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설국열차(2013)>의 내용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프랑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로 모든 것이 얼어붙은 가상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설계한 기차에서 17년째 지속되고 있죠. 폐쇄된 생태계인 기차는 적정 인구수가 유지되어야 하며 때로 급격한 인구 감소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윌포드는 때때로 '서로 죽고 죽이는(individual units kill off other individual units)' 반란을 조장하고 적정한 시점에 진압하여 '균형'을 유지하죠. 윌포드의 행동이 윤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와 관계없이 적정 인구수를 계산하여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고 실행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의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인정할만합니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라면 큰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어야 할 거예요.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미래를 정교하게 예측하는 능력과 연관이 있을 것 같고요.
2.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에서 "나는 인간 지식의 진보와 성장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진보와 성장 탓에 미래는 갈수록 예측이 어려워질 것이며, 인간의 본성과 사회‘과학’은 이것을 감추는 데 진력하고 있다고 과감하게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주장한다"고 썼습니다. 즉, 정교한 예측이 중심이 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갖추기 어려워지리라는 지적이고 이는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예측이 항상 맞지는 않더라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전략을 수정해 또 다른 납득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 또한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윌포드는 본인의 예상보다 더 큰 희생을 초래한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를 칭찬하며 그에게 본인의 역할을 이어받을 것을 제안합니다. 즉, 윌포드는 기존 계획이 틀어진 상황에서 본인을 이어 기차를 책임질 수 있는 후계자를 찾아내는 또 다른 큰 그림을 만들어내죠. 문유석 작가는 <최소한의 선의>에서 "학업이든 직업이든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과제를 끊임없이 해결해나가는 것이 진짜 능력"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큰 그림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표현하면 어떨지 싶습니다.
1+2. 나심 탈레브는 같은 책에서 "주어진 예측치가 옳다고 생각되어도 우리는 이 예측치에서 상당히 빗나갈 실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썼고 저는 이 문장이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생각해요. 즉,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갖기 위해선 1) 본인의 과거 경험, 통찰, 주변 사람들의 조언 등을 총동원해 미래를 예측하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 큰 그림이 언제든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2) 최초의 큰 그림이 유효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도 기회를 포착하여 또 다른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융통성과 유연함, 여유, 통찰을 미리 준비해두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