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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Dec 07. 2021

단어에 스며있는 프레임 파악하기 (김하나)

#PSH독서브런치060

사진 = Pixabay


상대방의 프레임을 파악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에서 꽤 큰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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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게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표현하는 분은 기독교적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분일 테고, '우리'라는 표현을 잘 쓰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개인주의적이라기보다 본인이 속한 집단을 중요시하는 성향을 지녔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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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순결'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분은 혼전의 관계가 순결하지 않다는 관점을 가졌을 거라고 추측하며, 스스로를 '오빠'로 지칭하는 남자분이 있다면 성별의 차이, 나이에 의한 위계 차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1. 백성은 왕이 있을 때 사용한다. 국민은 국가를 강조할 때 사용한다. 인민은 자연인을 말하지만 현재는 사용하기 어색하다. 민중은 피지배층을 강조한다. 대중은 수동적이고 비합리적인 다수의 무리를 말한다. 때로는 긴 대화보다도 상대방이 사용하는 단어가 그 사람의 내면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어떤 사람이 민중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거나 세금의 인상을 강조하거나 복지 국가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신이 국가의 성장이나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국민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단어가 없을 것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 대중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면 그는 엘리트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 (시민의 교양, 채사장, 웨일북)


2. ‘진보’라는 말은 ‘더 좋은 것’, ‘더 바람직한 것’이라는 뜻으로써 기술적이 아니라 평가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보수’와 대치되는 말은 ‘진보’가 아니라 ‘개혁’이 적절하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범주적 오류’를 범한 결과라면, 그보다는 ‘좌익’과 ‘우익’ 혹은 ‘개혁’과 ‘보수’의 대립이 적절하다. ... 그렇다면 사회주의적 이념이 ‘진보적’, 즉 ‘보다 더 좋은 것’이고, 자유민주주의적 이념이 ‘반진보적’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사회주의적 이념을 ‘진보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신념을 가진 자들이 아전인수격으로 한 선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이문 인문 에세이 : 아직 끝나지 않은 길, 박이문, 미다스북스)


3. ‘칼퇴’라는 용어는 사악한 고용주가 만든 것이 분명하다. 지독히 정치적인 화법이니까.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게 칼퇴라면, 일반적으론 조금 더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치관이 스며있으니 말이다. 칼퇴라는 말은 헛소리다. 정상 퇴근만이 있을 뿐이다. (에스콰이어 16년 4월호)



상대방의 프레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말하는 단어가 나의 프레임을 적절히 대변하고 있는지를 검토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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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경계해야 할 것은 '혼전순결', '대중', '진보', '칼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단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프레임이 자기 자신을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일 거예요.

(예컨대 자유보다는 평등을 더 중시하시는 분 입장에서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진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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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더 나아가서 프레임이 담긴 나의 단어가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배제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상황도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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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살색'이라는 표현은 '단일한 피부색'을 전제한 표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표현일 수 있고, '결정장애'는 부족함, 열등함을 '장애'로 연결 짓는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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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에 스며있는 프레임으로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스스로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말을 하기 위해 내가 표현하는 단어가 어떤 프레임을 지니고 있는지 항상 긴장하며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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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작가는 책 <말하기를 말하기>에서 '현시대의 지성에는 여러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능력과, 내가 알고 있던 게 다른 시각에서는 잘못된 것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능력 또한 포함된다'라고 말했는데, 곱씹을 만한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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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thepsh-brunch/120

https://brunch.co.kr/@thepsh-brunch/60

https://brunch.co.kr/@thepsh-brunch/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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