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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화 Apr 13. 2020

밤의 사무실

초단편소설

'검사 측 심문하세요‘ 인간 판사의 지시에 인간 검사는 일어나서 내가 마치 살인이라도 저지른 것 마냥 몰아치듯 추궁하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나를 대변해줄 뱀파이어 변호사는 항소심 시간에 해가 너무 강하게 내리쬔다는 이유로 변론을 거부했다.

 아마 자신의 관 속에서 핸드폰으로 속 편하게 재판 과정 중계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모든 재판 과정이 뱀파이어인 나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재판부에서 모든 재판을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간에 잡는 것 자체가 썩 유쾌하진 않았다. ‘본 사건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피고는 피해자를 물기 위해 약 3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3개월 동안 피해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경계를 풀게 하고 심지어 사건 당일 피해자를 물기 전 식사시간도 아닌데 양치와 가글까지 하면서 철저하게 범죄를 준비했습니다. 피고는 본인의 범죄행위가 계획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사랑도 그 범죄행위에 포함이 된다면 계획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반대편에 앉아 있는 K를 3초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유난히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는 에메랄드빛 푸르스름한 수트를 입은 K는 내 시선을 느끼고 목 언저리에 감은 붕대를 어루만지듯 쓰다듬는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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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은 30년 전 뱀파이어와 인간 사회가 합쳐진 ‘대통합’을 청년시절에 겪은 대통합 1세대였다. 당시 변호사였던 아버지는 뱀파이어에 비해 절대적인 숫자가 월등히 많았던 인간 중심의 사회통합으로 상대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뱀파이어 인권에 관심이 많으셨고, 뱀파이어 혐오 문제가 불거졌던 1990년대 말 아버지는 다니던 대형 로펌을 그만두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시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뱀파이어 혐오 범죄의 피해자였던 어머니의 변호를 아버지가 맡게 되면서 두 분은 사랑에 빠지셨다.


 낮과 밤이 겹쳐진 차갑고도 뜨거운 1년간의 열애 끝에 두 분은 결혼을 약속하고 아버지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쓴 채 어머니의 송곳니에 의해 후천적 뱀파이어가 되셨다. 나는 그런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선천적 뱀파이어 1세대였다. 어머니만큼 송곳니가 제법 날카로워지기 시작할 사춘기 무렵,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변호사를 꿈꿨다. 대통합 이후 2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했다. TV 뉴스는 항상 동물들의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을 인터뷰하거나 언제 인간들을 해치려들지 모른다는 이유로 뱀파이어 혐오 운동에 앞장서는 일부 과격 단체들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밤에만 활동해야만 하는 종족 특성상 3D업종 종사자의 비율이 높고 주간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야간학교 커리큘럼 때문에 올바른 교육의 기회도 갖기 어려운 현실, 뱀파이어들은 늘 인간들이 피땀 흘려 일구어놓은 사회 시스템에 빌붙은 기생충 같은 존재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부모님은 나에게 인간과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중학교 때부터 나를 주간 학교에 보내는 선택을 하셨다. 어머니는 새벽시간 관속에 들어가시기 전에 나의 등교 준비를 책임지셨다. 내가 샤워를 마치면 어머니는 SPF 지수 90 이상의 썬크림을 나의 온몸에 빈틈없이 바르셨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히잡과 같은 옷을 입고 등교하지만 혹시나 모를 자외선 화상을 막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썬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등교 준비가 완료된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폭력/괴롭힘에 대한 부모님의 걱정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면 그렇게 하루 중 1시간 남짓한 부모님과의 시간은 끝난다. 부모님의 걱정과는 다르게 주간 학교를 다니는 동안 친구를 사귄 적도 괴롭힘을 당해본 기억도 없다. 아마도 인간보다 10배는 힘이 센 뱀파이어에게 선뜻 다가가거나 괴롭힐만한 용기와 무모함을 가진 애들이 없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주간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괴롭힘이나 차별이 아닌 태양이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마주해본 적 없는 태양이라는 존재를 처음 맞닥뜨린 등교날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일 집을 나서기 전 똑같은 상상을 했다. 샤워를 막 마치고 나온 나는 사막 한가운데 벌거벗은 채 덩그러니 서있다. 썬크림도 히잡도 썬글라스도 없이 나체로 서있는 내 머리 바로 위에 뜨거운 태양이 송곳으로 찌르듯이 내리쬐기 시작한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엔 그늘을 만들어줄 구름 한 점 존재하지 않고 주변엔 내 몸을 숨길 지붕 하나 없는 곳에서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짝 타 들어가다 새까만 재가 되어버린다. 그 모든 과정에 3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평생을 짊어진 고통과 증오에서 벗어나는데 3초면 충분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영원히 살아야 하는 뱀파이어의 죽음 치고는 꽤나 호화로운 방법이다.

