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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 Jul 11. 2021

중독됐어

그의 부재

 침대 위에서 누워 지냈다.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유투브 영상들을 보고 또 봤다. 배고픔을 이길 수 없는 때에 다다라 이불을 걷어차고 냉장고를 향해 걸어나갔다. 엊그제 영학이랑 같이 먹다가 남은 부대찌개가 보였다. 밥을 말아먹는데 눈물이 났다. 고개를 들자 불독 같은 얼굴이 식탁 너머 유리창에 보였다. 불독은 귀여운데 내 화난 불독은 못생기고 처참했다. 눈물 나는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먹던 밥을 마저 먹었다. 그의 부재에도 나는 배가 고팠다. 그가 없어서 배가 더 고픈 건지도 모른다며 배고픈 나를 위로했다. 슬퍼서 밥알이 안 넘어간다는 사람들은 신기하다. 나는 아직까지 진짜 슬픔을 모르거나, 슬퍼도 배가 고파서 밥은 생각나고야 마는 염치없는 사람인건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고 다시 침대에 엎드린다. 넷플릭스를 뒤적인다. 블랙미러 시리즈의 'Be right back' 편을 틀어놓고 나는 다시 잠이 든다.


 씻지 않은 내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불쾌한 냄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워 있으려는 몸의 관성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마트에 간 게 아니고, 저녁 일을 마치고 되돌아올 것도 아니고, 자전거 한 대를 거실에 남겨두고 정말로 떠났다. 

 그의 떠남은 상실이 아니다. 그는 내 옆에 부재한다. 그는 아직 내 남자친구고 우리는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겠찌만, 그가 지금 내 옆에 없다는 게 문제다. 오래도록 내 옆에 있어 왔던 게 없어져 버리자 몸과 마음이 휘청거린다.

 

 그가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고 그 본인보다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이 나였다. 그는 내게 그것이 정말 잘하는 일일 것 같냐고 자주 되물었다. 흔들리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기운차게 가야한다고 말했다. 정말로 일단 가버린 영학이의 빈자리를 목격하면서 깨달았다. 그 말이 실현되었을 때의 결과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지, 선행동 후생각 전략을 감당하기에는 실제의 내가 너무 작은 겁쟁이라는 것을. 그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다. 이불은 검은 파도고, 나는 그 아래에 깊숙이 잠겨 있고만 싶었다.


 파도 아래에서 손꼽아 시간을 세었다. 그와 함께 산지 7년이 지났다. 몇차례의 이별 위기를 넘겼고, 평화로움에 머물렀다가도 산산조각난 현실로 되돌아오는 롤러코스터에 동승해왔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정말 다이나믹한 감정선을 타야 했고, 그는 나를 만나면서 성질이 좀 더러워진 것 같다. 

 그는 내 세계를 깨부순 자이다. 그가 침입한 이후로 나는 내 자아에 골몰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가 너무도 중요했던 시절들을 그가 끝마쳤다.  그에게 빠져버린 이후로 나는 그가 뭘할 때 기쁜 사람인지, 내가 뭘해주면 그가 웃는지, 그가 계속해서 나를 사랑하려면 내가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에 대해서 골몰하게 되었다. 그의 얼굴과 몸이 내 세계에 자꾸 들어와서 나는 작아지고 그 사람은 더 크게 부풀어갔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나는 그를 향해 눈알을 부라리며 큰소리를 잘 내질렀다. 크게 부푼다고 해서 항상 좋을 수는 없었다. 그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날들에는 악을 쓰고 싸움을 걸었다. 악에 받쳐 싸우고 나면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도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우스운 일은 그렇게 싸워놓고도 그를 너무 안고 싶은 날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왠일인지 그 날에는 나도 새로운 사람 같고 그가 내뿜는 아우라도 새 것처럼 매력적이다. 나는 그에게 홀린다. 큰소리를 내질러대던 자아는 벌써 잊고 그에게 복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얌전한 얼굴로 그의 다리 위에 앉고 싶어진다. 그의 몸에 내 몸을 밀착시켜 놓고 말을 걸고 얼굴을 쓰다듬다 보면 사랑이 집착이 되는 비극에 대해서도 직감하게 된다. 그 전에는 맛보지 못한 달콤한 맛, 달콤한만큼 씁쓸한 맛, 씁쓸한 것을 지나쳐 독같은 맛들을 그와 함께하는 동안 우후죽순으로 경험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큰 사람은 김영학이다. 돋보기 없이도 나는 그가 크게 보인다. 그를 보는 내 눈은 긴 시간과 깊은 감촉과 무질서 속에서 길러졌다. 우리는 아직도 무질서 속에서 함께라는 시간을 연장 중이지만, 그가 가버린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를 만질 수 없어 슬프다. 

 그가 가버린 이후로 그의 입체성을 잃었다. 보이스톡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점들의 나열이라면, zoom에 뜨는 그의 얼굴은 기껏해야 평면이다. 그의 밤꽃 냄새가 없고 따땃한 온도가 없다. 3D 영화를 볼 때 쓰는 3D안경은 내가 결코 영화 속이 아닌, 영화관 의자에 앉아 있는 관객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느끼게 했다. 3D안경을 쓰고 그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내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의 부재일 것이다. 그가 바로 내 옆에 있을 때의 감각들이 그립다. 내가 만질 수 있을 때 그를 만질 수 있었던 순간을 훔쳐오고 싶다. 사랑은 습관을 너머 중독일지도 모른다. 


 침대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내 마음과 몸이 너무 놀라지 않도록. 슬그머니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발랐다. 강력한 의지로 상실을 지워내는 일을 나는 할 수 없다. 이번 전략은 슬그머니다. 나는 내가 알아차리기 전에 슬그머니 운동복까지 입었다. 

 달리기를 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불독처럼 화났던 얼굴은 수그러들었고, 달리고 나서 팽팽해진 다리 근육은 커져 있었다. 사이 사이에 훅하고 찾아오는 눈물은 어쩔 수 없다. 어찌해볼 수 있는 일은 달리러 나가거나, 비건 초콜릿 사냥에 나서거나, BTS의 SAVAGE LOVE를 들으면서 흥얼거리기. I know you don't give two fucks, but I still want that.  


 신형철은 말했다. 세상에 아무것에도 중독되지 않은 인간은 없을 거라고. 아무것에도 중독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인간은 그 자신에게 중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자신에게 중독될 바에야 초콜릿에 중독되고 싶고, 그보다는 그에게 중독되고 싶다. 그의 Fuck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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