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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l 11. 2021

영원히 불안할

'여우같은 년'이야기를 듣고

내가 말을 끊지 않았다면 모서리는 그 여우 같은 년에 대해서 몇 시간은 떠들 수 있었을 텐데. 여우는 큰 가슴을 흔들며 맘에 드는 남자 입 안에 술안주를 집어다 넣어주길 좋아하고, 얼큰하고 짜릿하게 취했을 때쯤에는 아무 남자나 안고 뽀뽀하는 게 취미인 여자애라고, 모서리가 말했다.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면서. 하필이면 여우가 맘에 드는 남자가 자기 남자친구인 게 현재 그녀의 비극이다. 

 '나는 아무래도 얘랑 오래 못 만날 것 같아. 믿음이 없어. 얘는 여우가 몇 번 더 찔러대면 질질 끌려갈거야. 말은 아니라는데 행동은 아닌 게 아니야. 얘도 분명 여우한테 관심이 있어. 난 진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사랑의 비극은 내가 자유로운 존재인 만큼 너도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데에 있다. 너는 자유로이 나를 사랑해버린 것처럼 자유로이 나를 떠나버릴 수 있는 존재다. 내가 아직 너를 사랑하고 있을 때조차 네가 충분히 자유로워서 나를 떠나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머릿 속 말고 일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을 철학자 강신주는 훨씬 세련되게 묻는다.

'타자의 자유를 부정하며 사랑의 비극을 피할 것인가? 타자의 자유를 긍정하면서 사랑의 비극을 감내할 것인가.'(책 <철학 대 철학,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인가> 중에서)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대한 내 소유욕을 곧잘 포장한다. 그가 가져야 마땅할 자유를 조종하고 싶은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그가 누구랑 술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재밌게 마시는지, 거기 혹시 그 가슴 큰 여우는 없을지, 새로운 여우에게 받아먹을 술안주를 그가 원할지 얼마나 원할지, 여우와 어떤 말을 섞고 말 다음으로 또 무엇을 어디까지 섞고 싶다는 욕망이 들지, 그의 갈증과 쾌락과 가벼움을 내 시선에서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유욕. 그가 다른 타인들에게 가질 수 있는 호감과 호기심마저 내가 허용할만한 틀 안에 가둬놓고 싶다는 마음의 억지를 마주친 적이 많았다. 과거형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 여전히 내 안에는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억지가 꿈틀거리니까.  


 소유욕 앞에서 이성은 말한다. 너만 주인공이 되는 사랑은 가짜잖아. 네 옆에 있을 때나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는 거지.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네 옆에만 있을 수 있겠어. 저기 있는 그에게까지 네 남자 친구라는 딱지를 붙이지는 말자. 사랑의 그림자를 드리워서는 안돼. 저기 있는 저 사람이 필요할 햇빛을 받게 내버려둬야 해. 네가 충분히 자유롭고 싶은 만큼 저 사람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고 자유로워야 해. 저 사람이 원하지 않는 걸 네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는 건(그걸 아무리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억압이고 독재야. 

 저 사람의 자유가 널 아프게 할 때가 있겠지. 그걸 감당해보려고 애써서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쟤랑 너는 사랑의 비극 한 고개를 넘어탄 거야. 근데 비극이 어디 한 고개 뿐이야. 다음으로 오는 고개 넘기를 감당할 수 없다면, 그때 빠이빠이하는 거고 지금은 이 고개나 잘 넘어타자. 감당하거나 감당하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야. 둘 중에 하나여야 해. 절대 하지 말아야할 건 네 사랑에 대한 그의 대가와 복종을 바라는 것, 그래서 적당히 그의 자유를 갈취한 채 정상적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거야.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고 독재자처럼 믿어버리는 거야.


 바디우는 말했다. '사랑은 둘의 경험이자 무한히 열린 관계이다. ---- 사랑이란 그 자체가 비-관계, 탈-결합의 요소 속에 존재하는 이 역설적 둘의 실재성이다. 사랑이란 그런 둘에의 접근이다. 만남의 사건으로부터 기원하는 사랑은 무한한 또는 완성될 수 없는 경험의 피륙을 짠다.' 


