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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May 12. 2020

수수께끼와 개미

책 <랩걸>을 읽고

 나는 오래도록 나 자신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온통 나 자신을 향한 화살표에 둘러싸여 있는 스스로를 목격하는 날들이 차고 넘쳤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그에게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그 일 속에서 그는 그를 찾았다.

    

 <랩걸> 은 한 식물학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식물을 돌보고 탐구해온 역사에 관해 쓴 진득하고 처절한 기록이다. 그가 ‘꽃과 열매(마지막 장의 소제목)’를 맺기까지 걸어가는 길은 너덜너덜하고 보잘것없고 외면 받고 차별 받는다.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귀걸이를 낄 정신이 없는 건 고사하고 며칠씩 씻고 먹는 것을 거르면서 연구한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기에는 세상 중요한 연구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녀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호프에게 중요한 것은 식물이다. 그녀에게 식물 연구란 사랑하는 것을 넘어 분리할 수 없는 분신 같다. 그녀는 실험실에서 그녀 자신의 가장 안정적이고 확고한 자아를 찾는다. 

 프로이트는 일과 사랑이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호프에겐 일이 곧 사랑이다. 호프의 화살표는 언제나 식물의 세계로 향했다.


 이 책을 소개해준 친구는 내게 식물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싫어하지 않지만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가문비 나무와 떡갈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좋아한다면 궁금해하고 살펴보고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게 마땅한데, 식물에게서 그만큼의 애정은 느껴본 적이 없다. 단지 내가 사는 곳 주위로 나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녹음이 짙은 숲을 보길 좋아하는 정도다. 식물의 세계란 단순함의 극치일거라고 판단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단순 무식했던 쪽은 나였다는 걸 알게 됐다. 식물들의 세계란 내가 너무 몰랐기 때문에 내겐 너무 놀라운 세계였다. 그곳에는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가득했다.


1. 수수께끼

 ‘매년 생겨나는 수백 개의 씨앗 중 5 퍼센트도 안 되는 씨앗들만 싹을 틔우고 그 중에서 또 5 퍼센트만이 1년을 버틴다.’ 대부분의 씨앗은 싹을 틔우는데 최소한 1년은 기다리고 어떤 씨앗은 100년도 기다린다. (100년 이라니!) 씨앗은 자신만이 아는 자신의 때를 기다려서 마침내 싹을 틔운다. 그들은 뿌리를 먼저 내린다. 그리고 머리를 내밀며 이파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잎에서 만들어진 당을 다시 뿌리로 끌어내려고, 뿌리는 물을 끌어올리면서 식물들은 자란다. ‘더 높이 뻗는 동시에 더 깊이 파고 든다.’ 그들의 모토다. 

 ‘그렇게 자라나는 떡갈 나무 한 그루에 나는 수십만 개의 이파리 중에는 똑 같은 게 하나도 없다.’ ‘나무에 달린 이파리의 숫자는 우리 머리에 난 머리카락 숫자와 비슷하다.’

 중심이 되는 뿌리는 깊게 박힌 채 곁뿌리들은 넓게 뻗어 다른 식물들의 뿌리와 얽히는 식으로 그들은 서로 위험 신호를 주고 받는다. 상호 작용은 뿌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시트카(알래스카에 있는 지역)에 있는 버드나무들은 텐트 나방 애벌레가 재차 침입하자 온 몸으로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내뿜어 주변 나무들에게 위험 신호를 알렸다. 호프 자런 말처럼 식물들은 인간들과 통하지 않을 뿐 자신들끼리는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의사 소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남기 위하여. 

 나무들은 태양을 믿고 자라고, 태양을 기준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생존해야 하는지, 자신의 매커니즘을 어떻게 작동시킬지 계산한다. 각각 찬 기후와 따뜻한 기후에서 배아 시절을 겪은 가문비 나무 형제들을 묘목 시절부터 같은 환경에서 자라나게 할 때 찬 기후의 기억을 가진 가문비 나무들은 2-3주 먼저 겨울 대비 준비를 한다. 나무들은 자신을 겪은 일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움직일 줄 모른다고 수동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새로운 곳에 자리 잡은 이끼는 그곳이 너무 건조하다고 판단하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수분이 가득한 지형으로 땅을 변화시킬 줄도 안다.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게 아니다. 사막이 선인장을 살게 해줬기 때문에 그곳에서 생존한다.’ 사막이 너무 건조해지면 선인장은 자신의 뿌리를 잘라내서 생존한다. 뿌리 없이도 선인장은 몇 년을 버틸 수 있다. 


 식물이 당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먹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인간은 해마다 식물이 살아야 곳들을 점령해가며 그들을 말살시키고 있다. 호프 자런은 말한다. 인간이 사는 곳에 식물들이 사는 게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 살게 된 인간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겠다고. 누군가는 밑동이 잘려나가고 싹을 틔우지 못하고 살 곳을 잃어가는 그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일은 마땅한 이유를 대지 않아도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근데 마땅한 일들과 내 일상은 언제나 너무 멀다. 

