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영 Jun 22. 2021

동거라는 초가 헛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한다.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는 것 같다는 그녀가 내가 행복한지 묻는다. '요즘 남자 친구랑 행복해?'

 그녀는 내가 묻지도 않은 대학 동기들의 소식도 들려준다. 누구는 시부모님한테서 매달 용돈을 받고 누구는 결혼 한 뒤로 만날 때마다 들고 오는 명품 가방이 바뀌고 누구는 어디 아파트에 산다고. 그들과 달리 자기가 명품이 아니라서 남자 친구에게서 변변한 명품 가방 하나 선물 받지 못하는 건가 싶다며 좀 전까지 분명 행복에 있던 친구가 어느새 내 옆에 추락하여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확실히 명품 쪽은 아니라고 말했다. 화난 그녀의 자기 비하 화살표가 방향을 틀어 내쪽으로 왔다. '그래서 너는 남자 친구랑 행복하다고?(너 꽤 불행할 만한데 말이야.)'

  아무리 못해도 입생 로랑은 받아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북돋아 줬다고 한다. 아무리 못해도 사람들이 너를 입생 로랑쯤으로 생각해준다니, 많이 컸다고 칭찬해줬는데 친구는 여전히 화나 보인다. 문제가 입생 로랑만은 아닌 것 같았다.

 친구 남자 친구는 6시에 일을 마치고 친구는 4시 반에 퇴근하는데 하기 싫은 저녁을 어쩔 수 없이 친구가 해야 하는 건지, 명절에 그의 집에 먼저 가야 한다면 대신 무슨 조건을 두고 그와 타협할지, 돈 관리는 남자 친구한테 맡길 때 자기는 어디서 영향력을 행사할지 등등의 문젯거리들을 앞에 두고서 소주를 들이켜고 싶다는 나의 입생 로랑 친구.

'너는 어때? 결혼은 아니라도 결혼 같은 거잖아? 행복해?'


  결혼할 예정이지 않은 나는 프러포즈 선물 때문에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낼 일이 없고, 돈 관리를 미래의 남편님께 이양한다거나 명절에 시댁에 먼저 갈까 말까를 두고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어서 일단 편하다.

 설사 내가 결혼할 예정이라도 내 소득의 일정 퍼센티지는 나만의 요술램프에 남겨둘 것이고, 명절에는 우리 엄마 아빠를 보러 갈 것이고(나 3대 독녀), 내 몫 이상의 집안일이 남았을 때는 못 본 척 집을 비울 것이다. 남자 친구나 남자 친구 댁으로부터 떨어질 콩고물을 맛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 마음에 들기 위하여 박가영 플러스의 애교나 아양을 떨 필요도 없다. 꿇릴 게 없어서 자발적이고 은근한 복종을 받칠 필요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와의 관계에서 꿇을 생각이 없다. 내 일련의 행동을 두고 남자 친구가 배려가 없다거나 예의를 모른다고 가스 라이팅 하려고 들었다면 죽자고 달려 들어서 싸웠을 것이고, 싸워도 별 수 없다면 깔끔하게 헤어졌을 것이다. 질 줄 모르고 고정관념을 바꿀 줄 모르는 남자는 매력이 없다. 폼나는 양복을 입은 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저속한 인종 비하 발언을 내뱉는 화이트 가이를 볼 때처럼 재수 없을 뿐이다.     

 -너처럼 굴다가 걔가 결혼 그만두자고 하면 어떡해?

 걱정하는 친구에게 걘 나랑 같이 놀 그릇이 못되구나 하고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쿨하게 조언했는데, 그녀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아서 몸과 마음이 함께 섹시한 남자들이 분명히 남아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개인적인 희망이기도 하지만, 파트너를 구하는 다른 많은 여자들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섹시한 남자는 사랑이란 자유란 걸 안다. 그는 적어도 입생 로랑을! 외치는 여자들이나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내 친구를 매력적이라고 발견할 만큼 관대하지는 못해도, 명절인데 네가 왜 우리 집에 가냐고 먼저 따져 물을 수 있을 만큼 세련된 남자일 것이다. 때깔 나는 옷을 입지 않았을 망정 저속할 줄 모르는 그는 감출 수 없는 위엄을 풍기는데, 그런 진주를 발견하려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고 헌터 자세를 취하는 게 좋을 거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친구도 일으켰다.

  

 결혼도 동거도 연애도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서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만큼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내가 아무리 자유가 중요하다고 떠들어도 들어줄 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연애도 동거도 결혼도 오래 못 간다. 명절이든 뭐든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데 가겠다는 아내의 목소리에 남편이 너만 유독 삐뚤게 구냐고 반응하는 관계에서 어느 한쪽은 사소하고 교묘하게 착취당하는 피해자임이 틀림없다. 힘세고 목소리 큰 남편들은 피해자가 피해자인 사실도 잊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네 남자 친구가 섹시하고 네 똥도 굵어서 네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고 친구가 흘긴다. 아까부터 왜 계속 행복 타령이냐고, 행복 노이로제에 걸리겠다며 나도 그녀를 흘겨봤다.

 

 어제는 일요일이라서 남자 친구랑 동네 뒷산을 걸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가끔 내 자존감이 오늘처럼 바닥을 칠 때, 나는 네가 왜 내 옆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가. 고맙고 그래.

