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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May 30. 2022

'아무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이 될 수 있을까?

#PSH독서브런치179

사진 = 네이버 영화 <킹덤 오브 헤븐> 포스터


※ 영화 <킹덤 오브 헤븐(2005)>의 내용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킹덤 오브 헤븐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둘러싼 십자군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슬람 진영 지도자 살라딘은 영화 결말 부분에서 예루살렘을 기독교로부터 넘겨받는 데 성공하죠. 기독교 진영 지도자 발리앙(올랜도 블룸 분)은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넘겨주며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What is Jerusalem worth?)"라고 묻습니다. 살라딘은 "아무것도 아니지(Nothing)"라 답하고 돌아섭니다. 그리고 다시 발리앙 쪽으로 돌아서서 "모든 것이기도 하고(Everything)"라고 말한 후 웃음을 띠며 돌아가죠. 예루살렘을 단순한 땅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확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전쟁을 통해 희생된 모든 죽음 또한 헛된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살라딘은 발리앙에게 예루살렘을 넘겨준다면 추가적인 희생은 없을 것이라 보장해줍니다.("No one will be harmed. I swear to God.") 살라딘은 발리앙이 예루살렘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살고 있는 기독교 진영의 사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종교적 의미가 부여된다면 예루살렘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도 확보해야 하는 '모든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은 숭고한 죽음으로 추앙받을 것이고요. 또한 살라딘 본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는 땅이기도 합니다. (살라딘은 즉위하며 예루살렘을 되찾아올 것을 약속했습니다.)


2. 예루살렘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면서 모든 것이다"라고 한 살라딘은 종교가 제공하는 프레임보다 상위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즉, 살라딘은 비록 종교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종교가 제공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느 인생을 살아가다 결국 어떤 곳으로 갈 것이다'라는 세계관 안에 갇힌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보다 더 높은 프레임에서 종교를 자신의 인생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이런 태도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본인의 경험에 대해 이성적 측면에서의 설명과 종교적, 신비적 측면에서의 설명을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나요?(So, which story do you prefer?)"라고 물은 후 "그건 당신에게 달렸죠(Well, that's up to you.)"라고 말했던 파이의 태도와도 연결되는 것 같고요. 파이 역시 한 가지 세계관, 프레임, 해석에 매몰되지 않고 그 사이를 넘나들고 있으니까요.


1+2. 상위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프레임 선택의 폭이 더 넓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살라딘이 발리앙에게서 예루살렘을 넘겨받으며 사용한 프레임("Nothing")과 내부 결집을 위해 사용한 프레임("Everything")은 서로 다른 것이며, 살라딘은 이 두 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슬람교 지도자가 되었고 예루살렘을 수복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내가 현재 가진 프레임보다 더 높은 프레임은 어떤 것일지 늘 고민하는 태도는 인생을 조금 더 주체적이고 유연하게 살기 위해 유효한 태도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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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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