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상당한 행운이며, '국뽕'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 기업이나 운동선수가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꽤 뿌듯합니다.
(특히 요즘 주식을 하면서는, 삼성전자를 포함해 LG화학, 현대차같이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한국에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습니다. - 재벌 경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이 주제는 이후 다루어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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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미를 배제한 애국심, 즉 나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사랑, 고마움은 건강한 마음가짐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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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군생활을 하며 애국심이라는 개념이 정치적 의미 즉, 누군가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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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다'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고, 주기적으로 정훈장교의 '정신 교육'을 받으며 애국심을 주입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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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애국심은 '월급 15만 원에 가장 꽃다운 나이 청춘을 신나게 부려 먹기 위한 개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1. 이러한 선천성과 불변성으로 인해 인간은 자기가 소속된 국가에 집착한다. 그런 공동체 의식이 바로 애국심이다. 따라서 애국심 그 자체는 결코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이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애국 혹은 애국심의 표현을 강요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파시즘적 사고’에 해당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애국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면 분명 미덕이지만 그것은 개인의 양심에 속하는 것이므로 강제해선 안 된다.(공직은 예외다.) (전원책의 좌파 비판 - 자유의 적들, 전원책, 중앙books)
2. 『플래툰』에서는 가장 사악한 적이 정글 속에서가 아니고 오히려 소대 내부와 주월 미군 사령부와 워싱턴 행정부에서 발견된다. 『살바도르』에서는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살육이 미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었던 우익 군부에 의해 저질러진다. 『7월 4일생』에서는 미국의 실수와 실패가 하반신 마비와 성불능이 된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제시되고 있다. 베트남전 상이용사인 그는 지배문화의 선동과 나이브한 애국심으로 인해 군에 지원 입대하고 파병되어 반신불수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모든 것 – 학교교육, 가정교육, 군대교육을 포함하여 – 이 허위였음을 깨닫게 된다. (처음 만나는 영화 : 내 영혼을 울린 문학텍스트로서의 영화, 김성곤, 알에이치코리아)
3. “사람들이 너한테 정답이라고 내미는 것을 그냥 믿어버려서는 안 돼. 언제나 네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네 생각을 다듬어야 해. 그리고 네 믿음, 네가 옳다고 여기는 것, 네가 취하는 태도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 /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 “그래,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그런 게 바로 자유야.” (자비 윤리학 : 도덕철학의 근본 문제, 박이문, 철학과 현실사)
비슷한 개념으로는 '사명감', '애사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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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직업, 속한 집단에 대해 사명감, 애사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외부에 의해 강제될 경우 혹시 '나를 싼 값에 부려먹으려는 술수'가 아닐지 한 두 번쯤 의심해보는 건 괜찮은 전략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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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나아간다면 회사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아닌 것 같은 일을 시키며 '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야'라고 한다면, 무작정 믿기보다는 한 번쯤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을 것 같고요. (다만 신입일 때는 군말 없이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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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바라보는 걸까요? 다만 #PSH독서브런치11 에서 이야기했듯, '역설적인 두 가지 특성의 균형'이 부자가 되는 데 더 유리하다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천진난만한 시선과 삐딱한 시선 모두를 겸비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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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이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두 가지 면을 다 보라고요."라고 했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