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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Mar 02. 2022

정당한 전쟁도 있을까? - 우크라이나와 황산벌

#PSH독서브런치147

사진 = 네이버 영화 <황산벌> 스틸컷


1.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이 있듯 폭력은 보통 부정적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에 대항한 우크라이나의 항전이 국제적으로 큰 응원을 받는 현상을 보면 폭력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박이문 교수는 <박이문 인문학 읽기 : 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에서 "죽음을 각오한 대결로서의 전쟁의 선택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옳은 선택이건 아니건, 싫건 좋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은 결단해야 할 궁지에 처하는 경우를 피할 수 없을 때"가 있고, 이때는 전쟁을 선택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고 인간적으로 당당"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합니다. 또한 전원책 변호사는 <전원책의 좌파 비판 - 자유의 적들>에서 "힘없는 나라에 평화는 없다"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비평화적 방법’인 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즉,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비평화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2. 백제의 계백은 신라의 침략에 맞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백제의 마지막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그는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처자식을 모두 죽이고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로 유명하기도 하죠. 하지만 영화 <황산벌>은 이런 계백의 행동이 용맹한 행위라기보다 정당성을 잃은 행위임을 계백 아내(김선아 분)의 대사를 통해 드러냅니다. 계백에 죽임을 당하기전 그녀는 계백에게 "전쟁을 하든가 말든가, 나라가 처 망해불든가 말든가, 그것이 뭣이건대 니가 내 새끼들을 죽여분다 살려분다 그래야?"라고 합니다. 전쟁과 폭력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목적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고, 따라서 아내와 자식을 죽이는 순간 그 정당성이 사라져버림을 지적한 대사가 아닐까 싶어요. 윤창욱 작가는 <마흔,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시선>에서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계백의 항전과 오천 결사대의 죽음에 과연 타당한 이유나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언뜻 생각해보면, 계백의 전쟁은 자기가 몸담았던 삶의 터전과 소중한 가족 및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전쟁 전 가족을 죽임으로써 이미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아가 삶의 터전 또한 반드시 백제라는 국가 체제 아래에서만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가 수행한 전쟁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1+2. 인생의 가장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 정당한 것이고 정당하지 않은 것인지 판별해줄 수 있는 궁극적인 존재, 절대적인 존재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를 통해 절대적인 존재를 믿는다 하더라도, 그 절대자의 뜻은 평생에 걸쳐 조심스레 헤아려야 되는 것일 거예요. 비평화적인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국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침략에 대한 대응의 목적으로 시작한 폭력이 정당성을 잃게될 수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항전이 현재는 정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황산벌>에서처럼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정당성을 잃었다고 평가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것은 정당하고 저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판단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잠정적인 결론만이 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가져야 하는 태도는 마치 종교를 가진 분이 절대자의 의도를 조심스레 헤아리듯, 무엇이 더 정당한 것인지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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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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