 사랑에 하나가 되는 순간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아니, 없어야 한다고 주문을 외우는 중이다. 나는 그와 몸을 섞을 때조차 내 신체를 가진 나 한 사람의 신음소리를 낼 뿐이다. 하나가 되었다는 착각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낭만은 폭력이 되기 쉽다. 폭력적인 것들이 내세우는 일류의 가치가 통일과 결합이므로. 


 나는 너에게 영원히 접근한다. 너에게 가닿으려고 애쓰지만 영원히 가닿을 수 없다. 나와 너는 서로에게 접근하지만 가닿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완성될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직물을 짜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사랑은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어떤 완성된 것들보다 유일무이한 예술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이 해석가능한 독창적인 기호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배경이여야 할 것을 배경으로 제쳐두고,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곳에 서서 그들만의 빼앗길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이야기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이다. 


 사랑을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그래서 완성될 무엇으로 상상하는 태도는 클리셰다. 클리셰가 주는 안정감을 지향하는 사랑에서 두 사람 사이는 점차 의무감으로 단단히 메워지게 된다. 의무의 성에서 너와 나는 기호를 그려넣을 여백을 잃고, 기호를 읽어내려는 자발성도 당연히 불필요해진다. 그때부터 사랑은 끝나고 계약이 시작된다. 

 우리의 계약에서 너와 나는 각자의 자유를 적당히 손보고 타협해보려고 애쓸 것이다.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족제도가 취하는 생존 전략인데, 나는 여기서 꿉꿉한 냄새를 맡는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의 자유를 어느 정도는 손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못난 집착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다. 집착이 만들어내는 끈적한 의무의 성 안에 나와 너의 껍질을 안전하게 가둬놓고 사랑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유동성을 고정시키고 싶은 헛된 억지다.


 여우 때문에 울고 있는 모서리를 쳐다보는데 맥주가 맛이 없어졌다. 내 안에서 모서리를 비난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모서리가 울고 불며 하는 말들에서 내가 이미 했던 징징거림, 다신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찌질함을 봤기 때문이었다. 남자친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와의 미래를 꿈꿀 수 없다니. 그랬다. 나도 저렇게 말했다. 그녀처럼 남자친구를 비난했다. 네가 내게 믿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너한테 딱 이만큼의 마음 밖엔 줄 수가 없다고 외쳤더랬다. 남자친구의 자유같은 건 껌처럼 씹어버리고 내 믿음이 만들어내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복종을 은근하게 종용했던 치졸한 애인이였다.     


 믿음은, 교회에 가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허무맹랑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계산을 그만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랑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없을까. 그래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너에게 나도 너를 사랑한다는 깔끔한 대답만 들려주고 싶다. '네가 이렇게 해야지, 혹은 네가 이렇게 하지 않아서'와 같은 불필요한 찌꺼기들은 다 걸러내고. 

 누구라도 네 자유를 훔쳐가려고 들 때마다 내가 분개했던 것처럼, 내가 네 자유를 갉아먹으려고 든다면 부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너에게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길 바란다. 


 내가 아직까지 너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네가 아직까지 나를 애틋하게 쳐다본다면, 네가 가슴 큰 여우랑 맥주를 마시든 엉덩이 큰 여우랑 춤을 추든 나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는 노력을 감당하기로 다짐한다. '사랑은 둘의 경험이자 무한히 열린 관계'라고. 나는 네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고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헛된 억지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다짐해야 한다.  


 타자의 자유를 긍정하면서, 아니 나한테 긍정하라는 건 너무 무리고, 인정하면서, 사랑의 어쩔 수 없는 비극을 -언제든지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있다는 것, 네가 나를 사랑하는 와중에 다른 것도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 같은-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때려칠지 모를 불안한 다짐이다. 근데 모든 게 그렇지 않나. 모든 게 이렇게 불안하지 않나. 사랑도, 사랑을 감내하겠다는 다짐도 불안하다.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던 모서리가 맥주잔을 테이블에 꽂자마자 되묻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해야 하는 거야?' 나는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는데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해줬다. '영원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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