 <랩걸>을 읽고 나면 마땅한 일이라고 알고만 있었던 내 일상에 식물들이 개인적으로 다가온다. 한 명의 작고 소중한 아기가 다양한 모양으로 태어나는 것이 마법 같은 일인 것과 같이 나무 하나의 태어남과 자라남도 마법 같은 일이란 것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식물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일들을 이렇게 전해들은 이상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가 아름다운 데에 가장 큰 몫을 담당하고 있는 녹색의 세계를 이 순간에도 열심히 죽여나가는 인간들은 그래도 예쁜 아이를 나아서 그 아이의 예쁨은 칭찬 하겠지. 식물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매 10년마다 프랑스 크기의 숲이 사라져간다. 이런 식으로 식물의 세계가 계속 파괴되어 간다면 예쁜 아이들이 살 공간이란 지켜질 수 없다.


힘없는 것들은 언제나 시야에서 가려져 있다. 나는 인종 차별, 성 차별, 노동 차별에 관심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뇌가 불편한 사람들의 세계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자 한다. 지구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도살되는 동물들과 사냥되는 동물들, 학대 받는 동물들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한다. 그리고 지구에는 소외 받는 인간과 동물뿐만 아니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져가고 있는 식물들이 있다. 

 식물의 세계는 더 이상 내게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세계가 더 궁금해졌고 그들의 세계가 좀 더 내 세계를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2. 개미

 <랩걸>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호프 자런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호프 자런은 과학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실험실 공기를 사랑했고, 문학에 열정적이었던 어머니 영향으로 한 때 그의 전공이 영문학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녀가 상상력이 가득한 과학자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자란 나무가 새끼 나무를 알아 볼지 궁금하고, 최초의 꽃은 공룡에게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켰을지도 궁금하다.


 그의 방황을 오래도록 함께 해준 빌을 만난 건 그의 인생의 어떤 의미였을까.  10년 동안 춥고 더운 모든 순간들을 함께 했던 동료 과학자 빌이 자기 모습 그대로 편히 쉴 수 있는 땅구덩이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계속해서 실험할 것이고 끈질기게 연구 자금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빌과 함께 만들어낸 실험실에서 모든 실험들을 빌과 함께 한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일치했다. 그들은 서로에게 절대 낯간지러운 애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사이처럼 보인다. 지금도 그와 빌은 행복에 대해서 묻는 설문지는 화장실 휴지로나 쓰고, 그저 자신들의 실험에 대서 묻고 또 묻으면서 과학자로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와 빌이 나누는 우정을 보면서 그들이 식물들과 나눌 우정이란 것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옆에 있어 주는 것,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마음 먹는 것.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너저분하고, 여드름을 또 얼마나 자주 나고, 많은 시간들에 얼마나 못나게 좌절했던 지에 대해 많은 지분을 할애해서 썼다. 책의 마지막도 3년 후에 다시 얻어야 할 연구 자금 걱정을 하면서 끝난다. 그러나 나는 그녀 가슴에 빛나는 뭔가를 훔쳐본 느낌이다. 다른 모든 것이 황폐해질지라도 지켜내고 싶은 빛나는 것. 그것은 팽나무씨 가루가 오팔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독점적인 벅참일 수도 있고, 비를 맞으면서 이끼를 채취하는 일의 경건함일 수도 있고, 다른 모든 우아한 씨앗들을 제치고 ‘TS-C-6’(트위스트 앤 샤우트)가 마치 자신을 혐오하듯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꼴사납게 자라나는 것을 목격하는 놀라움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그 자신만의 빛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이제 그는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과학자로 일하고 있다. 그에겐 식물과 실험실뿐 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료와 남편과 아들이 함께 한다. 그가 뿌리를 내리고 지난한 과정을 견뎌낸 긴 여정을 전해 듣는 일이 내겐 기쁨이었다고 그에게 전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도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편지를 쓸지도 모른다. 

       

 씨앗은 기다리고 기다린다. 자신이 뿌리 내릴 곳을. 어찌하여 뿌리를 내렸다고 해도 살아남는 것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살아남았다면 아주 천천히 자라는 나무가 된다. 땅 밑에서 다른 식물 친구들과 뿌리를 겹쳐 교류하고 땅 위에서는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면서. 그들은 몇 십 년을 버티면서 우거질 줄 알고 바람과 추위와 어둠을 어떻게 견뎌내는지도 안다. 호프 자런이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도와 방법이 다를 뿐 인간과 식물 둘 다 시작과 함께 자라나는 이야기가 가득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인간은 절대 식물과 같을 수는 없다. 호프 자런은 스스로를 개미라고 말했다. 숲을 건너는 인간 개미이면서 과학계를 이루는 작은 부품 개미. 여기 다른 개미 하나도 숲을 건너고 싶고, 무언가의 부품이 되길 소망한다. 인간보다는 언제나 나무가 좀 더 옳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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