 나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꽤나 명망 있는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뱀파이어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는 나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대학교 3학년 어느 추운 겨울,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겪는다. 학기가 끝나 겨울방학을 맞이한 나는 잠시나마 지긋지긋한 아침형 뱀파이어 생활을 접고 따뜻한 부모님의 품에서 캄캄한 겨울방학을 보내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나는 어디에서도 부모님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하루 종일 이곳저곳에 수소문을 하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경찰에 신고를 했다. 혼자서 부모님의 소식을 기다린 지 3일째 되던 날, 경찰에게서 부모님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모님은 인간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하셨다. 그들은 평소 뱀파이어 인권에 앞장서던 아버지를 타겟으로 삼고 낮시간에 곤히 잠들고 있는 부모님의 관을 봉인해서 강에 버렸다. 뱀파이어의 인권과 사랑을 위해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고 뱀파이어가 된 아버지는 관속에 꽁꽁 묶인 채 얼음장같이 차가운 강물이 차오르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두 분은 수십 초, 길게는 수분 동안 관속에 갇혀 답답함과 옥죄는 고통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아마 두 분에게 죽는 방식에 대한 선택권이 있었다면 관속에서 수장되기보다는 태양 아래서 재로 타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으리라.

 나는 1년간의 안식년을 가지고 학교로 돌아갔는데 그동안 인간과 뱀파이어 사회에서 부모님의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뱀파이어들의 인권 신장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나 역시 사법고시 패스 후 부모님의 죽음 덕에 생겨난 ‘뱀파이어 균등 채용 정책’ 덕분에 유명 로펌에 취직할 수 있었다. 과격주의자들에게 무참히 살해된 뱀파이어 인권 변호사의 딸이 그의 뒤를 이어 변호사가 되었다니, 뱀파이어 차별 금지에 관한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바람직한 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인간과 뱀파이어 사회 양쪽 모두에게 톡톡한 홍보효과를 내기에도 나만한 도구는 없었기에 연수원 생활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내로라하는 유명 로펌들에서 앞다투어 나를 찾아왔었다. 그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던 지금의 로펌에서 근무하기로 했고 나는 주간 근무 변호사와 사무실을 공유하는 형태로 일을 시작했다. 되도록이면 인간들과 부딪히지 않지 위해 전용사무실을 원했지만 로펌은 비용상의 이유로 거절하고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한 인간 변호사와 사무실을 공유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첫 출근날 K를 만나게 되었다. K의 첫인상은 그 어떤 뱀파이어보다도 더 뱀파이어에 가까웠다. 햇빛이라곤 태어나서 한 번도 쬐어본 적 없는 것 같은 핏기 없는 창백한 피부에 백발에 가까운 금발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포마드로 가지런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를 혐오와 측은함이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K는 뱀파이어인 나를 대하는데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매일 근무시간이 겹치는 하루 두 번의 30분이라는 교대시간 동안 K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차분한 어조로 나와 요즘 각자 담당하는 사건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 시간이면 나는 사슴피를 조금 넣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K는 늘 새빨간 비트를 갈아낸 주스를 마셨는데 창백한 피부 덕에 유난히 빨갛게 보이던 그의 입술은 30분 동안의 교대시간이 끝날 무렵이면 비트 주스로 더욱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끔씩 그가 조그만 입을 벌리며 말할 때 보이는 그의 치아와 혀도 마치 방금이라도 피를 잔뜩 마신 뱀파이어처럼 붉은색 투성이었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내고부터인지 나는 매일 출근시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집 밖을 나서기 전 늘 떠올리던 태양에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상상은 어느새 K의 새하얀 목덜미를 물고 있는 상상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이제 나에게 30분간의 짧은 교대시간은 너무나 즐겁고 유쾌하지만 치솟는 욕망을 억누르기에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K의 창백한 피부는 보는 즉시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새하얗고 보드라운 머릿결은 나를 나약한 사슴보다도 물러지게 만들었다. 뜨겁고도 고요한 시간을 통해 나는 K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고, 나는 내 욕망이 K의 목덜미를 물어버리기 전 K에게 마음을 고백하기로 했다. 3개월 동안의 교대시간이 K에게도 어떤 의미였기를 바랬다. 당장 연애를 시작하진 않더라도 진지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자는 약속을 하고 싶었다. 사실 어떤 확신이 있어서 라기보다는 내가 참지 못하고 K의 목덜미를 물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저녁,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한 나는 서류함에서 파일을 뒤적거리는 척하며 퇴근 전 의자에 앉아 다음 주에 있을 변론 자료를 훑던 K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얀색 종이를 넘기는 가느다란 K의 손가락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K가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다. ‘아‘하는 소리와 함께 K의 손가락 위에는 새빨간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거친 종이의 단면에 베인 손가락의 상처는 작지만 멈출 줄 모르고 피를 뿜어냈다. 어느덧 책상 위에는 K의 피가 묻은 휴지가 쌓였고 내 심장박동은 끝을 모르고 빨라지며 입 속은 침으로 가득해졌다. 나는 멈출 줄 모르는 욕구를 억누르기 위해 화장실로 도망쳐서 거칠게 이빨을 닦아 냈다. 위 속에 담긴 것을 다 토해낼 기세로 혀 안쪽 깊숙이까지 칫솔로 닦아낸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글까지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간 그 순간 K는 자신의 뒤에 내가 서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가 멈추지 않는 손가락을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으로 가져가 빨아대고 있었다.


