인데요, 200년도 더 된 무쇠 오븐으로 구워 만들더라고요. 포퍼쳬스와 와플을 만드는 과정이 인상 깊어서 비디오에 담아보았습니다.

 

https://youtu.be/lqCL447-FCQ

버터가 어마어마하죠? 나름 버터를 다 모아서 장식문양까지 찍으니 있어 보이네요. 이 버터는 서빙할 때 한 스푼씩 올려줍니다. 그 옆의 슈가파우더도 토핑용입니다.


하나 사서 나눠먹자는 말이 쑥스럽게 종류별로 다양하게 시켰어요. 오리지널 & 럼이 올라간 포퍼쳬스입니다.
와플입니다! 아름다운 은색 기계에서 나온 와플을 안 먹어볼 수가 없더라고요. 추천!

포퍼쳬스의 토핑이 파우더 슈가 말고 뭐가 될까 싶었는데, 이곳에서는 술을 많이 끼얹어주네요..ㅎㅎㅎ 어른들 낮술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럼, 그란드 마니에, 생강을 올린 포퍼쳬스... 상상도 못 해봤어요. 호떡에도 복분자를 끼얹어 먹으면 맛있을까요?

주문받고 음식이 들어가는 과정도 시끌벅적 시장통의 생기가 느껴지니 좋더라고요. 이런 곳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끼리 부대껴도 바깥에서 맛있는 음식을 바로 먹어보고 친한 이들과 담소하는 시간이 황금 같다는 걸 네덜란드 사람들도 알고 있었네요. 예전에는 이런 포장마차들이 더 많았다고 하니, 200년 전의 네덜란드와 유럽 풍경은 사뭇 달랐겠다 싶어요.


사실 다른 곳에서 먹어본 포퍼쳬스보다 좀 덜 폭신하고 약간 눅눅한 편이고 파우더 슈가가 떡진다는 기분이었지만, 우연히 들어서서 느낀 반전 경험이라 그런지, 더 즐겁고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가보세요. 동화 속에서 찢고 나온 것 같은 마을 라른 구경도 즐겁고요.


                     

이전 08화 네덜란드 사람들의 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