-나도 내가 너무 괴물 같은 때 너는 나를 어떤 눈으로 볼까, 네 눈에도 괴물로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되고 그래.

그러다가 우리는 개미들의 행렬을 발견하고 그게 얼마나 길게 이어지 있는지 뿌리를 찾아 산길을 오르다가 철봉 매달리기를 하고 내려왔다.

 이런 일요일들을 사랑한다. 그의 자존감이 낮거나 내가 너무 괴물인 날엔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햇빛을 쬐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내가 함께하는 길이 개미들의 그것만큼 질서 정연할 수는 없지만 그들처럼 열심히 가던 길을 가다 보면 계속해서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어딘가에 다 닿지 않을까. 사실 그곳은 우리가 나아가기 위한 방향키일 뿐 나는 그와 함께 가는 와중에 자주 빛을 쐬고 자주 웃고 자주 놀랐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결혼하지 않고도 햇빛 쬐는 일에 여유를 부리는 동거 생활을 행복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 한 번 실험해보고 싶다. 함정은 실험이 가능한 실험실에 살고 있냐는 거겠지만.


 햇빛 쨍쨍과 함께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천둥 번개가 치는 다양한 날들도 우리에게 있어왔다. 앞으로도 지저분하고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한 날씨들을 경험할 확률이 더욱 것 같다. 

 날씨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어찌할 수 있는 건 해가 뜰 때 해를 쬐고 비가 오면 우산을 펴고 천둥 번개가 치면 집 안에 숨어드는 일 정도고, 집이 없어서 집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연애든 동거든 결혼이든 본질은 상대의 없음을 봐주는 일('나의 없음을 당신께 드릴게요.' 신형철 칼럼), 나도 없으니까 함께 없을 수 있는 일, 없는 것들끼리 힘을 합쳐 한 발짝이라도 발을 내디뎌보고, 날이 안 좋아 그럴 상황이 아닐 땐 함께 피난처에 머물러 주면 되는 거 아닌가.

 

 결혼이 동거보다 완벽한 관계의 형태라는 믿음은 동거가 결혼보다 낫다는 내 고정관념만큼이나 흑백논리다.  친구가 계속해서 내가 행복한지 묻는 기저에는 결혼하지 않고도 네가 행복할 수 있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우리 문화는 한 인간이 결혼까지 해내고 났을 때야 그를 완전한 성인으로서 인정한다. 인정 없이 살기 어렵고 혼자인 것도 불안한 인간들은 결혼이 자신의 어떤 부분을 완성시켜줄 수 있고 궁극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상대를 찾기도 한다.

 결혼이 견고하고 웅장한 성이라면 동거는 비 오는 날 잠시 쉬어가는 초가 헛간 정도일까.

 

 오랜 초가 헛간 생활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이 서로를 채우는 일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없음을 감당해내는 일이고,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행복하지 않을 많은 순간들에도 옆에 있어주는 일이란 생활 꿀팁을 알려줬다.

기쁠 때는 누구와 함께해도, 설사 기분 나쁜 사람이 내 기쁨을 좀 갉아먹어도 기쁜 맛은 단단한 사탕처럼 한동안 입 안을 맴돈다. 기쁠 때는 나쁜 인간들을 튕겨내는 게 쉽다. 

지리멸렬한 일상을 견뎌내는데 우리는 행복한가? 같은 질문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불행해서 못살겠다는 고백을 받아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동거라는 무너지기 쉬운 헛간처럼 보이는 곳에서 우리 두 사람만 감각할 수 있는 피륙을 짠다. 명품과 멀고 완성품을 우리 두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을 것을 개미처럼 해나간다. 나중에 뒤를 돌아보며 놀라는 정도가 우리 몫 아닐까. 기쁘고 지루하고 무섭고 지난한 날들을 견뎌 이렇게 긴 길을 걸어왔구나 하고. 행복하지 않았던 많은 날들에도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센스까지 있다면 더 좋고.

 

  어쨌거나 입생 로랑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다. 본인이 믿는 행복을 잘 쟁취하길.


 그녀가 결혼을 하고 그것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 그녀야말로 자유를 외치는 가장 용감한 페미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기혼 여성들이야말로 가부장의 미묘한 문제들을 두고, 가령 명절날 우리 집에 먼저 가고 너희 집에도 가주겠다고 말하는 남편 앞에서 어떤 태클을 걸어야 할지, 내가 입고 싶은 시스루를 입고 모임에 나가려고 할 때 제지하는 남편 앞에서 속옷도 벗어버릴지 말지를 두고, 두껍고 사실적인 벽에 맞서야 하는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고한 제도권 안에서 당연한 격식과 예의를 들먹일 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싫다고 정확하게 말하고, 내 안의 원하는 것을 드러내는 일을 위하여 일상적으로 싸워야 하는 여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초가 헛간을 담당할 테니 그녀는 어서 입생 로랑을 잊고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성에 들어가 굴복하지 말고 설쳤으면 좋겠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그녀 자존감을 찾는 대신 가정 속에서도 그녀만의 성을 지켜내면서 자존감을 세워나가는  여성으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