- 그 뒤로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방금 전 검사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때 내가 거칠게 K에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려고 시도했으나 다행히 K가 완력을 이용해 밀어낸 덕에 목을 완전히 무는 데는 실패하였고, 나는 우당탕하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주변 동료들에 의해 제압당했다고 한다. 검사의 말처럼 완전히 무는 것은 실패했기에 반대편에 앉아 붕대로 감은 부분을 쓰다듬고 있는 K의 목에는 사실 큰 상처가 나지 않았다. 검사는 나의 계획된 범죄행위가 대단히 악질적이며 오랜 기간 쌓아온 인간과 뱀파이어 사회의 신뢰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큰 오점과도 같은 사건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내심 검사 측에서 사형, 특히 벌거벗은 채 태양에 노출시켜 재로 만들어 버리는 화형을 구형해주길 바랬지만 검사 측은 5년형을 구형했고 나는 최후 변론을 거부했다. 잠시 동안의 휴정 후, 판사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임을 고려하여 검사 측의 의견대로 5년형으로 판결을 내렸고 객석에서는 불만스러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혐오스러운 뱀파이어들을 불에 태워버리자는 구호와 함께 객석이 소란스러워졌고 나는 법원 경찰에 의해 정신없이 밖으로 이송되었다.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히잡을 입고 썬글라스를 쓴 채 법원을 빠져나온 나는 성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 경찰들은 나를 둘러싼 채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며 호송버스 쪽으로 낑낑대면서 움직였고 버스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나를 둘러싼 군중들의 광기는 커져만 갔다.

 겨우 버스 문 앞에 다 달았을 무렵, 찰나의 순간 누군가의 손이 불쑥하고 나타나 내가 뒤집어쓴 히잡을 홱하고 낚아채듯 벗겨버렸다. 또 다른 손에 의해 뺨을 후려치듯 썬글라스가 벗겨지고 순간 나는 눈부신 햇살에 눈을 질끈 감았다. 따사로운 햇살이 얼굴을 비춘 지 한참이 지났지만 난 재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주변의 성난 군중들과 경찰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은 채 내 머리 위로 햇살이 내리쬐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버스 문 앞에 서서 찡그린 눈을 살며시 뜨고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엔 구름 한 점 떠 있지 않았고 세상 어디에도 그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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